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정교 - 역사.신학.예술 고려대학교출판부 인문사회과학총서 61
석영중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네이버의 연애 기사만 읽다가도 가끔 이런 인문학적 교양서를 읽으면서 지적 유희를 맛본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왜 대중문화는 천박해질 수 밖에 없는가? 고급 문화의 대중화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라는 식의 끝도 없는 의문이 제기된다
클래식이 국가의 보호 아래 겨우겨우 숨을 쉬고 있고, 고전문학은 논술 교재로서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지만, 모짜르트나 베토벤의 웅장한 음악을 들었을 때 격정적으로 떨리는 순간이나, 좋은 책을 읽은 후 느껴지는 충만감 등을 생각하면 왜 순수예술이 대중문화 시대에 외면받을 수 밖에 없는지 안타깝지 그지없어진다
이 책도 널리 소개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유익할 뿐더러 무척이나 재밌는 책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열혈독자라면 한 번쯤 정독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똘스또이나 기타 러시아 문학 책을 읽을 때 등장 인물의 캐릭터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작가가 오버해서 창작해 놓은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느꼈었는데, 러시아 시대와 문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과연 몇 %나 이해될 수 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전 문학들도, 사실은 그 시대나 문화권에서 살지 못한 바로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서구 문화가 대세를 이룬 21세기를 살고 있는 극동의 조그만 나라 독자로써는, 서구 문화의 기본 지식이 부족한 게 언제나 한스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책은 배경지식이 전무한 이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러시아 정교란 대체 뭘까?
그리스 정교와 비슷한 것인가?
동방 교회의 변형인가?
워낙 교류가 없는 나라이다 보니 말만 들었을 뿐,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런 호기심에서 집어든 책인데, 러시아 민족이 이렇게도 종교적인지 새삼 놀랬다
러시아 정교를 논하지 않고서는 러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여러 작품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설명하면서 러시아 정교와의 연관성을 짚어준다
도스또예프스끼 역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인, 정교회 신자였다고 한다
그에 반해 진리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똘스또이는 말년에는 거의 스스로 종교를 창조해 낼 정도로 합리적인 신앙을 강조했다고 한다
실천적 지식인 똘스또이에 비해, 저자는 러시아 정교의 본질을 대변하는 도스또예프스끼 쪽으로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인다
그렇지만 작품이나 작가의 삶을 생각해 볼 때, 내 쪽에서는 똘스또이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합리적인 신앙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 외적인 교회는 무지한 민중을 계도할 때나 필요할 뿐, 지식인은 내적인 교회, 즉 실체가 없는 정신적인 교회를 통해서 참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 확장을 저자는 경고하고 있지만, 무교회가 또 다른 신앙의 형태라고 믿는 나로써는 진리 추구에 평생을 바친 똘스또이에 더  끌릴 수 밖에

아름다움에 대한 솔제니찐의 논평은,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의의를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진선미 중 가장 아랫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그 예술이 사실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위대한 진리일 수 있음을 그의 연설을 통해 새롭게 느꼈다
러시아 정교는 모든 예배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방법으로써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장엄한 종교음악, 화려한 이콘, 아름다운 성당, 우아한 미사 의식...
러시아 민족이 얼마나 예술적이며 또 종교적인지 새롭게 인식했다
그렇지만 이콘은 솔직히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루벤스나 라파엘로 풍의 화려하고 정밀한 묘사에 있다보니, 평면적인 이콘화들은 아무대로 별 감흥을 못 준다
그래서 나는 현대 미술이나 동양화에서 감동을 그다지 못 받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명작이란, 르네상스 풍의 정교하기 짝이 없는, 색체의 현란함이 관객의 눈을 어지럽히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아무 의미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예술을 추구한다는 이콘화의 성행은, 러시아 미술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