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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과 문신 - 한국 중세의 무신 정권
에드워드 슐츠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11월
평점 :
문치 위주의 한국사에서 독특했던 시대가 바로 고려 무인 시대가 아닌가 싶다.
일본과는 다르게 한 번도 무인이 정권을 잡은 적이 없었는데 유독 고려 후반에 무인 정권이 탄생했고 몽골의 침략과 함께 사라졌다.
무인 정권을 과연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관한 외국인 학자의 저술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어떤 책에서는 무인 정권이야 말로 천민이 사회 진출을 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항했던 역동적인 발전의 시대였다는 평가도 있었고 고 반대로 무질서하고 백성들이 착취당한 혼란의 시대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 책은 단순하게 선악의 문제로 당시 시대를 보지 않고 무인 정권 중에서도 특히 최씨 정권이 어떻게 60년 동안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간단히 말해 최충헌은 기존의 문신 기구를 잘 통제하여 자신의 권력 기구에 포섭했기 때문에 나름 고려 사회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
그 전의 권력자들처럼 무력만 휘둘렀다면 또다른 야심가에게 곧바로 무너졌을 것이고 사회는 더욱 혼란에 처했을 것이다.
최충헌은 자신이 직접 문신의 고위직을 겸임했고 과거를 통해 유능한 문신들을 등용해 행정을 맡겼으며 본인은 많은 사전과 식읍을 얻었으면서도 그 외 지방 세입은 국고로 귀속시켜 나라의 재원으로 사용해 재정을 안정시켰다.
정권 초기에는 농민 반란이 잦았으나 조세 경감 등을 통해 지방을 안정시켰고 이런 바탕 위에서 몽골 항쟁 40년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반면 그는 천민들의 사회 진출은 엄금하여 신분제도가 흔들리는 것을 막았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극소수의 천민에게는 관직을 허용했으나 이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고 간단히 말해 최충헌은 기존 고려 사회의 질서를 그대로 사수하고 그 안정적인 토대 위해서 본인이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60년 정권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최충헌은 이성계처럼 새 나라를 열 시대정신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몽골이라는 거대한 외세의 침략이 없었다면 최씨 정권은 일본의 막부처럼 계속 권세를 이어갔을까?
최충헌과 그 아들 최우의 놀라운 장악 능력과는 달리 뒤를 이은 후계자들 최항과 최이의 부족한 자질 때문에 결국은 무너지고 기존의 왕정으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본다.
최충헌이 자신의 왕조를 세우기에는 고려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배후에 사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한반도에 새 왕조가 생기는 시기는 모두 중국의 혼란기였다.
역시 외국 학자라 민족을 떠나 객관적인 눈으로 판세를 본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고 무신 정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게 돼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만 번역투의 어색한 문장 때문에 가독성이 다소 떨어지는 게 아쉽다.
<오류>
259p
명종, 신종의 외가인 정안 임씨와 희종, 강종의 외가인 강릉 김씨는 무신 집권기 동안 잠재력을 지녔다.
-> 명종, 신종의 외가 즉 어머니 공예왕후 임씨는 정안(장흥) 임씨가 맞지만, 그 아들들인 명종과 신종의 처가는 강릉 김씨가 아니라 왕족인 강릉공 왕온의 딸들이다. 김씨라고 칭한 것은 족내혼임을 숨기기 위해 모계의 성을 따랐다고 되어 있다. 강릉 김씨를 정안 임씨와 같은 수준에서 볼 수 없을 것 같다.
314p
이의방은 전주 이씨 출신이며 그의 형제 이준의는 뒤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직계 조상이다.
->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준의가 아니라 다른 형제인 이린이 이성계의 6대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