신라 하대 국왕과 정치사 온샘인문학총서 1
김창겸 지음 / 온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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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신간으로 신청해 놓고 어려워보여 계속 미뤄놨던 책인데 드디어 읽게 됐다.

한자가 간간히 섞여 있어 다소 어려웠던 점을 빼고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전에 발표한 논문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인지 동어 반복이 많은 점은 아쉽다.

학자의 논문인 만큼 주장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고 논리정연 하여 복잡한 신라 하대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무엇보다 너무 재밌다.

신라 하대라고 하면 여러 왕들이 죽고 죽이는 왕위쟁탈전만 생각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만큼 엉망진창인 시대는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귀족연립정권이라 알려졌으나 사실 경문왕과 헌안왕 시기에 오히려 진골 귀족과 차별화 하여 왕족의 위상을 한차원 높게 정립했다고 한다.

저자는 신라가 밖으로는 당에 사대하였으나 안으로는 베트남이나 일본처럼 황제를 칭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이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조선 시대처럼 주자학을 내면화한 시대가 아니었으니 왕 입장에서는 귀족들을 제압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에서라도 황제를 칭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원성왕에게 왕위를 뺏긴 김주원을 명주군왕에 임명한 것을 두고 저자는 일종의 번국 개념이었다고 설명하는데 단순한 식읍이 아니라 정말 독자적인 제후국의 위상을 지녔는지는 잘 모르겠다.

발해나 일본에 대해서도 번국을 칭했다는데 근거가 부족해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원성왕은 기존의 태종무열왕계와 전혀 다른 가계였으므로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가문을 진골 신분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가까운 혈족들에게 상대등과 시중 등의 직책을 맡겼다.

진골 귀족에서 왕족으로 지배층이 더 협소해진 것이다.

왕위 계승의 안정성은 있었으나 지지기반이 너무 좁아져 결과적으로 신라는 말기적 현상으로 흐르고 만다.

조선처럼 제도적으로 적장자 계승을 보장하던 시대가 아니었던 만큼 원성왕 이후 신라 왕들은 가문의 왕위 계승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 과정에서 형제들끼리 연합하고 싸우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졌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점도 왕위계승을 더 복잡하게 만든 것 같다.

상대등이 귀족연합의 대표로써 다음 왕위 후보로 알고 있었는데 저자는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상대등은 국왕과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족이 맡아 오히려 왕권을 강화시키는 보조자 역할을 했고, 왕위가 비었을 때 그 혈연적 근접성에 의거해 즉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주장이고 새로운 관점이라 신선하다.

저자는 신라 하대가 귀족연립정권이었다기 보다, 국왕을 비롯한 혈족 몇이 정권을 장악한 과두정치체였다고 본다.

이들 사이에서, 즉 왕위계승권이 있는 원성왕계 내부에서 왕위 다툼이 치열했던 것이지, 다른 진골 귀족과 다툰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경문왕대에 이르러 왕위 계승을 안정화 시켰으나, 왕경 내부에서의 안정이었을 뿐 지방은 도적들로 날뛰어 결국 신라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

생각해 보면 백제는 8성 귀족들이 정권에 참여했고, 고구려 역시 5부가 있었는데 신라는 진골 김씨만이 권력을 잡고 나중에는 그들마저 배제되어 왕족 몇이 정권을 장악했던 걸 보면 저자의 비판대로 고대적인 정치체제로 회귀하려는 모습이라 시대에 역행하는 꼴이었던 듯하다.



<오류>

352p

응렴은 헌강왕의 손자이며 당시 가장 촉망받는 왕족 출신의 화랑이었다.

-> 응렴, 즉 경문왕은 헌강왕이 아니라 희강왕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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