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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과 미술 - 서양미술의 갑작스러운 고급화에 관하여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1년 7월
평점 :
회화의 물질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서다.
어려운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아주 흥미롭고 상업적, 특히 동서무역의 관점에서 본 르네상스 회화의 폭발적 성장이라는 주제가 신선하다.
무엇보다 도판이 매우 좋다.
소장처나 크기 표시가 안 된 점이 아쉽지만 도판의 질이 정말 훌륭해서 한 권의 미술책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과연 저자가 서문에서 도판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얘기할 만하다.
전문 연구자인 만큼 분석의 깊이가 남다르다.
다소 어려운 개념,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추구한 명도의 깊이라는 부분은 잘 이해를 못했다.
이번에 루브르 가서 <암굴의 성모>라는 유명한 작품을 봤는데 (모나리자는 줄서서 한참 기다려야 해서 못 보고 말았다) 색감이 너무 어두워 책에서 보던 만큼의 큰 감동이 없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이런 어두운 분위기는 화가가 추구했던 것 중 하나라고 한다.
나도 항상 의문이 있긴 했었다.
왜 갑자기 르네상스 시대에 서양미술의 수준이 확 올라갔을까?
저자는 수준에 더해 양적으로도 엄청나게 폭발했다고 한다.
그저 몇몇 천재 화가들의 탄생 덕분이 아니라 이 모든 회화혁명이 중세 상업혁명을 통해 거부가 된 상인들이, 귀족과의 차별화를 통해, 혹은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개인의 구원을 위해, 또 미술품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유럽의 상인들이 직접 안료를 수입하여 거래했기 때문에 그 식견이 탁월해서 (당시로서는 장인 수준이었을) 화가들에게 색채에 대한 까다로운 요구를 했고 이것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회화의 수준이 확 올랐다는 점이다.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안료들의 수입이 활발해지는데 이것을 취급하는 상인들이 미술을 통해 과시적 소비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잘 아는 분야인 색채감을 까다롭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바로 "상인과 미술"이다.
거상들은 평민이나 귀족과의 차별화를 위해 미술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흑사병도 매우 중요한 키포인트다.
"모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명구가 유행일 정도로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일상화됐던 시절이라 중세인들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 전에는 제단화 같은 공적인 미술품만 있었다면 추모 열기가 과해지면서 개인이 영혼 구제를 위해 캔버스화 등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게 용인되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비단 거상들 뿐 아니라 하층민들도 작은 패널화라도 갖길 원했고 상인들은 미술품을 상품으로 인식해 대량 생산이 되면서 가격도 떨어지게 된다.
왜 자본주의 경제가 승리하게 됐을까?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품을 만들어 내고 그 과정에서 질적 수준이 높아져 사회가 계속 발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에서처럼 단순히 우아한 선비의 취미 정도로는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기 어려운 것 같다.
상업의 발달이 예술의 발전을 견인했고 결국 사회의 흐름도 바꿔 놓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