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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평점 :
막 신간이 나왔을 때 도서관에 신청했던 책인데 이번에서야 읽게 됐다.
표지 디자인은 다소 맥빠지고 촌스럽지만 내용은 참 좋다.
다소 현학적이고 어려울 수 있는 한국 근현대 미술가들 소개를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라고 불리는 고희동부터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이불, 서도호, 강익중 등 중견 미술가들까지 30인의 유명 화가들이 소개된다.
이중섭, 박수근, 이응노 이 정도까지는 직관적으로 공감이 되는데, 1970년대 이후 추상 미술부터 80년대의 설치미술로 넘어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느껴야 하나 여전히 모호하고 말 그대로 지적 유희라는 생각이 든다.
민중 미술가로 소개되는 오윤이나 신학철 등의 예술론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예술에, 특히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라는 말이 여전히 생명력이 있을까?
철지난 자본주의 비판론 같아 공감하기 어려웠다.
소비 사회를 풍자하면서 자신들은 최첨단 소비 생활을 영위하는 모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예술도 결국은 문화 엘리트들이 대중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닐까?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현대미술은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점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예술이 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관람객에게 시적 감흥을 일으킬 수 있어야 예술로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도판이 다소 어두운 색감이라 아쉽다.
<82년생 김지영>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2017년에도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원을 받는다고 비난하는 부분에서는 공감이 참 어려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이 여전히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100만원을 받는 사람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68만원을 받는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을 좀더 즐기기 위해서는 직접 관람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테니, 한국 미술계의 규모가 더 커져서 좋은 전시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인상깊은 구절>
16p
고희동은 일본으로 유학가지 전에 한국에서 전통화를 배웠거든요. 게다가 문인 집안의 끝자락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성장 배경에서 고희동은 '문인화로서의 그림'이라는 개념을 먼저 정립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고희동은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관리 생활을 버리고 현실도피책으로 그림을 시작했어요. 마치 옛 선비들이 혼란한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 시서화에 몰두한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고희동이 교육받은 서양화는 손의 기술을 매우 강조하였습니다. 서양화에서 그림은 정신이 아닌 기술, 화가는 문인이 아닌 장인에 가까웠습니다. 고희동은 여기서 혼란을 겪으며 서양화를 그만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81p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아름답지도 않고, 도대체 뭘 감상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요. 현대미술이 우리의 고정관념 속 미술과는 다른 점이 많지요.
그것은 현대미술이 '미술의 확장'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재료도 이전과는 다른 것을 쓰고, 형식도 과거와는 달리해서 '미술'이라는 틀을 계속 깨는 것이 현대미술의 주된 흐름이었습니다.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 아닌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와 같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것이지요. 이런 시도가 가끔 지나치게 개념적으로 흐르면서 시각적인 감흥을 기대하는 대중으로부터 미술이 멀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승택은 시각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붉은색 천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휘날리는 모습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미술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합니다. 바람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감상이 가능하니까요.
이승택의 작품은 미술사적 의의가 있으면서도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고, 개념적이면서도 감각적입니다.
199p
단색화 화가들도 한국적인 미술을 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단색화 작가들은 여백, 흰색, 수양, 정신성과 같은 보다 엘리트적인 전통에서 한국성을 찾았던 반면, 오윤과 같은 민중미술가들은 불화, 탈춤과 같은 민중의 문화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점이 큰 차이점입니다. 민중미술가들은 민중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 했으니까요.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먹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받고 괴로워합니다. 요괴들은 '맛기차', '비빔면', '아아차'와 같은 소비사회의 제품을 소비하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오윤이 이를 통해 전달하려는 것은 명확합니다. '외국자본의 제품이 판치는 1980년의 한국 사회는 사람을 괴롭게 한다. 그것은 마치 지옥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비사회의 제품들을 누리고 즐기면서 살고 싶어한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민중을 자기들 멋대로 재단하고 정의내리려는 선민적인 사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