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 - 큐레이터 캐서린 쿠가 사랑한 20세기 미술의 영웅들
캐서린 쿠 지음, 에이비스 버먼 엮음, 김영준 옮김 / 아트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4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이라 지루할까 걱정했는데 예술가 개인에 포커스를 맞춘 책이라 그런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번역도 비교적 매끄럽고 본격적인 미학서가 아니라 그런지 훨씬 쉽게 다가온다.

사실 가까이서 예술가들을 바라본 저자의 가벼운 인상평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런데 정말 수준높고 밀도있는 평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맨 앞부분에 자서전을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저자를 위해 그를 가까이서 본 후배가 그녀의 일생을 정리해 준 부분이 아주 매력적이다.

본인이 다 완성했다면 자신에 대한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전부 뺏을 것이다.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장애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거의 안 나온다.

어설픈 페미니즘에 관한 담론도 없고 정말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잘 아는 분야인 현대 미술이 온전히 예술계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최우선시 했던 듯하다.

예술가의 성별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16년 동안 큐레이터로 일했던 시카고 미술관 관장과의 부적절한 사이에 대한 후배의 조심스러운 언급은 꽤나 흥미로웠다.

애 딸린 이혼남 사업가와 결혼했으나 당연히 이렇게 야망이 넘치는 여인이 얌전하게 집안에서 현모양처로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가정적인 사람이 되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다는 고백이 내 심리상태와 비슷해서 그런지 너무나 와닿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가들과 어울리면서도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고 어찌 보면 너무나 겸손한 느낌마저 주는 저자의 문체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렇게나 인터뷰이를 잘 이해하고 그가 가진 사상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면서도 날카로운 비평을 가하는 평전을 근래에 잘 못 본 것 같다.

다시금 느낀 바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사회와 내적인 인정의 욕구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최고가 되기 위한 강렬한 욕망이 있었기에 그 어려운 일, 불멸의 명성을 얻은 듯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단순히 그들의 엄청난 재능에만 놀라는 게 아니라,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그 강렬한 욕망과 의지, 창작욕 같은 심리 상태에 훨씬 더 감동을 받았다.

저자가 이런 부분을 참 잘 묘사하고 있다.

은둔형 예술가도 있고 사회적 명성을 추구하는 예술가도 있고 참 인간의 특성은 다양한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강렬한 감동과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또 그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모두 다 특별하고 위대하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평전을 읽어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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