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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들이 말해주는 그림 속 드레스 이야기
이정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알찬 내용의 책이었다.
이 출판사의 다른 책들은 도판의 질이 떨어져 실망했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도판이 정말 훌륭하다.
출판사에서 도판에 신경을 아주 많이 쓴 것 같다.
미술사적으로는 덜 알려진 그림들을 많이 소개해 주고 도판 또한 매우 선명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저자가 전공자가 아니라서 가벼운 가쉽거리 수준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서양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의상과 당시 시대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준 성실한 저작이라 만족스럽다.
아름답게 치장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그림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채색 물감이 발달했던 곳이라 당시 시대상을 너무나 선명하게 잘 보여준다.
<인상 깊은 구절>
9p
이러한 분위기는 과거 일부 상류층에 국한된 미술품의 주요 소비 계층이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으로 확대되면서 더욱 촉진됐다. 부르주아의 취향은 일상과 현실에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평소에 입고 있는 옷과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 아웃과의 만남, 거리의 풍경 등 현실이 그림에 담기길 바랐다. 소비계층과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더 많은 현실의 패션이 그림에 담기게 된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행위를 생물학적 본능이라 정의하며 인간의 본질을 호모 에스테티쿠스로 보았다. 미학적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을 미학적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넘어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림과 패션이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즉각적이고 실존적인 행위라는 말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한다.
35p
의복의 예의범절은 당연하게도 많은 지출과 시간,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그만큼 여유 있고 한가하다는 반증이었다. 꼼꼼한 몸단장과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느덧 품위와 에티켓으로 굳어졌다.
72p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사람들의 모든 행동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고 했다. 성적 충동과 위대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 그것이다.
90p
제인 오스틴조차 여자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 "무서운 일이지만 독신 여성은 가난해지기 십상이다. 이것은 결혼을 선호하는 강렬한 이유가 된다."고 썼을 정도다.
160p
파리와 런던에 불어 닥친 자포니즘 열풍은 17~18세기 유럽을 강타한 시누아즈리 열풍을 능가한 것이었다. 시누아즈리가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며 상류층 문화로만 소비된 반면 자포니즘은 부르주아 계층을 중심으로 대중들의 일상 속으로 퍼져나갔다.
195p
플래퍼는 흔히 20세기 초 미국의 흥분과 쾌락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간주된다. 실제로 그들은 물신주의와 소비주의에 빠져 있었고 매사에 진지하지 못했으며 정신 없이 놀고 별로 이룬 것도 없다. 그러나 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지 못한가에 대한 사회적 자국을 요구하며 전통적인 성역할에 반기를 들었다.
201p
1929년 경제대공황이 시작되자 플래퍼, 가르손느, 게르다로 이어진 광란과 전위의 패션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여성들은 검정, 회색 같은 어둡고 재미없는 색상의 튼튼한 옷을 입고 공장에 나갔다. 이러한 내핍 시대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214p
100년 동안 이어진 혁명으로 의복의 계급은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계급에 따라 옷을 입도록 강요받지 않았고 마침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가 동시에 찾아왔다. 새로운 권력자가 된 이들은 몰락한 귀족이나 노동자 계급과 구별하는 새로운 옷차림을 원했다. 남성 부르주아지가 양심껏 도덕성을 강조한 검은색 슈트를 선택하고 신사가 되었을 때 여성 부르주아지는 귀족에 대한 선망을 대놓고 드러내며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을 압도할 우아한 옷과 사치품은 그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232p
혁명기를 거치며 사회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부르주아 남성들은 화려한 의복과 사치를 타락한 귀족 문화의 일종으로 여기고 경멸했다. 건강한 정신을 가진 신사라면 멋을 부리거나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는 하찮은 일 대신 사회적, 정치적 발전 같은 공공 영역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팽배했다. 절제, 근면, 성실은 부르주아 남성의 덕목으로 존경받았지만 과시적 소비는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구시대적 유물 같은 몇몇 귀족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상류층 남성들은 절제된 검은색 양복을 유니폼으로 선택했다. '남성의 위대한 포기'의 시대였다.
남성들의 억눌린 소비 욕망은 여성들을 통해 배출되었다.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를 통해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성공을 드러내고자 했고 여성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을 만족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남성보다 감성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 여성들의 사치는 사회의 너그러운 이해를 받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일종의 의무가 됐다. 여성들은 사회에서 배제된 채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고 남성들이 포기한 레이스와 보석으로 치장하며 자의반 타의반 남성의 트로피가 됐다. 가부장적 사회는 여성들의 경제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고 오직 소비하고 순종하는 현모양처의 삶을 강요했다.
235p
그의 주장대로 당시 여성의 사치는 남편이 특별하고 부유한 사람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로만 이해됐는데 따라서 미혼과 미망인 상태에서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허용된 사치는 남성의 후원과 보호 속에서 꾸준히 육성됐다.
256p
이런 분위기에서 차근차근 부와 지식과 교양을 쌓아가며 계급의 사다리에 오른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성공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과거 귀족들의 과시적 욕구, 구별의 욕구와 같은 맥락이다. 이들 마음에는 근면, 절약, 경건을 기본으로 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위엄, 기품, 엄격 같은 귀족적 덕목을 선망하는 부르주아의 욕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부르주아 남성들에게는 우아하게 격식을 차리면서 종교적 경건의 윤리에 위배되지 않으며 나와 같은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새로운 패션이 필요했다. 그들의 선택은 중세 귀족들이 썼던 검은 모자였다.
<오류>
15p
도판 -브레아 미술관, 이탈리아 밀라노
-> Pinacoteca di Brera, 즉 브레라 미술관이다.
17p
신성로마제국의 궁정 화가 야콥 자이제네거가 그린 훗날 페르디난드 2세가 되는 15세 소년의 모습에 코드피스가 선명하다.
-> 도판의 주인공은 합스부르크의 황제 페르디난드 1세의 아들인 오스트리아의 대공 페르디난드 2세이다.
본문 설명만으로는 황제 페르디난드 2세를 가리키는 것 같아 오해의 소지가 있다.
69p
도판 - 폴 제사르 엘뤼, 마틸드 씨의 초상 1530
-> 1530년이 아니라 1910년 작품이다.
131p
도판 - 겔빈그로브 미술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 Kelvingrove Art Gallery , 즉 캘빈그로브 미술관이다.
150p
루이 14세는 '자기의 트리아농'을 만들었고 그의 아들 루이 15세는 파리 근교 샹티이 성에 중국식 운하를 만들었다.
-> 루이 15세는 루이 14세의 아들이 아니라 증손자이다.
190p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1917)는 변모하는 근대의 삶과~
-> 르누아르의 생몰연도는 1841-1919년이다.
253p
도판 - 랭부르 형제, 베리공의 매우 호화로운 시도서 "The Belles Heures of Jean de France, duc de Berry" 1404-1409,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 뉴욕
-> 랭부르 형제는 두 편의 그림을 남기는데 한 편은 "Tres Riches Heures de duc de Berry (1415~1416), 즉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시도서" 이고 프랑스 샹티이 성의 콩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 한 편이 바로 도판이 실린 "The Belles Heures of Jean de France, duc de Berry", 즉 "베리 공작의 아름다운 시도서"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분관인 클로이스터즈 미술관에 있다.
이 작품의 제작 연도는 1405-1408/1409 이다.
한글 제목이 잘못 번역되어 있다.
274p
도판- 랭부르 형제, 베리공의 매우 호화로운 시도서 "The Belles Heures of Jean de France, duc de Berry" 1412-141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뉴욕
-> 이 도판은 "베리공의 매우 호화로운 시도서"가 맞는데 불어 제목이 틀렸다. 위의 제목은 앞의 도판에 나와 있는 "베리공의 매우 아름다운 시도서"이다. 또 이 작품은 메트로폴리탄이 아니라 프랑스 샹티이 성의 콩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베리공의 시도서는 두 권이 있고 각기 다른 곳에 소장되어 있는데 저자가 착각한 것 같다.
277p
메리 스튜어트는 결혼 한 달만에 귀족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친척 언니인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청하게 위해 잉글랜드로 찾아가지만
->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스튜어트의 언니가 아니라 당고모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인 헨리 8세와 메리 스튜어트의 할머니인 마거릿 튜더가 남매였다.
322p
도판 - 클로드 모네,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쿤스트할레, 독일 베를린
-> 모네의 이 그림은 베를린이 아니라 브레멘의 쿤스트할레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