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비판 - 『환단고기』와 일그러진 고대사
이문영 / 역사비평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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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만들어진 한국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역사학과를 나온 저자는 인터넷에서 널리 퍼진 환단고기에 대한 분노로 유사역사학 혹은 사이비, 아마추어 역사가들과 싸우기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위서를 가지고 역사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으나 학계의 이런 반응 때문에 대중들에게 한민족 지상주의가 의외로 널리 퍼졌던 것을 보면, 학자들이 대중과의 소통에 노력을 많이 해야 할 듯하다.

동이족이 곧 한민족인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은나라라는 주장은 많이 익숙하다.

환국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황당해 별 파급력도 없는 반면, 은나라가 동이족이고 곧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얘기는 그럴 듯해 보인다.

저자가 비판한 대로 고대 중국이 이룬 문화적 성과를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동북공정 못지 않은 동이공정이 아닌가.

민족의 역사를 허황되게 확대시키려는 극우파시즘과 유사역사학은 비슷한 점이 있는데 희안하게 좌파들도 좋아한다.

토착왜구라고 상대를 인신공격하고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태도는, 역사학자들을 식민사관에 매몰된, 친일파 이병도의 제자들이라고 몰아세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화랑세기>에 대해서도 저자가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이제 치우는 한민족의 조상이 아니고, 은나라 사람들도 동이가 아니며, 동이가 곧 한민족은 더더욱 아니며, 낙랑은 평양에 있었던 한나라의 군현이었으며, 백제는 요서땅을 경영한 적이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알겠다.



<인상깊은 구절>

23p

유사역사학은 "뒷받침하는 증거나 개연성이 없는데도 주로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목적으로 제시되는 주장"이라고 정의한다.

47p

"사이비역사가들은 증거를 선별적으로 채택한다.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은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주는 증거만을 사용한다. 사이비역사가들은 논리 전개 과정에서 가능성과 개연성의 구분을 흐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일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났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발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에 '어떤 일이 개연성이 있다'고 할 때에는 일어났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사이비역사가들은 하고 많은 증거 중에서 하필이면 예외적인 것에 주목한다."

56p

자신들만 역사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친일파와 노론에 의해 나라가 조종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사학자(친일파와 노론의 앞잡이)를 증오하고 이들의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믿으며 무책임한 인신공격을 가한다.

"대중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증거 하나만 대보라"고 요구하면서 증명의 부담을 자기 쪽에서 체제 쪽으로 돌리려 한다."

역사학은 단 하나의 증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증거들의 결합을 통해 귀납적으로 증명되는 학문이다. 이 증거들 가운데 한두가지 불일치가 존재한다고 해서 전체 결론이 무너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역사학가들은 증거의 수렴을 거부하고 자기들 주장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하여 대중에게 알린다.

143p

역사학계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민족적 감정에 호소하는 주장을 늘어놓아 시민들을 현혹하는 것이 유사역사학이 행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했던 약점을 가진 이병도를 공격하고, 역사학자들은 모두 이병도의 제자라는 어이없는 프레임을 제시하며, 엄연히 존재하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역사학자들(이기백, 전해종 등)까지 친일파 사학자로 몰아간다. 오히려 친일 행적이 뚜렷한 최동이나 문정창 같은 이들의 주장은 잘도 이용하면서 때로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시미치를 떼기도 한다.

174p

유사역사가들이 증오하는 식민사학은 진작에 죽어버렸다. 오히려 죽은 식민사학을 살리려 애를 쓰는 것은, 그것이 살아야 적대적 공생 관계를 끌고 갈 수 있는 유사역사가들이다.

 역사학계는 그동안 대중과의 소통에 힘쓰지 않은 점을 반성하고 더욱 다양한 방법과 경로를 통해 역사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해나가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240p

치우는 우리 민족과 아무 관계없는 중국의 전설 속 괴물에 불과하다. 치우가 높이 평가받게 된 것은 중국 한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황제의 적대자였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열등감은 집요한 보상 심리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황제의 가장 지독한 라이벌이었던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최소의 작업은 <규원사화>에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자부심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규원사화>는 치우를 우리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후손이 없는, 그러나 강력한 무력을 지닌 존재'는 후대에 이용해먹기 좋다. 유럽의 여러 국가가 트로이의 후손을 자처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똑같은 이유로 치우는 한민족과 묘족의 조상으로 둔갑해버렸다. 이를 첫 번째로 수행해낸 것이 바로 <규원사화>였다. 

278p

고대 중국은 우리 민족의 역사로 윤색된다. 고대 중국이 이룬 문화적 성과는 모두 동이족이 해낸 것이고, 동이족은 바로 한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고대의 모든 국가를 한민족이 세웠다면 대체 중국사와 한국사를 구분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유사역사학은 '동북공정'보다 더 심한 '동이공정'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멸망했다. 왜? 그것은 조선이 유교 탓으로 문약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토에 엄청나게 집착하면서도 조선의 영토가 고려보다 더 확대되었다는 뻔한 사실조차 외면한다. 조선에 비하면 고려는 무수한 외침에 자주 시달린 편인데, 그런 점도 살피지 않는다. 일본에게 멸망당한 원죄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333p

일본제국이라면 능히 이런 짓을 할 만하다는 확신이 괴담에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해왔다. 쇠말뚝 괴담은 결국 강한 상대에 대한 피해 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으며, 상대를 바꿔가면서 계속 살아남았다.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일제강점기의 일본인이 했던 짓들 때문에 우리에게 인재가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증거도 없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허무맹랑한 미신을 일제의 만행으로 규탄할 때,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하고 규탄해야 할 만행은 오히려 잊힐 수도 있다.

372p

"전문 역사가들은 자기 영역을 그렇게 쉽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그들은 역사의 모든 풍부함과 복잡성 안에서 과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저기 바깥의 대중 영역에 있는 편향되고 틀리기까지 한 역사서에 맞서 싸워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의 지도자와 여론 형성가들이 역사를 악용해 거짓 주장을 강화하거나 어리석은 불량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을 용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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