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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그레이슨 페리 지음, 정지인 옮김 / 원더박스 / 2019년 4월
평점 :
아주 얇은 문고판 정도의 분량에 비해 가격이 높게 책정된 것 같은데 편집 디자인이 산뜻하고 무엇보다 책 내용이 너무 좋다.
비평가가 아니라 실제로 작품을 만드는 생산자의 목소리로 듣는 예술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신선하고 역시 깊이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터너상을 수상하고 국가에서 훈장까지 받은 유명한 도예가라고 한다.
표지 디자인이 너무 가벼워 보여 뻔한 이야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랜만에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있는 대화를 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어렵지 않다.
저자는 대중에게 어려운 내용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법을 아주 잘 아는 듯하다.
다만 한국어 제목이 책의 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고흐처럼 정식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 놀라운 창의력을 가지고 예술계의 별로 우뚝 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거의 불가능한 신화에 가깝고 예술가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은 성실한 직업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혁신적 사고나 시도를 모두 받아들여 이익을 내는 사업으로 바꿀 수 있는 상업주의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파격적인 시도도 결코 감당하기 힘들 만큼 파격적이지 않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에 과연 예술인 것과 아닌 것의 경계선, 기준은 무엇일까?
동료의 인정, 평단의 평가, 거물 수집가들의 취향 등이 모두 어우러져야 하지만 결국 예술가는 항상 진지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인상적이다.
아무리 상업주의에 휩쓸려 좋은 작품의 기준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도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핵심적인 방법은 바로 진지하게 작품에 임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 예술과 비예술의 기준 자체가 모호한 요즘 시대에 동시대 미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가의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숙고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인상깊은 구절>
26p
우리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이 어떤 고유한 아름다움의 특질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거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데 익숙해진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은 익숙함, 그러니까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을 강화해 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30p
자의식에 기초해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뿐 아니라 '예술이라 불리는 이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까지 성찰하는 것이다. 이러니 예술가의 역할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38p
어떻게 해서 어떤 예술이 다른 예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겨지느냐? 대부분의 미술관과 갤러리의 회전교차로를 포함한 예술계의 주류에서 무엇이 예술의 질을 가르느냐? 그것을 이해하는 핵심은 '가치 입증'이다. 그리고 그 입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누가 입증을 하는가. 누가 자신의 호의적인 의견과 돈과 주의와 시간을 투자하는가. 누가 특정 예술가와 예술 작품들에 가치를 부여하는가이다. 이 드라마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예술가와 수집가, 스승, 딜러, 평론가, 큐레이터, 언론... 아, 그리고 어쩌면 대중들까지도.
테이트 갤러리의 관장에 따르면 입증에는 네 단계가 있었다. 먼저 동료들의 입증이 있고, 다음에는 진지한 평론가들의 입증, 그다음에는 수집가와 딜러의 입증, 마지막으로 대중의 입증이다.
인정을 받는 것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며, 동료들이 가치를 입증해 주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영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같은 평론가가 한 예술가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던 시절은 지났다. 예술에 관한 글을 쓰는 이들에게서 호평을 받는 거야 좋은 일이고, 예술가들은 아주 한심한 글이라도 그들이 쓴 평을 글자 그대로 인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언론은 예술계의 다양한 목소리들 중 그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수집가에 대해 얘기하자면, 예술가라면 언제나 거물급 수집가가 자기 작품을 사 주기를 원한다. 그게 자기 작품에 영예를 더해 주기 때문이다.
44p
오늘날 한 예술 작품에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아마도 '미술관에 걸릴 만한 수준'이라는 말일 것이다. 한때는 작품에 신임을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그 작품의 의뢰자들,그러니까 왕과 교화와, 그 뒤를 이어 귀족과 부자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입증자 계급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이는 아마도 큐레이터일 것이다. 독일의 예술 평론가인 빌리 본가르트가 "예술의 교황들"이라 불렀을 정도로 큐레이터의 힘은 막강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개인 컬렉션을 위해 작품을 수집하고 구매해서는 안 되며, 자신들이 직업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분야의 일을 개인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 강령의 제약을 받는다. 그런 일을 한다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주 큰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46p
오늘날 공공 미술관에 자리 잡게 된 예술 작품은 대중의 투표로 그곳에 간 게 아니다. 그러기까지 그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사적인 감상과 판매와 아트 페어라는 일련의 비공식 심사를 거치면서 좋은 평가와 인정한다는 윙크를 받았다. 이런 식의 합의는 필수적이다. 예술계에는 완전히 새롭고 예리한 안목을 가졌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거나 라벨에 붙은 이름을 읽지 않고도 어떤 예술 작품에서 수준 높은 질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예술계에는 많지 않다.
물론 한 번 쌓인 명성이 계속 유지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성공한 예술가에 대해서는 결국 합의가 형성된다. 바라건대 여러 다른 맥락들에서도 계속해서 검증된 합의이기를, 그런데 그 합의의 본질은 뭘까? 여러 측면을 고려하고서 나는 그것을 '진지함'이라는 한마디로 결론 내렸다. 진지함이야말로 예술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통화다.
52p
1960년대 팝아트는 소비주의를 미술에 접목시킨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전통적인 예술처럼 보였다. 오늘날에는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예술 브랜드가 하나 생겨났는데 그 특징은 호사스러운 마무리, 이해하기 쉬운 형상,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이런 예술품들은 소비재가 맞다. 이런 예술가들은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소비주의를 한껏 포용하고 직원을 있는 대로 고용한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조수가 100명이 넘는다.
비교적 소박한 재료로 소비재 상품을 모방했던 팝아트와 달리 제프 쿤스는 비싼 재료를 쓰고 대단히 공을 들인 마무리를 보여 준다. 고가의 사치품처럼 말이다. 나는 제프 쿤스의 '공기 주입식' 금속 조각품들을 마치 자동차를 평가하듯이 평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역설적이게도 다수의 벼락부자 수집가들은 예술품을 사는 것을 페라리나 핸드백을 사는 것과 비슷한 일로 여긴다. 은행들도 예술이 견고한 자산군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65p
물론 자기가 하는 활동이 예술로 불리기를 원하는 매우 강력한 이유 중에는 경제적인 것도 있다. 미술 시장에는 엄청난 거액이 출렁대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자기가 하는 일을 예술이라고 부를 꽤 멋진 동기다.
77p
무언가를 예술이라는 틀에 집어넣는 것은 어떤 곤란한 상황에서든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통행권을 얻는 일이자 일종의 선점이고, 다시는 기량 부족에 대해 비난받지 않을 권리를 갖는 일이 되었다.
'예술 프로젝트'라는 게 이제는 쓸모없고 서투른 아마추어 활동을 가리키는 상투어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알다시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그리 잘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비디오 아티스트가 되고, 히트곡을 낼 만큼 딱히 작곡 실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아트 밴드를 만든다.
113p
예술은 여전히 창의력의 각축장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혁명과 반란과 대격변이 예술을 정의하는 개념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100년 전에 예술은 혁명이라는 개념과 거의 동의어였다. 현대 미술 전시회에 간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불쾌함을 느꼈으며 그림을 "야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개념으로부터 1세기나 지난 시점에 있다. "이제 아방가르드는 특정 시대에 속한 양식이 되었다."
124p
1950년대에 '해프닝'이라는 행위예술 개념을 정립했고, 당대의 진정한 최첨단 인물이라기에 손색이 없던 앨런 캐프로는 예술가들이 원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중산층의 안락한 삶이라고 단정했다. 당시 온수도 안 나오는 소호의 다락방에 살던 많은 예술가들에게는 꽤나 짜증나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는 예술가라는 직업이 다른 전문직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예술계에서 전복적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예술계는 정통을 꽤나 중시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예술가가 한 가장 반항적인 행위가 있다면 트레이시 에민이 보수당을 지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창의적인 반항아들은 흔히 자신이 권력자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창의적이고 독창적으로 살아감으로써 자신들이 실은 자본주의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야말로 자본주의의 생명줄이니까. 동시대 미술은 자본주의를 위한 연구개발 부서와 같다. 칼 마르크스는 진보 혹은 참신함에 대한 이 욕구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본성"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고 상품으로 재생산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해주므로 자본주의는 억압적인 사회주의와 달리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닐까?)
147p
두꺼비처럼 예술계 전체에 올라타 버티고 있는 거대하고 지배적인 것 하나는 두말할 것 없이 상업주의다. 상업주의는 현재 진행 중인 매우 막강한 예술운동이다.
나는 더 이상 아방가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다양한 수준으로 실험하는 다양한 현장들이 있을 뿐이다. 그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이 쓰레기지만 그건 언제나 그래 왔다. 그래도 그중 일부는 정말로 경이롭다.
164p
물론 아웃사이더 예술가라는 정말 멋진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 대학에 가지 않아도 예술가가 될 수는 있지만, 대학에 가지 않는다면 예술가로서 직업적 경력을 쌓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무척 어렵다.
이제는, 특히 서구에서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천재란 진기한 옛이야기에나 나오는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 전개 중인 동시대 예술의 분야들에는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비서구권의 천재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 서구에서는, 예술 학교에 다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탁월한 동시대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하고 순진한 생각이다.
169p
예술 대학의 관대하고 수용적인 품 안에 들어가는 것은 가족이나 사회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심오한 경험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차이와 상상력을 인정받고 허락받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들은 당대의 예술과 예술가임이 의미하는 바를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온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테크닉을 배우는 것 또한 큰 기쁨이다. 일단 어떤 테크닉을 배우면 그때부터는 그 테크닉 안에서 사고하기 시작한다. 나는 새로운 테크닉을 익힐 때마다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이 확장되었다. 기술들을 배우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어떤 기술을 다루는 실력이 향상될수록 자신감이 더 커지고 더 능숙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나는 느긋하되 능숙하게 무언가를 하는 상태를 좋아한다. 어떤 영역에 들어가 몰두해서 1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로 능수능란해지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기술들일 수도 있지만, 주차장에서 벌어진 시비를 중재하는 기술이나 트위터를 통해 사람을 모으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그 과정이 끝나면 학생들은 자신이 독특한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기를 고대하며 학교를 나온다. 그러나 옛말에도 있듯이, 독창성이란 잘 까먹는 사람들의 것이다!
물론 독창성은 분명 존재하며, 독창성을 대면할 때 느끼는 충격적 즐거움은 예술에 관심있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 중 하나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예술가도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예술에서 경력쌓기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니까.
175p
내가 만나 본 성공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대단히 엄격하게 규율잡힌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간 약속을 정확히 지키고 많은 시간을 일에 쏟아붓는다. 예술가란 모두 조금은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신화일 뿐이다. 예술가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예술가인 것이 아니라 예술을 만드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옛날에 그들은 지혜를 사랑했다. 오늘날 그들은 '철학자'라는 칭호를 사랑한다."
176p
마르셀 뒤샹은 말했다."내가 10년 동안 10만 개의 레디메이드를 손쉽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그건 모두 거짓된 것이었을 터이다. 과잉 생산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평범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