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역사 - 이슬람 유입에서 이슬람 혁명까지 살림지식총서 336
유흥태 지음 / 살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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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조 페르시아가 이슬람에 의해 멸망한 후 이란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쓴 책이다.

앞서 읽은 <고대 페르시아의 역사> 후속편이랄까?

근대사는 좀 복잡하긴 해도 자료가 많아서인지 훨씬 흥미로웠다.

이란은 이라크와 달리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고 20세기까지 왕조를 이어갔던 모양이다.

팔라비 왕조의 마지막 왕인 무함마드 레자 팔라비의 세속화 정책이 터키처럼 성공했다면 석유 자원국인 이란은 오늘날 보다 훨씬 개방적인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호메이니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여전히 실권을 갖고 정치를 좌지우지 하는 모습이 무척 낯설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우즈벡, 아르메니아 등이 이란의 지배 하에 있었는지는 처음 알았다.

이란은 역사도 매우 길고 광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인데 그저 사막 한가운데의 중동 국가로만 알려진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5p

사만조의 가장 큰 역할은 이슬람 침입 후에 잠들어 있던 페르시아 문화를 부활시킨 것이다. 사만조의 총독들은 페르시아의 복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인과 작가, 지식인들을 지원하였다. 

23p

투르크인이란 이란의 동쪽인 중앙아시아에 살던 민족으로 투르크계 언어를 사용하고 유목생활을 하는 종족을 일컫는다. 사산조 시기에 몇 차례 페르시아를 침략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간다. 이슬람 등장 후 이슬람 군대가 투르크인들이 살던 중앙아시아를 공격하면서 이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다. 이슬람화된 투르크인들이 사만조 시기에 대거 '맘룩'이라는 전쟁 노예 혹은 용병으로 이란과 이슬람 세계로 들어온다. 이들은 사만조 말기에 군사령관 등 고위직을 차지하기 시작하였고 사회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여 10세기에서 13세기까지 가즈나, 셀죽, 하라즘샤라는 세 왕조를 이란에 건립하였다. 이들이 이란의 독립왕조로 분류되는 이유는 이란 지역에 나라를 세운 것뿐만 아니라 이들은 페르시아 즉, 이란 문화에 심취하여 자신들의 공용어도 페르시아어로 사용하여 이란 문화를 지속,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27p

부예조의 간섭에서 해방시켜 준 셀죽에 대해 바그다드의 칼리프는 권력을 인정해 주었고, 토그롤도 칼리프를 존중했다. 토그롤 사후 그의 후계자인 조카 알프 아르슬란은 토그롤의 확장 정책을 이어받아 동로마(비잔틴)을 공격하였다. 이때 말러즈게르드 전투에서 비잔틴 황제를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린다. 이 전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데, 이 승리로 인해 소아시아(현재 터키)가 이슬람화 되었다. 후대 역사가들은 이 광대한 영토로 인해 셀죽조를 셀죽 제국이라고 부르게 된다.

90p

쿠란을 연구하여 진정한 이슬람과 정부는 어떤 것인지를 모스크와 학교에서 토론하고 연구하였다. 이렇게 정립된 이론들이 책으로 출판되어 알려졌다. 이 책과 함께 직접적 혹은 간접적 형태로 이론들이 퍼져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속 정부가 아닌 이슬람에 입각한 정부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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