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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명작 100선 - 유럽 5개국 10대 미술관에 소장된
김상근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기대했던 제목보다는 임펙트가 약해 아쉽다.
서점에서 보고 읽고 싶은 목록에 올려놨던 책이다.
표지 디자인도 좋고 무엇보다 도판이 화려하다.
연세대학교 신학 교수라는 저자의 약력도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 좋았는데 역시 전공자가 아닌 애호가의 한계가 있는 책이다.
가벼운 감상문 수준의 유럽 미술관 관람기가 범람하는지라 이 책 정도만 돼도 훌륭하긴 한데 그림 자체에 대한 설명보다는 관련 지식들을 적당히 버무린 수준이라 아쉽다.
유럽 5개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유명 미술관들의 작품들을 선정해 르네상스라는 시대 배경과 함께 기술하고 있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벨기에 등 북유럽 르네상스가 빠져 아쉽다.
뜬금없이 보이는 삼성이나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공감이 어려웠다.
저자는 메디치 가문을 조건없는 예술 후원자로 설명하는데 얼마 전에 읽은 <상인과 미술>,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 등에 따르면 위대한 로렌초 역시 오늘날의 삼성 일가와 다름없이 부의 과시, 재산 형성 등을 목적으로 예술 작품들을 사들였다.
메디치 가에 빗대어 삼성을 비난하는 것은 피상적인 평가로 보인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미남 미녀가 많다는 부분은 좀 의아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주걱턱으로 대표되는 기묘한 얼굴이 특징인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외국에서 번역된 미술관 작품 소개책들은 번역투의 어색한 문장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도 수준은 유지할 수 있는 우리나라 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인상깊은 구절>
11p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초대교회의 공의회는 성모에게 "하나님의 어머니"란 호칭을 부여하였다. 예수가 하나님이므로, 예술을 낳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마리아를 신격화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다가 생긴 확장논리였다.
348p
사실 <쾌락의 동산>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은 남녀의 무분별한 성적 접촉과 탐욕의 추구였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나는 보스를 좀 더 보수적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가 살았던 16세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과격한 표현으로 성적 타락을 경고해야만 하는 막가는 사회는 아니었다. 중세적인 절제가 남아있던 시대였으며 여전히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맹위를 떨치는 때였다. 보스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인구의 단 1%만이 라틴어를 이해하는 성직자들이었으며 또 다른 1%만이 귀족으로 생활했다. 나머지 98%는 모두 중세적 신앙을 간직하거나 종교개혁자들의 새로운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였다. 그래서 나는 보스의 <쾌락의 동산>을 어떤 과격한 신조를 내세우기 위한 선전 포스터가 아니라 성서의 내용, 특별히 <잠언>에서 언급되고 있는 도덕적 삶에 대한 교훈으로 이해하고 싶다.
350p
정면으로 관람객을 응시하는 이 유명한 초상화를 신성모독의 징표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당시에 북유럽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 사는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뒤러는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그림으로써 자신의 경건한 신앙심을 표현한 것이다.
<오류>
13p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에게 시집 온 밀라노의 공주는 별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줄줄이 딸만 여덟을 낳았기 때문에
-> 몬테펠트로의 부인인 바티스타 스포르차는 딸 여섯을 낳고 죽기 직전 아들 구이도발도를 낳았다.
17p
코시모의 아들이었던 조반니 데 메디치 (1421~1463) 혹은 피에로 데 메디치 (1449~1469)로 추정된다.
-> 코시모 데 메디치의 큰 아들 피에로는 1416년 생이다.
71p
교황 레오 10세의 조카였으며 나중에 자신도 역시 교황 클레멘스 7세로 등극하게 되는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은~
-> 클레멘스 7세는 레오 10세의 조카가 아니라 사촌이다.
241p
루돌프 2세는 삼촌이자 동시에 형제가 되는 펠리페 2세가 통치하던 에스파냐에서 성장했다.
-> 펠리페 2세는 루돌프 2세의 외삼촌이고, 루돌프 2세의 누나인 안나가 펠리페 2세와 결혼했으니, 형제가 아니라 매형이다.
306p
147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3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2세가 결혼함으로써~
-> 페르난도 3세가 아니라 페르난도 2세이다.
307p
스페인을 상속받고 나중에 포르투갈까지 통치하게 되는 펠리페 2세는 아버지와 이모의 예술적 취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 아버지 카를 5세의 여동생인 헝가리의 마리아를 가리키므로 이모가 아니라 고모이다.
332p
널리 알려져 있는 귀도 레니의 또 다른 명작은 <베아트리체 첸지의 초상화>이다.
-> 이 작품은 귀도 레니가 아닌 그의 제자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작품으로 판명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