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술사 -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
이진숙 지음 / 민음인 / 200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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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다소 지루하고 어려웠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다.

러시아 미술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쌓여서 그런지 흥미롭게 잘 읽힌다.

도판이 좋은 편이다.

지난 번 학고재에서 나온 이주헌씨 책도 그렇지만 민음사에서도 도판을 선명하게 잘 실어줘서 감상하기 좋았다.

특히 두 페이지에 걸쳐 큼직하게 실어준 도판들이 많고 책에 나온 그림들은 거의 다 실려 있어 러시아 미술사를 훑어 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앞서 읽은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는 미술관의 소장품들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 책은 저자가 전공자인 만큼 러시아 미술사 전반에 대해, 특히 러시아 혁명 이후 미술사 동향까지 같이 언급해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러시아 미술사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지루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인상깊은 구절>

23p

이콘화는 신의 세계가 현현한 것이므로 그것은 감상의 대상인 예술 작품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이며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콘화가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 수 없다. 강력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과 늦은 근대화로 러시아에서는 서유럽과 달리 오랫동안 이콘화의 전통이 유지되었다.

77p

예카테리나 여제의 수많은 애정 행각은 유명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녀가 군주로서 훌륭한 치적을 남기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여제의 애인들은 늘 그녀에게 충성을 바쳤고, 그들 중 몇몇은 탁월한 행정가로 여제의 업적을 빛나게 해 주었다. 러시아와는 아무 혈통 관계가 없었지만 탁월한 공적과 인간적인 기이함이라는 측면에서 그녀는 진정 러시아의 군주다웠다. 이후 어떤 러시아의 차르도 그녀만큼 위대한 공적을 남기지 못했다. 

192p

러시아의 인상주의 작가로 레비탄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레비탄 스스로는 그런 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림의 내용과 정조를 중시했던 19세기 러시아 화가의 전형이었다. 레비탄의 시대에는 자연 외광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흔해졌지만 러시아 작가들은 좀처럼 인상주의자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 이동파 화가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인간'과 '삶'이었다. 러시아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발견한다.

263p

민중들의 고통을 최대한 느낀다는 의미에서 그는 '막심 고리키(최대한의 고통)'라는 필명을 썼다. 톨스토이는 고리키를 보고 "그는 마치 노인으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가난한 민중 출신인 고리키는 백작인 톨스토이가 평생 느꼈을 고통을 유년기 때 이미 다 느꼈을지도 모른다. 

270p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잔재주꾼으로 전락하지 않고 진정한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해서 그는 작품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했다. 모두가 그의 초상화에 열광했고 밀려드는 초상화의 의뢰에 그는 시간이 없어 진정 그가 하고 싶었던 새로운 것들을 뒤로 미뤄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의 많은 초상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만족했지만 정작 세로프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서 불만스러워했다. 만족을 모르는 이 예술가는 늘 새로운 예술을 갈구했다. "죽을 때까지 나는 회화의 신선함을 유지하고 싶었다"라고 그는 말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갈망이 세로프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는 쉽게 타협할 수가 없었던 시대를 감지했다.

276p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의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을 연구하게 되면서 중세 미술의 '비물질화, 육체 없는 영혼의 표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1880년대 말 그의 동료였던 세로프, 코로빈, 레비탄 등은 여전히 사물과 생활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리얼리스트였다. 그는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브루벨은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 숨겨진 강력한 영혼의 힘을 형상화하는 꿈에 사로잡혔다. 

347p

성 게오르기우스의 형상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화면 가득한 색채들의 조화 속에서 장엄하게 울리는 승리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실제 대상의 형성을 기억하면서도 실제 대상의 직접적인 묘사 이상의 것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칸딘스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육화된 감성적인 상징'으로서의 이콘화의 본질에 도달하고 있다.

 칸딘스키가 보기에 인상파를 포함한 19세기 미술은 쉬운 길을 걸었다. 그의 말처럼 모두가 "자연의 작은 조각이나 분홍 옷을 입은 부인의 초상화에서처럼 모든 사소한 것들에 매달리게 되었다." 칸딘스키는 현대 미술은 이런 사소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정신적 가치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칸딘스키에 따르면 모든 예술은 각각의 형식이 외적으로는 다르게 보일지라도 동일한 목적에 종사한다. 그 목적은 인간의 영혼을 감동시키고 정화하는 것이다. 물질주의의 악몽이 영혼을 억압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회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정신적인 추상으로 전환함으로써 그들의 목표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20세기 미술은 필연적으로 비대상적인 미술로 나가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350p

칸딘스키와 말레비치는 현대 추상 미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칸딘스키의 추상은 현실 대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감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반대로 말레비치의 추상은 현실 대상을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다. 

356p

이런 초월에의 열망은 예술의 근원과 존재 의의를 묻는 예술의 '철학화', '사상화'로 드러난다. 이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고유한 특징이며 추상 회화로 나가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 20세기 초반의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추상화가 칸딘스키와 말레비치가 모두 러시아 출신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러시아의 입체미래주의자를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분파 정도로 생각하고 1914년에 모스크바에 왔던 마리네티가 받은 푸대접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모욕감을 느끼며 한마디 한다. "이들은 진짜 미래주의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하늘에서 살고 있다. 세상을 경멸하고 삶을 부정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이탈리아식 미래주의자가 아니었다. 시인 마야코프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미래주의자들 그리고 미술에서의 입체미래주의자들은 초월에 대한 유토피아적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현대적인 '세상을 경멸하고 삶을 부정'했다. 그들은 물질적인 세상을 뛰어넘어 추상 미술로 단숨에 비상했다.

368p

비테프스크에서 샤갈과 말레비치의 악연이 시작된다. 말레비치가 보기에 샤갈은 새로운 세계 건설의 의지도 역량도 없는 순진한 작가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샤갈이 사랑한 것은 오래된 비테프스크의 삶, 그곳에 담겨 있는 유대인들의 오래된 삶이었다. 샤갈은 추상의 신세계로 나갈 아무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샤갈에게는 샤갈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일이었다. 샤갈을 축출하고 비테프스크를 장악한 말레비치는 자신의 절대주의를 '실현'한다. 

386p

로드첸코는 경제적인 가구를 기획했으며 포포바와 스테파노바는 직물 디자인과 의류 디자인에 종사했다. 그들에게 '생산'이라는 개념은 '창작'이라는 모호한 개념보다 더 구체적인 것으로 신세계 건설이라는 유토피아적 열망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미술이 삶을 직접적으로 기획하고 지배하는 방식은 바로 디자인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유토피아적 산업화'였다. 자본주의 상품은 소비자들의 현재적인 만족을 추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들이 사용자들의 의식과 삶을 고양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391p

1920년대 말 예술 정책의 변화 속에서 로드첸코의 사진들은 지나치게 미학적이고 지나치게 섬세해 보인다. 로드첸코는 형식주의와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에 비난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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