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공신회맹축, 공신과의 옛 맹약을 지키다 조선의 사대부 17
박성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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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많이 한 주제였는데 내용보다는 공신회맹축이라는 형식만 자세히 언급하여 아쉽다.

공신이 받는 혜택이나 조선 사회에서 가졌던 위상, 의미 이런 자세한 내용에 대해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총 28회의 공신 선정이 이뤄진 줄 알았는데, 그 중 7회는 삭훈되어 총 21회가 남게 됐다.

광해군 때 임해군과 영창대군 살해, 반역 고변 등 4회 시행된 공신 선정이 인조반정 후 삭훈됐고, 경종 때 목호룡의 고변으로 이뤄진 부사공신이 영조 즉위 후 삭훈됐다.

또 명종 즉위 당시 을사사화 후 시행된 위사공신도 선조 즉위 후 사림들이 정권을 잡자 삭훈됐다.

후대 왕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전왕대 공신도 삭제될 수 있었던 걸 보면 나라를 위하는 충정 개념 보다는 정치적 포상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

숙종 때 허견의 옥사로 경신대출척이 이뤄지면서 보사공신이 선정됐으나 인현왕후가 폐출되면서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삭훈됐다.

다시 인현왕후가 복위하면서 남인이 쫓겨나는 갑술환국이 발생하자 이번에는 다시 복훈시킨다.

과연 정국을 쥐고 흔들었던 숙종답다.

국왕으로서는 자신을 지지할 연대 집단을 만드는 것이니 많은 정성을 쏟았을 것 같다.

아무 정변이나 사건 없이 평화롭게 즉위한 성종 때도 좌리공신을 책정한 것을 보면 국왕이 단순히 특권 집단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 왕의 즉위 후 계유정난 같은 정권 찬탈을 막기 위한 정희왕후의 고심 끝에 나온 게 아니었을까 싶다.


<오류>

34p

1764년 왕명으로 청나라 의종의 휘호를 피하기 위해 양무공신으로 칭호를 바꾸었다.

-> 의종은 청나라가 아니라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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