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 - 천재 과학자 27명의 호기심 많은 어린 시절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차마 리뷰 쓰기가 미안할 정도로 정말 대충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너무 바빠 결국은 겉만 슬쩍 훑고 나서 반납하게 됐다
바쁜 일상을 탓할 수 밖에...

관심있는 사람들 편만 먼저 읽었다
역시 가장 흥미롭고 재밌게 읽은 과학자는 리처드 도킨스다
과학자라기 보다는 과학 저술가 내지는 평론가라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여튼 이 아저씨의 문장력은 언제나 위트가 넘치고 직설적이고 단호해서 읽을 때마다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심한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처럼 진화가 곧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도킨스의 글이 시원한 청량음료처럼 느껴지리라

다중 지능론을 주장한 하워드 가드너의 글도 재밌게 읽었다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겸손한 척 하지 않고 대놓고 자랑을 한다
겸손이 미덕인 사회가 아님을, 미국인들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느낀다
자랑해도 될 만한 사람들이 자부심에 넘치는 글을 쓰는 건 대환영이다

과학자들은 확실히 다른 족속 같다
그 지긋지긋한 물리나 화학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유명 과학자들을 많이 안다면 책 읽는 기쁨이 배가 될 것 같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크리스피 크림에 몇 시간씩 죽치고 앉아 결국 이 책을 다 읽었다
항상 내가 생각했던 로망 중 하나가 조용한 커피숖 혹은 스타벅스처럼 죽치고 앉아 있어도 종업원 눈치 볼 필요 없는 곳에서 몇 시간씩 책을 읽는 거였는데 비로소 실천에 옮기게 됐다
옆 사람과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듣고 싶지 않은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는 괴로움도 있었지만, 독서 환경이 바뀌어서 신선함 점도 있고, 또 책 내용이 워낙 평이하고 재밌어 비교적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칼 세이건의 전처였던 린 마굴리스 에세이를 보고 눈이 번쩍 띄였다
열 네 살에 대학에 입학한 뒤 열 여섯 살 때 다섯 살 연상의 세이건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전 남편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서스름 없이 전 남편과의 연애담을 기술하는 게 다소 놀랍다
세이건이 워낙 자신감이 넘치고 똑똑한 사람이다 보니 자존심도 많이 상했지만 지적 자극도 많이 받았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이혼은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파트너는 부담스럽다

스티븐 핑커의 기억 조작론도 재밌었다
인문과학이 점점 자연과학에 예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절감한다
결국 뇌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 신비화를 벗겨 낼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정신이라고 지칭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그저 신경 화학 작용에 불과하다는 게 밝혀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스티븐 핑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현재의 감정에 맞춰 재구성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과학자를 만들어 낸 어린 시절 경험 같은 건, 사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경험의 차이를 전면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시대를 사는 미국인이라면 거의 똑같은 경험을 겪게 될 것이고 결국 유의한 차이는 유전, 즉 타고난 성향이라는 얘기다
쌍둥이를 전혀 다른 환경에서 키워도 같이 자란 입양아들 보다 훨씬 비슷하게 성장한다는 식의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 왔다
그러고 보면 영재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은 교육업자들 돈 벌어 주는 짓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끊임없는 호기심을 들 수 있겠다
일회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연속적인 호기심 말이다
나 역시 호기심이라면, 특히 지적 호기심은 누구 못지 않게 강한데 세계적인 과학자는 커녕, 오늘날 이 모양으로 한심하게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연속적이지 못한 데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뭔가 그럴 듯한 업적이라는 걸 이루려면 쉽게 질려서는 안 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난 너무 금방 지치는 게 문제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라마찬드란이 한 말이다
흔히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연구는 고행길이라고 참고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획기적인 발견은 순간적인 영감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왓슨과 크릭이 겨우 6개월 만에 DNA 나선 구조를 밝혀낸 것처럼 말이다
어느 수준에 도달하려면 지긋지긋한 훈련 과정을 밟아야 하긴 하지만, 라마찬드란이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인생은 짧고 쏟을 수 있는 노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식하게 파고 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창의성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면 된다, 식의 구호는 정말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이제 천재의 99% 노력과 1% 영감설은 너무 낡은 표현이 된 것 같다

하여튼 새삼 느낀 것이 아이들 교육에 다양한 경험과 도서관 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조기 유학은,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일견 부러운 면이 있다
일단 영어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엄청난 정보를 받아들일 기본을 갖췄다는 얘기니까
한국어로 된 정보다 다 소화하지 못하긴 하지만, 어쨌든 영어를 구사한다는 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의 양이 수십배 커진다는 뜻일 것이다
언젠가 로버트 레드포드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의 과거 이력까지 꽤 자세하게 나온 기사였는데 좋아하는 배우였기 때문에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구글에 그 사람 이름을 입력했다
그랬더니 방금 내가 읽은 기사의 원문이 그대로 뜨는 게 아닌가?
내가 읽은 기사는 분명히 한국 기자의 이름으로 쓰여졌는데 정작 원문은 따로 있었다
그러니까 그 기자는 외국 싸이트에서 적당히 정보를 빌려와 손질해 기사를 쓴 것이다
그 때 느꼈던 그 배신감!!
결국 영어라는 장벽이 있기 때문에 그걸 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기자나 작가 같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그 정보를 간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직접 구글에서 검색해도 될 일을, 언어의 한계 때문에 걸러진 정보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구글에 검색을 해 보면 정말 똑같은 문장을 단지 번역만 해서 책에 실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출처도 밝히지 않고 말이다
인터넷이 무섭긴 무섭다
결국 정보의 공유화가 세상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고, 사람들 사이를 평등하게 만들고, 영어라는 언어가 barrier를 형성하는 느낌이 든다

책 읽다가 자꾸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데, 하여튼 재밌게 읽은 책이고, 유명 저술가들이라 문장력이나 위트가 넘치며 한 편의 에세이로서 완성도는 좀 떨어지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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