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安東 金門 연구
이경구 지음 / 일지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너무 좋은 책인데 한자가 많아 힘들게 읽었다.

한자만 아니면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에 쭉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저작이다.

한자로 표시를 해야 뜻이 정확해지는 용어들이긴 하지만, 기왕이면 한글 표기를 같이 했으면 훨씬 가독성 있었을 것 같다.

읽을 줄 모르니 마우스로 네이버 사전 필기 인식기에 힘들게 그리면서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19세기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주범이라고만 생각했던 안동 김문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애써왔고 당대 최고의 벌열 가문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낀 점은, 도대체 이덕일씨는 어느 포인트에서 노론이 정조를 죽였다고 추론했을까 하는 점이다.

정조야말로 18세기 후반 노론의 의리론을 국시로 정립시켰고 안동 김문을 국정 파트너로 삼아 척신으로 키우려고 한 사람이다.

정조는 왜 개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문체반정도 정조니 그 정도로 끝났지 다른 왕이었으면 다 죽였을 것이고 사실은 패관잡기류의 변화를 정조가 지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던 책이 생각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정조는 원래 존주의리와 순수 주자학을 신봉했고 노론의리를 정론으로 생각해 자신이 국정을 주도해 나갔다.

그가 대표적인 척화가문인 안동 김문을 외척으로 선택해 척신으로 키운 것이다.

정조는 첫째 아들 문효세자의 처가로 김이중을 생각했고 아들이 요절하자 결국 훗날 순조의 처가로 김이중의 아들인 김조순을 선택해 국정을 맡긴다.

노론을 마치 악의 축처럼 인식하는데 노론의 순혈주의가 결국 조선을 폐쇄적이고 고립된 전근대 국가로 만들고 말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양난을 극복하고 모든 학설의 도전을 이겨내고 우뚝 선 가장 탄탄한 이론을 가진 집단이었다.

안동 김문은 김상용, 김상헌 형제로부터 시작된 척화의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김수항, 김창집, 김제겸 3대가 죽임을 당하고서 왕위에 올린 영조 시대에 조정은 물론 재야의 산림도 장악하게 된다.

단순히 권력욕에 취해 나라를 어지럽히는 가벼운 가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역사책에서는 자주 안 나와 존재감을 몰랐던 김창협, 김창흡, 김원행 등의 학문적 저변 확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처음 알았다.

단순히 관료로서만 잘 나간 게 아니라 뒤에서 학문적으로 탄탄하게 받쳐주던 가문의 학자들이 있었기에 안동 김문이 조선 최고의 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 둘

1) 역시 서울에 살아야 한다.

안동 김씨가 경파와 향파로 분기되면서 끝까지 서울에 세거했던 청음파는 인적 교류의 폭이 넓어지고 많은 정보를 얻으면서 자연스레 경화사족으로써 위상이 올라가게 됐다.

조선시대에도 지방 차별은 엄청났던 것 같다.

대한민국의 서울 중심주의는 비단 요즘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2) 가문이 잘 되려면 누대에 걸쳐 관료직에 나가야 하고 당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은 가문의 부속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대와는 다소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부모가 강남 살아야 중심부 문화를 맛보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업을 얻게 되고 그것을 발판으로 자식에게는 더 많은 것을 물려주는 패턴이 일반적인 흐름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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