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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밥상 - 발기 속 음식 172
정혜경 지음 / 푸른역사 / 2018년 12월
평점 :
제목에 걸맞는 좋은 책이다.
조선 왕실에서 만들어진 밥상을 실제 요리로 재현하고 요리법까지 상세하게 기록했다.
요리에 관심이 없어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눈으로 직접 요리 사진을 보니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일상 수라 뿐 아니라 각종 연회와 제사 음식까지 재현해 책값 45000원이 수긍이 간다.
서양의 요리처럼 아주 장식적이지는 않지만 전통 음식만의 단정한 멋이 있고 보기에도 담백해 보여 부담스럽지 않다.
27개월의 상례 기간 내내 하루 세 끼를 전부 실제 밥상처럼 만들어 신주 앞에 차렸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차피 산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긴 하지만 과연 유학의 나라라 봉제사 접빈객이 사대부 여인의 가장 큰 의무였다는 게 이해된다.
조선은 확실히 조상신을 숭배하는 유교의 나라였음이 틀림없다.
<인상깊은 구절>
51p
현재 종가의 제사상차림과 상당히 유사했는데 오히려 최근의 상차림이 좀 더 화려하다. 사실 조선 전기와 중기의 제례상차림은 채소 찬 위주로 차리는 소식의 형태가 일반적이었고 고기는 조상에 대한 효의 실천 차원에서 탕에 사용한 정도였다. 그러니 다시 검박했던 과거의 전통에 따라 간소하게 차리는 것이 오히려 더 조상을 위하고 전통에 맞는 상차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74p
특히 고종과 순종의 탄일발기는 다수가 전하는데 조선 후기 왕실에서 설 다음으로 큰 명절이었다고 한다.
107p
음식을 올리는 의식은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奠과 祭로 구분했다. 하관 이후부터 제가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망자를 산 자가 아닌 조상의 신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이나 제와는 별도로 매일 식사 시간에 올리는 상식이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 사회에서 돌아가신 부모님께 올리는 경우 상식을 생전과 똑같이 봉양하는 효의 실천으로 간주하여 매우 중요시했다. 보통 27개월간 매일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바쳐 망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다했다. 이러한 상식례는 상주로 하여금 효의 실천을 통해 죽음의 충격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걸 보면 유교에서 조상은 단순히 공경하는 의미가 아니라 종교적 신이었음이 분명하다. 산사람에게 식사를 봉양하듯 3년 동안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실제 음식을 차려서 바치다니, 단순히 혼령을 위로한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377p
왕실의 선조 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賓을 대접하기 위한 大享이므로 제물 진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497p
일반적으로 귀족의 상징은 육식이었다. 정치 권력의 표현 수단으로서 향연이 열렸으며 이를 통해 권력을 과시하고 봉건적 결속력을 유지했다. 장식적인 요리도 매우 발달했다.
519p
무사 정권은 검소한 것을 善 으로, 사치를 敵 으로 보는 금욕주의에 충실했다. 이는 요리에도 반영되어 막부의 향연 요리는 미식을 추구하지 않았고 금욕을 중시했다.
현대 일본의 세련된 식생활 문화를 창조한 것은 궁궐이나 무사가 아니라 에도 시대의 부유한 시민들이었다. 일본에서는 17세기 후반이 되면 도시의 상인들이 지배계급인 무사보다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고 시회적 실력을 갖춘다. 이 시기에 외식 산업의 발달이 눈부시게 이우어져서 일본의 대도시에는 동시대 유럽보다 훨씬 더 다양한 식당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반 시민을 고객으로 하는 도시의 고급 레스토랑이 최상의 일본 음식 문화를 만들어냈다.
<오류>
61p
저경궁, 대빈궁, 정호궁과 선희궁에서 춘분과 추분에 지내던 제사상에~
-> 정호궁이 아니라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의 사묘인 연우궁이다.
269p
도판 - 순명효황후 민씨
-> 사진은 순명효황후가 아니라 순정효황후이다.
281p
왕대비는 효종황후다.
-> 왕대비는 효종이 아니라 효정왕후다.
497p
당대의 화려한 왕실 연회식은1368년 이탈리아 갈레아초 비스콘티 2세의 결혼식 연회와~
-> 갈레아초 비스콘티 2세는 1350년에 결혼했고, 아들인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는 1360년과 1380년 두 번 결혼해서 연도와 안 맞다. 검색해 보니 1368년 갈레아초 비스콘티 2세 시절에 밀라노에 스포르차 성이 세워졌는데 혹시 이 때 연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499p
1378년 1월 6일 샤를 5세가 샤를 4세, 보헤미아 황제와 그의 아들 바츨라프, 로마인의 왕을 위해 연 연회를 묘사한 그림이다.
-> 샤를 4세는 프랑스의 국왕이고 샤를 5세의 할아버지 뻘이라 1328년에 이미 죽었는데 보헤미아 황제라니, 도대체 누군가 싶어서 찾아 보니, 카를 4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고 보헤미아 국왕인 카를 4세이다. 카를이 프랑스어로 샤를이지만 하지만 혼동을 피하기 위해 카를 4세로 고쳐야 할 것 같다.
502p
리젠트 왕자 시절에는 물이 흐르는 상태에서 살아 있는 어류를 저녁 식사로 대접하는~
-> 리젠트 왕자가 누군가 했더니 섭정왕자라는 뜻이었다. 즉, 조지 3세 시절에 미친 아버지를 대신해 섭정한 조지 4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