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의 세계사 - 성과 이름의 역사를 찾아 세계일주!
쓰지하라 야스오 지음, 김미선 옮김 / 창조문화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200 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인데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서양의 성을 주로 밝히는 책이라 다소 지루했다.

뒷부분에 중국과 한반도에 성이 정착하는 과정은 흥미롭게 읽었다.

확실히 일본 사람들은 서양의 전통이나 문화, 관습 등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듯하다.

일본인이 서양의 인명사를 이렇게 세세하게 밝히나, 신기하다.

성과 개인명으로 이뤄진 성명 체제는 너무나 당연한 양식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착한지 얼마 안 된 형태라고 한다.

특히 아직도 이슬람이나 버마, 말레이시아, 태평양의 섬 등에서는 따로 성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성이란 가족의 혈통을 밝히는 것이므로 씨족 중심으로 모여 살던 전통사회에서는 굳이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문이 중요했던 상류층 외에 정치적 활동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농민들은 굳이 성을 표시할 필요없이 개인명만으로 구분이 가고, 가문이라는 개념 자체도 희박했을 듯하다.

마을 공동체 내에서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누구의 아들이라는 부칭이 흔하게 쓰였다.

오늘날 서양 이름의 미들 네임에 부칭이 많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강력하게 인민을 통제해 온 중앙집권제를 추구한 중국에서만 기원전부터 성명을 써 왔다.

한반도에서는 중국과 교류하면서 성명제를 받아들였는데 성이 널리 퍼진 것은 유교 문화가 정착된 고려시대부터라고 한다.

결혼하면 남편성으로 바꾸는 서양과는 달리 여자가 본인의 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의 여권이 높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전혀 관련이 없다.

동아시아에서 부부별성제를 유지한 것은 대를 이어야 한다는 관념과, 동성동본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혹시라도 세대가 넘어가면서 같은 혈족과 혼인하게 될까 봐 결혼 후에도 친정 姓 을 유지했다고 한다

서양이나 중동 지역에서는 사촌끼리의 혼인도 흔할 걸 보면 동성동본 혼인을 터부시하는 것도 독특한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구절>

16p

서양에서는 개인명(세례명)을 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에 성(가명)을 붙인다. 왜냐하면 성이 세례명의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발상이 뿌리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명을 중시해 '성.개인명' 순으로 이름을 지었던 동아시아의 문화권과 대조를 이룬다. 동아시아는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조상을 모시는 전통적인 가문으로 되돌아가려는 의식이 강했다.

 성을 만드는 관습은 예루살렘 성지의 십자군 원정의 귀도에 따라 이탈리아부터 프랑스, 영국, 독일 등으로 서서히 보급되었는데 모두 상위계급만 사용하였으며 하위계급으로 퍼지기까지는 아직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도 세례명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애칭과 별명을 불렀으며 어쩌다 그것이 성으로 승격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33p

유교정신을 살아 있는 규범으로 삼아온 중국과 한국, 근세 일본을 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과거 천 년 이상 부부별성을 원칙으로 하고 결혼을 해도 아내는 친정의 성을 그대로 따랐다. 혈통을 명시하여 대가 끊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고대 중국 등 동아시아의 일부를 제외한 성의 역사는 겨우 수백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성이 없었던 민족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69p

이 지역에서는 부칭사 대신 고유명사 앞에 '~출신' '~근처', '~저편'과 같은 전치사를 붙이는 어형이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독일어의 von 과 네덜란드어 van, 프랑스어 de 는 출신 지역을 나타낸다. 이것은 원래 귀족과 중세영주가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관명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떨치기 위해 다투어 차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76p

현재는 길고 긴 부칭을 사용하는 관습은 사라지고 보통 세례명과 성만 사용한다. 성의 일부에 네덜란드어 van~과 프랑스어 de~ 에 해당하는 '~출신의'를 나타내는 전치사 da- 또는 라틴어 de- 를 붙이는 관습이 남아있다.

139p

헤이안 중기 이후, 본적지에서 사람들이 잇달아 실종되고 법령 제도가 약화됨으로써 호적을 작성하지 않게 되자 대대로 성을 물려주는 습관이 차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유재산이 없는 빈농층은 이름만 가지고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출신이나 성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결국 성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무가와 공가 등 상류계급은 출신이나 가문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성 관습을 더더욱 강조했으며 오늘날 성의 원형은 무로마치시대 중엽에 모두 만들어졌다고 한다.

144p

신을 중심으로 개인적인 평등을 존중해 온 그리스도교 문화권과는 달리 유교문화권에서는 <논어>를 기초로 한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조상과 혈통을 중요시한다. 게다가 임금과 가부장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완고한 혈연관계와 가족중심사회 이루어왔다.

 일족의 유대를 나타내는 성이 개인명보다 더 중요시해야 하는 존재로 비춰진 것도 어쩌면 자연적인 현상일 것이다. 이와 같은 유교사상과 한자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등(특별한 예로 헝가리)에서는 성, 이름 순으로 표기한다.

 옛날부터 유교정신을 중요시하여 선조의 가명과 가계를 대대로 이어 내려왔기 때문에 부부별성문화가 중국에서 정착하게 된 것이다. 혼인으로 아내의 성이 사라진다면 언젠가는 동성불혼에 저촉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인구가 급증했던 기원전 3세기의 전국시대말경부터 성과 씨의 구별이 모호해지기 시작하면서 秦조 이후는 가명과 성이 단일화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족단위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전한시대 초기부터 차츰 평민도 성을 가지는 관습이 생겨났고 기원전 1세기에는 모든 한인이 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평민에게 주어진 성은 장, 왕, 이, 조, 유의 대성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이 이후에 만들어지는 성은 거의 없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성이 이 시대에 정착했다고 할 수 있다.

149p

한족의 중국과 만주지방의 수렵민 등은 선사시대부터 한반도를 왕래하면서 다양한 문물을 교류했다. 중국은 기원전 108년, 위만왕조(고조선)를 멸망시킨 전한의 무제가 낙랑군 등 4군을 설치하면서 한반도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후 한자문화와 유교사상을 기초로 하는 관습을 통해 중국의 성명문화가 한국에 서서히 침투하기 시작했다. 세 개의 한자로 된 중국식 성명표기는 4~7세기의 삼국시대에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적어도 지배층 이외의 백성들은 7세기 후반 통일신라가 생기기까지 성이 없었을 것이다. 그 전에는 계백, 소회, 영랑과 같이 개인명을 한자로 음역하는 방법을 따랐다.

 936년, 통일국가가 된 고려는 국가 조직을 빠르게 정비하기 위해 유교를 기초로 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평민의 이름에도 한 글자로 된 한자 성과 두 글자의 이름으로 된 중국식 성명양식을 따르도록 했다.

 유교를 국교로 정한 조선시대에는 1485년 호적대장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을 실시하면서 성명을 의무적으로 기장하도록 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성명제도를 확립했다.

151p

한국은 대부분 중국인의 성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성만으로 중국계와 한국계를 구별하기 힘들다. 성명구성은 중국형식을 받아들였지만 인명은 민족고유의 방식을 고집했던 일본과는 큰 차이가 있다.

 다만 박씨 성은 한족에 드물기 때문에 민족색깔이 묻어난 한국 고유의 성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건국신화에서 시작된다.

 박씨 성은 신라의 시조 혁거세에서 유래된다.

174p

건조지대인 중동지역 주민 대부분은 예로부터 유목생활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들은 공동체사회에서 정착을 전제로 한 농경민과 달리 특정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않기 때문에 독창성의 기준을 '혈족'에 두었다. 아울러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지혜와 강한 지도성을 발휘하는 가부장을 선출하고 부계혈족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씨족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인명표기는 일족과 씨족의 혈통서라고 할 수 있는 계보적인 구성을 띠고 있다.

192p

원칙적으로 이 지역은 성이 없다. 따라서 가계를 명백히 밝히려면 '아무개의 아들'이라는 부칭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데 부칭은 차츰 고정화되어 최근에는 세습제 가명으로 그 형태가 바뀌는 추세다. 멜라네시아와 폴리네시아의 일부에서는 실명을 밝히기를 꺼려하며 '아무개의 아버지'로 부르는 테크노니미 관습이 아직도 뿌리깊이 박혀 있다. 테크노니미(친족용어)를 사용할 수 없는 어린이나 미혼자는 보통 별명을 부르는데 대부분 태어날 때의 사건이나 외견, 용모, 버릇, 직업 등에서 유래한다. 단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과 동시에 별명을 부르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며 테크노니미로 불리면서 처음으로 성인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개인명은 전도사의 선교활동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성인명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명에서 따오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유럽언어의 발음과 거리가 멀고 원어민의 발음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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