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평전
박현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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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읽을까 하다가 세종에 관한 저자의 전작이 지루했던 기억이 나서 망설이다가 읽게 됐다.

강렬한 표지처럼 정조라는 인물과 그 시대의 정치에 대해 실록 등의 사료를 바탕으로 자세히 풀어낸다.

정조 독살설에 대해서는 당시 암살 기도 등이 있었고 흉흉한 소문이 돌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말년에 많이 쇠약해진 상태라 자연사 쪽에 무게를 둔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도 과로사 했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국정업무를 수행했고 당시 평균 수명으로도 49세는 독살 운운할 젊은 나이는 아닌 듯하다.

저자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강조했고 외조부인 홍봉한을 아버지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사도세자가 국정 운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혜경궁과 사도세자가 불화했기 때문에 정조도 아내 효의왕후와 사이가 나빴다고 추론하다.

정병설씨의 책에서는 사도세자가 도저히 왕위를 이을 수 없을 정도의 정신병이 있었고 처가도 같이 몰살되는 불운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정조 역시 영조의 결단을 수용했다고 평했던 것과 상반된 의견이라 좀더 살펴봐야 할 듯하다.

나는 후자 쪽에 무게를 둔다.

사도세자는 정치적 음모의 희생양이 아니라 국왕이 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버지 영조가 결단을 내렸다고 본다.

마지막 장에 실린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 조명이 흥미롭다.

조선이 망한 명나라를 붙들고 청에 형식적으로만 복속한 것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봐도 청에 매년 사신을 보내는데 그 융성하고 화려한 문화와 국력을 본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미련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학이 노론에서 유행하고 서학이 남인들에게 수용됐던 것도 다 그런 문화적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 세력의 침입에 대해 일본은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즉시 개항하여 국체를 바꾸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반면, 조선은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고 청나라에 더욱 매달렸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만다.

지도층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다.



<오류>

76p

수빈 박씨는 딸 숙성옹주를 먼저 낳고 이어서는 순조를 출산했다.

-> 숙성옹주가 아니라 숙선옹주이다.

110p

박명원이라는 영조의 맏사위(화평옹주의 남편)인 종친이~

-> 영조의 맏사위는 화순옹주의 남편인 월성위 김한신이고 박명원은 둘째 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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