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의학을 믿으시나요? - 자연치료라는 달콤한 거짓말
폴 오핏 지음, 서민아 옮김 / 필로소픽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구미에 딱 맞는 책이었다.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300 페이지가 채 못 되는 분량으로 쉽고 편하게 읽힌다.

의학과 의료 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인 만큼 그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인 대체의학 산업도 아주 활발해 사회적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어려서는 미국에서도 동종요법과 침술 등이 인정받는다고 하면 내가 모르는 의학적 의미가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 보니 미국은 과학 교과서에 진화론과 창조론이 공평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나라였다.

선진국에서도 하고 있으니 옳다는 주장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체의학의 범주에 한의학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침술이 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인상깊다.

혈자리니 경락이니 하는 소리는 그저 치료사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언변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피부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든 우리 몸의 엔돌핀이 분비되어 몸이 이완되어 치유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라 비싼 돈을 들였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플라시보 효과인데 저자는 이것이 의학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환자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줄 수 없는 의사는 병리학자가 되야 한다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의 작동 기전에 대해 신체만큼 잘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은 대체의학을 찾고 카리스마 있는 무면허 치료사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치료사들의 특성은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매우 강하고, 환자에게 1:1로 접근하기 때문에 신뢰감이 높다.

물론 뛰어난 상술가이가도 하다.

저자는 대체의학 종사자들이 거대 제약회사를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도 보건 당국의 감시는 환자 선택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빠져 나감을 지적한다.

대체의학 치료사들이 플라시보 효과를 인정하고 보건 당국의 규제와 감시를 수용한다면 적은 돈으로 환자들이 큰 부작용 없이 위안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인정할 수도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진심으로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고 사람들은 플라시보 효과 운운하는 제품에 절대로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자궁경부암 백신이 도입되어 청소년들에게 무료 접종이 시행되고 있다.

이 백신은 다른 백신에 비해 원가 자체가 매우 높은 편으로, 개인이 돈을 내려면 십여 만원이지만 국가에서 무료로 접종해 주면 맞는 게 당연히 이익이다.

그러나 인터넷 괴담이 돌아 불임이 된다는 둥, 근육마비가 온다는 둥, 지능 저하가 된다는 둥 보호자들의 두려움 때문에 접종률이 매우 낮다.

예방접종으로 자폐가 됐다는 괴담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저런 국가 예방접종은 국민의 세금으로 무료 공급이 되는데 정작 사람들은 제약회사가 국가와 결탁해 이익을 올린다는 의혹만 사고 있으니 이래서 작은 정부가 좋은 건가 싶기도 하다.

책표지에 나온 말이 주제를 함축한다.

"대체의학은 없다. 치료하는 의학과 치료하지 못 하는 의학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이런 말도 추가하고 싶다.

"한의학이나 서양의학은 없다.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이 있을 뿐이다"



<인상깊은 구절>

13p

나는 전통적인 치료 방법들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더라도, 대체의학에 무임승차권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치료에 동일하게 높은 시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 책의 목적은 대체의학 분야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검토하고, 사실과 미신을 구분하려는 것이다. 사실상 전통의학, 대체의학, 보완의학, 통합의학, 전일론적 의학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가려낼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을 신중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 채팅방이나 잡지 기사 혹은 친구와의 수다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37p

기원전 2세기에 중국의 치료사들은 질병이 에너지의 불균형에 기인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의 치료사들은 살갗 아래에 여러 개의 가느다란 침을 놓음으로써(침술) 이 불균형을 치료했다. 그러나 중국의 의사들은 인체 해부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신경이 척수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신경이 뭔지도 몰랐다. 척수가 뭔지, 뇌가 뭔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들은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마치 강이나 노을처럼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해석했다. 중국의 의료진들은 인체의 에너지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12경락을 관통한다고 믿었는데, 이는 중국에 12개의 큰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라고 하는 생체 에너지를 발산시키고 음과 양이라고 하는 경쟁적인 에너지 사이의 정상적인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 경락선을 따라 피부 아래에 침을 놓았다.

51p

여드름과 자폐증에서부터 궤양과 하지정맥류에 이르기까지 온갖 질병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일러준다. 낱낱의 모든 일에 올바른 방법과 잘못된 방법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더구나 이 책들은 사람에게 걸릴 수 있는 모든 질병들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굉장히 단정적이고 대단히 명쾌하게 설명해 놓아, 거의 사이비 종교집단과 다를 바 없는 열렬한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 그리하면 더 오래 살고, 더 깊이 사랑하며,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자녀를 키우리라. 인생이란 본래 제멋대로에 어디로 튈지 모르며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 이런 책들을 읽으면 상당한 위안을 얻기 마련이다.

 대체의학의 또 하나의 유혹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현대 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은 냉담하고 무심해보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자기가 한 사람의 개인이기보다는 숫자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바로 이 틈새를 대체의학 치료사들이 파고들어 온 것이다.

96p

FDA 국장은 건강기능식품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열거된 도표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십시오. 처방약의 절반은 식물이 원료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약물이 우리에게 해로운 영향을 줄 거라고는 누구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엄격한 테스트를 고집함으로써 허용할 수 없는 독성물질이 포함된 약물을 가려내기 때문이지요. 식물이 치료 목적의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는 상황에서 모든 위험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100p

이 법은 주요 재료들 -비타민, 무기질, 허브, 아미노산- 외에 다른 재료를 첨가해 아무리 인공적으로 만든 제품이라 할지라도, 제조업체들이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부르면 그냥 건강기능식품으로 규정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예컨대, 약이나 음식에 새끼 양의 뇌를 넣으면 안정성과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들여 수년에 걸쳐 연구할 각오를 해야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에 이것을 넣으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이 순조롭게 허가를 받게 될 것이다.

103p

건강기능식품 산업은 관련 법아니 건강을 위해 자유로운 선택권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 믿도록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종했지만, 사실상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무지한 상태에서 누리는 자유일 뿐이다. 아는 게 힘이라면, 건강기능식품 건강교육법은 아무런 힘도 주지 않는 것이다.

120p

"효과 있는 대체의약품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이라고 불립니다."

173p

"과학적인 과정은 민주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는다고 과학적인 사실이 되는 건 아니다. 과학적인 사실은 증거의 질, 증거의 영향력, 증거의 재현성과 관계된다.

226p

"뇌 손상은 일단 그 원인이 제거되더라도 증상이 당장 역전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제닝스와 부타르 박사는 제닝스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 킬레이션 치료만 받았는데 건강이 나아지기 시작했으며, 36시간 안에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한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이 회복 과정이 나에게는 그녀의 증상들이 무엇보다 심인성이었다는 단적인 증거로 보인다."

229p

결정적으로 역설적인 점은 부타르가 자신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허가도 받지 못한 약품을 팔아 큰돈을 벌고 있으면서 대형 제약회사를 비난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의 동기는 연구개발에 자금을 대는 것입니다. 그래야 독점권을 챙길 수 있고 또 그래야 거약의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뉴요커>의 기자는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우리는 대형 제약회사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대형 플라시보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

241p

노벨라는 침술이 그 자체로 가짜, 속임수, 사기라고 믿긴 했지만, 침술이 효과가 없다고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그는 침술이 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침술은 치료사의 위로와 보살핌이라는 긍정적인 치료적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의식이다. 환자들은 30분 내지 1시간 동안 긴장을 이완시킨다. 바로 이때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사실상 피부 속에 침을 찔러 넣기 때문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다분히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를 사소한 것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43p

침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상충되는 사실에 부딪친다. 1)침술은 인습적이지 않다. 2)침술은 비싸다 - 한 번 침을 맞는 데 65달러에서 120달러의 비용이 들고, 자주 여러 차례 맞아 하며, 종종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 갈등을 가장 잘 해결하는 방법은 침술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인지부조화 이론' 이라고 불렀다. 이 이론에 대한 가장 좋은 예로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를 들 수 있다. 여우는 포도가 실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킴으로써 이 갈등을 해결한다.

245p

대체의학 치료사는 독특한 분위기가 주는 치유력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좋은 치료사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당신이 도움이 필요해서 나를 찾아왔다면 당신은 곧 낫게 될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왔습니다. 결국 이건 사실상 침술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치료는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블로는 이렇게 썼다. "환자들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주지 못하는 의사는 병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249p

첫째, 침술은 속임수다. 침술사들이 정직하다면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침술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2천 년 동안 내려온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을 모두 무시하자. 사실 중국인들은 해부학을 믿지 않았고 신경계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 중국의 강과 음력에 기반을 둔다는 그릇된 가정을 하게 되었고, 피부 속으로 되는대로 침을 찔러 넣게 된 것이다. 기나 음과 양, 경락을 무시하라. 피부를 살짝 찔렀다가 다시 나오는 침을 사용해도 침술의 효과에는 변화가 없다. 침술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만으로도 엔도르핀은 충분히 분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뱉는 순간 플라시보 반응이 사라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침술사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음, 양, 기에 대한 심상이 치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말은 플라시보 반응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의 필수 요소가 속임수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생명윤리학 교수 아트 캐플런은 플라시보 약물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험성이 낮은 상태에서 저렴한 비용과 낮은 부담으로 환자를 속이는 것은 윤리적이다. 그렇지만 먼저 그들은 의학 보고서에 자신들의 의료 행위를 보고할 의무가 있다. 그들은 플라시보 효과가 강력하다는 사실을, 어떤 것들이 플라시보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의학이 플라시보 효과를 가장 잘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보고해야 한다."

(과연 이렇게 양심적이고 지각있는 대체의료 치료사들이 있을까? 그 정도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대체의학에 종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266p

"전일론 의학 치료사들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깊이 전념하는 경향이 있어 유능한 사업가가 되기 어렵다는 견해는 거짓임이 밝혀졌다. 머콜라 자신은 '탐욕에서 비롯된 의료 분야의 모든 과장 광고'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는 가짜 약장사로 유명한 1800년대의 불행한 전통인 자신의 사업을 키우기 위해 전통적인 마케팅이며 인터넷 직거래며 할 것 없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판매왕이다."

268p

"의학이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대체의학 제품들을 가까이할수록 결국엔 의학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가 왕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신봉한다. 물론 나는 의료도 일종의 산업이며 대체의학이 산업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의학과 대체의학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전문가적 규범과 전문가적인 가치와 전문가적인 책임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의료는 시장에 불과하고 환자는 고객일 뿐이며 환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외친다면, 결국 고객의 요구 앞에 전문성이 무너지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우리는 환자가 유혹에 약하지 않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를 도와줄 전문성으로 똘똘 뭉친 지지자가 없다면 좋은 환자가 되기 어렵다.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울 치료사들만 득실거릴 것이다."

270p

애석하게도 마법적인 생각은 해가 없지 않다.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의학적 지식의 격차는 에너지장이나 경락이나 점성술이 아니라, 이른바 과학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기준 아래에서 의미 있는 지식을 추구함으로써 채워지는 것이다."

 과학에 대한 무지, 더 나아가 과학에 대한 부정을 조장한다면 환자들은 질병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어 마침내 최악의 돌팔이 의사들에게 쉽사리 걸려들고 말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과학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과학만능주의라며 진리를 공격하고 현대의학을 서양의학이라고 폄훼한다. 의학은 가치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란 사실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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