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름다움 - 고미술에 매혹된 경제학자의 컬렉션 이야기
김치호 지음 / 아트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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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컬렉터가 쓴 에세이다.

수집욕은 없지만 미술, 특히 도자기나 서화 등 고미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 됐다.

책 디자인도 잘 되어 있고 내용도 괜찮았다.

고미술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 다소 사변적이고 당위적인 예찬론이 많아 뒤로 갈수록 지루하긴 했지만,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본 좋은 시간이었다.

저자의 수집품을 소개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어떤 작품을 모으는지, 왜 그 작품을 사랑하는지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없어 아쉽다.

특히 전시 공간을 갖기 힘든 일반 컬렉터들은 자신의 수집품을 어떤 식으로 보관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소유보다는 감상 쪽이지만 본질적으로 미에 대한 욕구는 같기 때문에 많이 공감했다.

특히 무라카미 류의 말을 빌려, 취미만으로는 큰 성취감을 얻기 힘들고 일로 접근할 때 비로소 몰두하여 큰 만족감을 얻게 된다는 주장이 신선했다.

돈을 들여 수집을 하는 사람들처럼 나 역시 독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생산성이 없는 단순한 취미는 그저 가볍게 즐길 뿐 깊이 몰두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만족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

관심이 가는 분야는 역시 서화이고, 그 외 도자기도 좋지만 나도 저자처럼 목가구나 토기가 참 좋다.

사방탁자 같은 목가구의 공간미, 비례미도 좋고 도자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삼국시대 토기에 마음이 끌린다.

저자도 삼국시대 토기가 제 값어치를 못받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

분청사기의 현대적인 조형미도 좋지만, 흙이 주는 투박함, 특히 수천 년 전의 기물이라는 긴 시간의 깊이까지 더해져 기회가 된다면 토기는 한 번 소장해 보고 싶다.

가격도 좋은 것이 백만원 수준인라니 초심자들이 관심가져 볼만 하겠다.



<인상깊은 구절>

미술품의 창작과 거래, 컬렉션 문화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국가든 개인이든 축적된 자본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풍요를 토대로 꽃을 피우고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높에 평가받는 고급한 미술품을 비롯해서 세계가 찬탄하는 문화유산들은 대개가 절대왕조시대,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상류층의 후원과 주문으로 만들어지고 수집 보존되어온 결과임을 상기하자.

 근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일반 시민계급으로 분산되는 가운데 컬렉션 문화는 사회 저변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역사적 뿌리가 오래된 부(경제력)와 미술품 컬렉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별 변함이 없다. 미술품 수요는 본질적으로 '소득'보다는 '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45p

우현 고유섭 선생의 말을 떠올린다. "한국 미술은 신앙과 삶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즉 '생활 자체의 본연적 양식화'라는 점에서 민예적 성격을 갖는다."

95p

과학기술의 수준이 낮고 더욱이 그 진보가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던 근대 이전, 풍토와 마을이 인간의 미술활동을 비롯해 삶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진보를 경제력 향상과 물적 풍요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이 시대에는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던 시대와는 달리 자연환경과 마을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과학기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문명화와 같은 새로운 환경요소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107p

당시만 하더라도 이 분야 연구 성과가 거의 축적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더욱이 이 분야와 관련이 없는 농림학교 졸업 학력의 일본인이 이 정도의 연구보고서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이링 아닐 수 없다. 다쿠미의 그런 업적에 대해 나는 오직 조선 도자와 민예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114p

그 추도 호에서 1920년대에 이미 천재 도예가로 명성을 떨쳤던 가와이 긴지로는 다음과 같은 헌사를 남겼다.

"한일합방 이래 조선에 건너간 일본인들이 그 나라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했던가에 생각이 미치면 지금도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됩니다. 그런 가운데 아시카와 씨 등이 매사에 그에 대한 속죄를 하시던 일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복자가 저지른 과오. 그런 야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당신이야말로 인간의 무지에 빛을 비추어준 분이었습니다."

 아사카와 노리다카, 그는 조선 도자기를 조선 사람보다 더 깊이 탐구하고 수많은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아우 다쿠미와 더불어 조선의 도자문화와 민예를, 그리고 조선미술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 몇 안 되는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39p

"인생에서 살아갈 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153p

"취미의 세계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건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환회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김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일 안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실의와 절망도 함께 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무라카미 류는 '취미'와 '일'에서 비롯하는 감흥이나 성취감의 정도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오직 일을 통해서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말에 너무나 공감한다. 그저 좋아서 하는 순수한 취미는 생산성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심전력하면서 몰두하지 않는다. no pain, no gain 은 성취감에도 해당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인간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므로 너무나 소중하고 사명감을 갖게 만든다)

162p

예를 들어, '완물상지'를 경계하는 유교적 시대정신이 미술창작이나 수집 감상 활동을 억제했다고 보는 관점이다. 유교정신에 충실한 사대부들이 지배하던 조선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일리 있는 지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나는 조선시대의 나라 형편이 미술활동을 후원하고 고급 골동서화를 즐겨 소장할 수 있을 정도로 물적 경제적 토대가 충분치 않았다고 보는 관점에 더 점수를 주고 있다.

165p

시대적으로 대략 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서화를 수집하고 완상하는 취미는 권력과 경제력을 갖춘 왕실이나 종친, 또는 사대부만이 누릴 수 있는 고급하고 아취있는 생활의 한 방편이었다. 적어도 중인이나 상민의 영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화폐경제가 확산되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조류를 앞서 인식하고 전문기술 직종에 종사하면서 부를 축적한 중인계층이 새로운 서화 수집과 감상층으로 가세한 것이다. 중인계층 가운데서도 특히 경제력이 확대된 의관이나 역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들은 당시 문화 선진국인 청나라를 왕래하며 새로운 사상사조인 북학을 받아들이면서 시대변화를 앞서 읽었고, 한편으로는 서화 컬렉션을 통해 사대부 영역으로의 진입을 꿈꾸기도 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버렸듯이 나도 세상에 구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내가 문화를 선양하여 태평시대를 수놓음으로써 300년 조선의 풍속을 바꾸어놓은 일은 먼 훗날 알아주는 이가 나타날 것이다."

206p

마지막 세 번째 삶은 문화예술을 통한 삶이다. 문화예술의 세계에서는 1000년 단위로 흥망성쇠와 순환 질서를 이야기한다. 그만큼 그 세계의 힘(삶)은 질기고 그 영향(생명력)은 오래간다는 말이다. 인간의 인식체계로는 영원의 삶, 내세의 삶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문화예술에 내재된 흥망성쇠와 순환 질서는 100년을 살기 힘든 인간의 안목이 아닌 역사의 안목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256p

우리 사회에서 고미술품 딜러나 컬렉터들이 문화계를 이끄는 지성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신뢰를 토대로 하는 거래문화의 정착은 결국 고미술계 사람들의 양식과 모럴에 달려 있다는 보편적 인식에 지금의 현실이 겹쳐질 때, 그 둘의 어긋남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오류>

136p

도판의 주인공은 메디치가를 세운 국부 코시모 데 메디치가 아니라 훗날 공작 가문을 연 후손인 코시모 1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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