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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왕실여성 인물사전 ㅣ 한국학 주제사전
김창겸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5년 7월
평점 :
왕실여성 인물사전이라는 형식이 독특해 읽게 됐다.
사전 특성상 지루한 인물 나열일까 봐 걱정했는데 관심이 워낙 많아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라 정리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워낙 역사서에 등장하는 왕실 여성들이 적기 때문에 무려 단군의 어머니 웅녀부터 덕혜옹주까지 내려갔는데도 400 페이지가 안 된다.
왕조별로 나누고, 그 안에서는 가나다 순이라 시대적 흐름이 약간 뒤섞인 것은 보기 불편했다.
사전이라는 특성상 찾아보기 쉽게 하려고 그런 것 같긴 하다.
삼국시대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이라 정리하면서 읽었고 고려 시대의 복잡한 족내혼 때문에 약간 힘들었다.
삼국시대와 고려까지는 왕실에서 족내혼이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조선 역시 왕비는 사대부가에서 들였지만 사돈끼리 혼인하는 겹사돈이 매우 활발했다.
왕가의 자식들이 혼인할 수 있을 정도의 위상을 가진 명문가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려시대까지는 그마저도 혈통 보전을 위해 같은 왕실 내에서만 이루어지다 보니 사촌이나 이복남매끼리 혼인은 물론이고, 이모나 조카와의 결혼도 흔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왕실 여인들의 출산율이 매우 높아 후궁 뿐 아니라 왕비들도 10여 명의 자식을 낳았다.
확실히 유교적 교조주의가 강화되면서 금욕할 날들이 많아져 왕실이 후계자 부족으로 시달리지 않았나 싶다.
조선시대 후궁들의 집안이 간략히 나왔는데 의외로 간택 후궁이 많고 승은 후궁은 몇 안 되는 것 같다.
중전 자리에 오른 장희빈만 하더라도 궁인임에도 중인 역관 집안이었다.
이 책에서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무수리가 아닌, 침방 나인으로 나온다.
쟁쟁한 왕가 사람들 속에서 영조가 느꼈을 출신 컴플렉스가 얼마나 컸을지 새삼 느껴진다.
사료가 많지 않다는 게 너무 아쉽다.
이 많은 왕실 여성들 중 자신의 문집을 낸 사람은 오직 혜경궁 홍씨 한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 대단하다.
<한중록> 같은 개인적 자료가 많이 나올 수 있는 문화였다면 역사는 얼마나 풍부해졌을까!
<인상깊은 구절>
319p
정순왕후를 간택한 이유는 학문적으로도 명망이 있고, 영조의 첫째 사위 월성위 김한신을 배출한 만큼 가문의 위상도 있었던 데 비해 정치적으로는 한미하였기 때문이다. 영조는 자녀들을 당대 최고의 가문 자제들과 혼인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강력한 외척들이 존재하였다. 초기에는 외척들과 협조하여 탕평을 추진하였지만, 강력한 외척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왕권에 위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49p
효의왕후는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문안을 받는 차서를 혜경궁보다 먼저 받게 하자 이를 환수하기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혜경궁 홍씨를 지극히 모셨다. 또한, 우애가 극진하여 화완옹주가 그를 괴롭혀도 개의치 않았고, 특히 시누이 청연군주, 청선군주와 우애가 돈독하였다.
(점잖은 정조와 아주 잘 어울리는 부덕있는 배필이었던 것 같은데, 자식을 못 낳아 안타깝다. 시어머니 혜경궁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특한 며느리였을까 싶다)
<오류>
54p
마야부인은 진지왕의 아들 용춘과 혼인한 천명부인과 자매이다.
-> 마야부인은 진평왕의 부인으로, 선덕여왕과 천명부인의 어머니이다.
57p
원성왕-인겸-충공-문목부인과 원성왕-예영-헌정-희강왕으로 이어지는 원성왕 후손(8촌)간의 근친혼으로 맺어졌다.
-> 문목부인과 희강왕은 8촌이 아니라 6촌이다.
89p
조생부인의 남편은 <삼국유사>에는 눌지마립간의 동생 기보갈문왕으로, <삼국사기>에는 나물왕의 증손 습보갈문왕으로 되어 있다.
-> <삼국사기>에 따르면 습보는 나물왕의 손자이다.
206p
창왕이 즉위한 뒤 "사헌에서 혜비, 신비, 정비(正妃), 현비의 4妃 들이 모두 본처가 아니니 충혜왕 때 경비의 전례에 의하여 공상을 중지하고 세록을 지급할 것을 청하였다."
-> 正妃 는 우왕의 6비인 정비 신씨로, 우왕 폐위 후 곧 쫓겨났고, 위 기사의 정비는 공민왕의 비 이씨로 한자가 定妃이다.
239p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부인인 민부대부인의 친족으로 명성황후가 종질녀의 항렬이 된다.
-> 명성황후와 부대부인은 질녀가 아니라 12촌 자매 사이로, 같은 항렬이다.
1884년 급진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이 발생하여 민치호가 죽음을 당하였다.
-> 갑신정변 때 죽은 사람은 순명효황후의 아버지 민태호이다.
276p
1885년(고종 22) 을미사변이 발생하였을 때
-> 을미사변은 1895년에 발생했고 고종 32년이다.
294p
의인왕후의 아버지는 번성부원군 박응순이며
-> 반성부원군이다.
302p
인성왕후는 1577년 11월 66세로 승하하였다.
-> 1514년생이므로 66세가 아니라 64세에 승하하였다.
309p
장렬왕후는 1688년 64세로 창경궁 내반원에서 사망하였다.
-> 장렬왕후는 1624년생이므로 65세로 사망하였다.
328p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는 정희왕후의 오빠 윤사분의 증손녀이고
-> 장경왕후는 오빠 윤사윤의 증손녀이다.
331p
안동김문에서는 19세기에서만 3명의 왕비를 배출하게 되었는데 모두 김성행의 후손들이었다.
-> 김성행의 후손은 철인왕후이고, 순원왕후는 김달행, 효현왕후는 김탄행의 후손이다.
364p
가계도에서 조생부인이 자비마립간의 딸로 나왔는데, 눌지마립간의 딸이고 자비마립간의 누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