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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ㅣ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평점 :
신간이 나왔을 때 신청해 놓고 이제서야 읽게 됐다.
책 판형이 한 손에 들고 읽기 딱 좋은 사이즈고 디자인도 괜찮다.
한 쪽은 사진만 한 쪽에만 글이 실려 내용은 적은 편이다.
저자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책 전체에 흐르는 굴절있는 삶에 대한 애환이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막연한 동경과 긍정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독재와 파시즘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찬은 있으면서 왜 스탈린과 마오쩌둥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는 드문 걸까?
왜 공산주의는 평등을 말하면서 1인 독재와 1당 독재를 이어가는 걸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비판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 같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과 어떻게 다른가?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과연 다른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개최한 조르디 모란디 전시회를 우연히 보고 나서 이 화가의 정물화에 완전히 빠졌다.
모란디는 미술사에서 별로 언급도 안 되는 화가라 그 때 처음 알게 됐다.
이 책에도 모란디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미학적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화가가 평생 추구했던 본질을 느낌으로는 이해할 것 같다.
이탈리아 인문 기행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인상깊은 구절>
43p
반종교개혁의 시대, 로마라는 위험한 도시의 공기가 "기질적으로는 반역자였지만, 종교적 신조에서는 열광적인 정통파"였던 이 젊은 화가 카라바조를 혁명가로 키워낸 셈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을, 그 잔학함과 어리석음까지 놓치지 않고 그려낼 수 있었던 혁명가로.
124p
얀 판 에이크,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한스 멤링, 로베르 캉팽 등 플랑드르파 회화의 명품은 단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놀랄 만큼 생생하다. 어째서 14~15세기라는 시대에 이러한 명화가 집중적으로 탄생했던 걸까?
하위장아의 <중세의 가을>에 따르면, 그것은 페스트의 대유행, 유대인 학살, 백년전쟁, 십자군, 끊임없이 반복되던 기근처럼 혹독하고 무참한 사건으로 뒤덮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재앙과 빈곤이 누그러질 날이 없었다. 역겨우리만큼 가혹했다. 영예와 부를 열심히 바라며 탐욕에 사로잡혔던 것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참혹하기 그지없던 가난으로 인해 그 차이가 명예와 불명예의 대조처럼 너무나도 극명했기 때문이다. 처형을 비롯한 법의 집행, 큰 소리로 떠드는 행상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을 알리는 행렬 뒤로 고함소리, 애도하는 울음, 그리고 음악이 따라왔다."
이런 혼란한 시대가 역설적이게도 보석과도 같은 플랑드르파의 그림을 낳았던 셈이다. 하위징아의 저 묘사도,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르네상스 시대의 '극단적이기까지 한 양면성'은 아니었을까.
293p
미술은 태생 자체가 권력에 휩쓸리기 쉬운 성격이 있기 때문에 권력과는 항상 위태로운 관계를 맺어왔다. 피카소 같은 예외적인 사례가 있다고는 하지만 권력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지켜내는 일은 예술가에게 숙명적 난제다. 최대의 패트런인 권력자는 힘과 재력을 무기 삼아 예술가에게 기념할 만한 대작을 제작해달라고 요구한다. 어떤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경우는 기뻐하며 예술가는 그 요구에 응한다.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만들고 싶다'는 제작 욕구처럼 제어하기 힘든 욕망을 충족해야만 하는 예술 행위 특유의 함정이 늘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325p
하지만 미켈란젤로에 대한 하니 고로의 관점은 오늘날 '이상화, 단순화'된 의견으로 여겨진다. 원래 당시 '시민'이란 오늘날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시민'과는 달리 "옛 귀족층으로부터 도시 권력을 탈취한 부유한 상인이나 은행가를 중심으로 한 신흥 시민 계층"이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아래 계급인 중소시민 상공업자나 하층 노동자에 대해서는 명확한 우월감과 차별의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주장했던 공화주의 체제는 한정된 귀족적 공화제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근대적인 민주 공화제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334p
미켈란젤로가 눈앞의 수입이나 영달을 위해 일했다면 이 같은 삶을 완수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강인하고 대적할 자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닌 채 소심하게 자기보신을 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 속에서 끓어오르는 창조의 욕구에 충실했다. 언제나 더 멀리 내다보고 더 높은 곳을 우러렀다. 미켈란젤로가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은 권력자가 원했던 바를 훌쩍 뛰어넘는 곳에 있었다. 그가 펼쳐난 창조의 힘은 500년 후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이다. 마리오 시로니나 후지타 쓰구하루와는 역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