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말한다 - 아프리카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
류광철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교관인 저자의 현장 경험과 학구적인 열정이 잘 녹아있는 책.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대륙을 하나로 묶다 보니 피상적인 고찰도 가끔 있으나 거시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자신의 외교적 경험을 살려 각국의 정치 상황도 같이 기술하여 흥미롭게 읽었다.

아프리카라고 하면 너무나 먼 곳이라 쉽게 눈에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몇 권 읽다 보니 감이 좀 잡힌다.

가벼운 책들을 좀더 읽고 보다 깊이있는 책으로 도전해 보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무엇보다 시장 경제의 중요성이었다.

아프리카가 독립할 당시만 해도 무한한 광물 자원 등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기대가 컸으나 독재자로 인한 정부의 실패, 국유화, 종족주의 등으로 그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최빈국으로 몰락하고 만다.

식민지로부터 같이 독립했던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밖에다 팔 자원이라고는 없었던 한국은 그야말로 맨손에서 일어선 놀라운 공업국으로의 변신인데 오늘날 진영논리에 휩싸여 정작 국내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독재자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이 쿠데타로 쫓겨나기 전까지 독재정치를 했고 부패했으며 국가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좋은 정부란 시장의 규제를 최소화해서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비효율의 극치인 국영기업과 엄청난 수의 공무원들이 등장한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공무원이 최고의 직장으로 선호되고 정부는 계속 늘리고 있으니 과연 바람직한 정책인지 의심스럽다.

간혹 양심적인 지도자들도 있었으나 하나같이 사회주의를 선택해 결과적으로는 폐쇄되고 고립되어 더 가난한 나라로 몰락하고 만다.

탄자니아의 니에레레나 가나의 은크루마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일지 몰라도 시장의 가치와 효율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만다.

왜 자본주의가 승리했는지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젊은 인구가 많은 곳이고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좋은 정부가 들어서면 얼마든지 성장 가능성이 있고 중국은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저자의 지적대로 중산층이 성장해 구매력이 상승한다면 10억 인구의 큰 시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의 교류 방향도 흥미롭게 읽었다.


<인상깊은 구절>

26p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의 협조로 이루어졌으므로 흑인 노예사냥꾼과 백인 노예상인 모두 재산을 축적했다. 따라서 노예무역을 전적으로 백인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43p

아프리카에서 가족관계는 단순히 성적 결합으로 인한 자녀의 생산과 양육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다. 가족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종의 단체이므로 구성원의 숫자가 많을수록 세력이 큰 집단이 되었다. 이 때문에 양자, 하인, 노예들도 가족의 개념에 포함되었다. 사람을 많이 거느린 가장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 

48p

아프리카 여성의 출산율을 5~8명에 달하지만 도시지역에서는 출산율이 낮다. 그것은 생활비와 양육비가 많이 들므로 아이들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농촌 지역의 아이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어머니의 노동 부담을 덜어주는 자산이 된다. 또한 애들은 여성의 노후를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어머니가 늙으면 자식들에게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아프리카의 출산율, 특히 농촌지역의 출산율은 아직도 매우 높다.

57p

남부아프리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이 에이즈 문제에 대해 과학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이를 불결한 환경 때문이라고 하여 문제의 본질을 빈곤으로 몰아감으로써, 사람들의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졌고 이 결과 보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했다. 음베키는 HIV와 에이즈 간의 상관관계를 부인하고 남아공에서는 전통적인 질병이 에이즈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음베키는 에이즈가 섹스보다 빈곤과 더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음베키는 또 서양 제약회사들이 아프리카인을 모르모토로 삼아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하는 음모론도 주장했다. 그는 에이즈 약 공급을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생물무기 연구'에 비유했다. 그러나 음베키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빈곤층보다 부유층이 에이즈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더 많은 섹스 파트너와 관계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아공 정부는 국민에게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 비트 뿌리나 마늘을 먹으라고 권고함으로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63p

아시아 국가들이 눈을 크게 뜨고 세계시장 진출을 모색한 반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점점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이들은 자급자족과 수입대체 산업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을 뿐 수출 증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수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겼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공산품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진했을 뿐 아니라 영역을 넓혀 아프리카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수출품 농산품 시장에도 끼어들었다. 불행하게도 아프리카에는 한국의 박정희나 싱가포르의 리콴유 같이 뛰어난 비전과 애국심 그리고 추진력을 가진 지도자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67p

중국인이 이러한 자질을 충분히 이용한 것은 1980년대 등소평이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풀고 자유시장경제를 허용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전에는 잠재력만 있었을 뿐 중국은 이러한 자질을 경제발전에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 한마디로 말해 아프리카의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것은 사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국가의 발전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중시했다. 지도자는 자신을 전통적인 부족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번 정권을 잡으면 놓지 않는 풍토에서 지도자를 끌어내리려는 야심가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쿠데타밖에 없엇다. 이것이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아직까지도 간헐적으로 쿠데타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다.

71p

서방 경제학자들은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나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들은 오히려 정부를 경제 실패의 주역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구조 조정과 함게 민간 부문을 육성하여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토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개혁 중의 하나는 방만한 국영기업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국영기업을 민간에 이양하는 척만 했을 뿐 실제로는 이를 권력과 연계된 사람들에게 인계하고 중간에서 이윤을 취했다. 또 공무원들은 아무리 비효율적이라도 공기업을 국가 주권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공기업은 우대하면서 민간 기업은 멸시하고 차별했다. 

84p

국가 재원이 거의 거덜난 짐바브웨 같은 나라에서 이와 같은 고액봉급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사람들은 국영기업의 병폐가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편, 정치인은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아직도 국유화, 자원 민족주의 등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구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나라의 발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87p

지난 30년 간 5000억 불이 넘는 막대한 원조가 서방으로부터 아프리카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원조가 아프리카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원조는 실패했고 무용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것에 비하면 미국 원조로 시작한 한국의 경제 발전은 얼마나 위대한 성취인가!) 

반대로 컬럼비아 대학의 제프리 삭스 같은 원조 옹호론자는 외국의 원조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 '가난의 함정'에 빠져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빈곤으로부터 탈출토록 하는 가장 중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삭스의 주장은 대규모 원조가 투입될 경우 가난한 아프리카인도 저축과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어 나중에는 스스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삭스는 후진국이 가난의 함정에 빠지는 원인을 저소득뿐 아니라 보건과 지리적 여건 그리고 자원이 가지고 있는 저주적인 측면에서 찾았다. 험한 지리적 여건을 가진 나라들은 도로나 철도와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을 형성할 수 없고 이로써 고립되어 가난이 걔속된다고 주장한다. 

118p

노예 상인들도 많이 죽었다. 험악한 기후와 자연 환경으로 인해 질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아프리카 해변에 거주하는 백인 상인 중 매년 절반이 죽었으며 대서양을 오가는 선원 중 5분의 1이 죽었다. 그러나 노예거래는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였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되었다. 배로 싣고 가는 도중 많은 노예가 죽는 이유는 수송선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  

125p

아프리카인의 자발적 협력이 없었다면 아무리 유럽인이 노예를 확보하려 해도 한계에 부딪쳤을 것이다. 부족장이나 부유한 엘리트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권력과 지위 그리고 영향력을 이용하여 노예를 잡아들이고 이들을 유럽 상인에게 넘겼. 이들은 지역 경제를 진흥시킨다는 이유를 내세웠으며 또한 아프리카에는 원래부터 노예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노예상인들은 노예가 전통적으로 아프리카 사회의 한 요소라는 사실을 기초로 노예거래를 정당화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자신의 형제, 사촌, 이웃들을 잡아다가 유럽인에게 넘겼다. 유럽인이 직접 내륙으로 깊이 들어가 노예를 잡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유럽인은 대개 해안에서 배를 정박하고 중간상인들이 내륙으로부터 노예를 데려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해안에서 노예를 구매하는 것보다 내륙에서 노예를 구하는 것이 훨씬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에 유럽인 중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내륙으로 노예사냥을 나가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133p

소위 합법적인 무역을 위해 노동력이 필요하다 보니 이제 아프리카 내에서 노예거래가 성행하게 되었다. 바다를 건너가는 노예무역 대신 아프리카 내에서 노예를 공급하는 비즈니스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들 노예들은 농업은 물론 군인, 경호원, 수공업 근로자, 목축 노동자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한편, 19세기에 서부 아프리카에서 노예거래가 어려워지자 대신 사헬과 사하라를 지나 홍해를 건너 아랍으로 향하는 노예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6p

종주국 프랑스는 여전히 아프리카 식민지를 '大프랑스'의 일부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식민지 국민의 정치적 권한이 커진다는 것은 자치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아프리카인이 프랑스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 반대로 영국은 아무리 이탈을 막으려고 해도 시대적 조류에 따라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영국은 1946년부터 아프리카인이 스스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계획을 세웠다. 

192p

드골 신봉자인 우푸에부아니는 독립 후 스스로 헌법을 기초하여 1인 통치를 확립했다. 우푸에부아니는 "민주주의는 성숙한 국민을 위한 제도이다. 아프리카와 같이 젊은 국가에서는 당분간 절대 권력을 가진 추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197p

유럽 국가들이 의도적으로 아프리카의 발전을 방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프리카는 산적한 내부 문제로 인해 낙후된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잘못된 통치 방식과 그릇된 정책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국영기업이다. 국영기업은 비효율과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국영기업으로부터 정치 자금을 수탈했다. 

203p

니에레레 자신도 1981년 독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지금의 우리는 1972년에 비해 더 가난하다"라고 말함으로써 경제정책의 실패를 시인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몽상에 빠진 니에레레는 사회주의 정책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비록 경제 정책에서는 실파했지만 부정부패 없이 강직하고 엄격한 정책을 펼친 결과 교육, 보건 등 사회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214p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야당은 아프리카식 관행으로 보아 이질적인 것이며 잘 운영되기만 하면 1당 체제가 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의 철인으로 알려진 탄자니아의 니에레레도 1당 체제를 적극 지지했다. 그는 양당 체제는 서방에서 사회경제적 계층 간 정쟁의 결과로 인한 산물인데 아프리카 사회는 본질적으로 무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양당 체제를 취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1당 체제는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을 제압하고 독재자를 권좌에 오래 앉아 있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238p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몇몇 권위주의 국가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룸으로써 과연 경제발전과 민주화 간에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관한 논쟁이 일었으며 이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상관관계가 명백하다. 아프리카에서는 실증적으로 민주화가 뒷받침이 되어야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46p

무학인 이디 아민은 교육과 경험이 풍부한 관리들을 멸시하고 혐오했으며 학식이 높은 사람을 본능적으로 불신했다. 그러나 서방세계에서는 아민의 변덕스럽고 잔인한 행동이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영웅 취급을 받았다. 아시아인들 대거 추방함으로써 서방 제국주의에 정면으로 항거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행동이 아프리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299p

소년군인 중에는 자발적으로 가담한 애들도 많았다. 군에 가입하면 무엇보다 굶을 걱정이 없고 하는 일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무기 다루는 훈련을 받으면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훨씬 빨리 대가를 얻을 수 있었다. 식량, 돈, 따뜻한 목욕, 어른 대접을 받는 것 등이다. 그리고 동료들이 잃어버린 가족과 친구를 대신해주었다.

313p

주목할 점도 있다. 그것은 중국 기업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이다. 후진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누군가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지인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파상적인 공세, 적극성, 밀어붙이기, 이러한 공격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기업인들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318p

막대한 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이들은 어떠한 자원에도 거침없이 투자할 수 있다. 놀랄 만큼 공격적인 이러한 국영회사의 뒤에는 중국정부가 있다. 중국은 서양에 비해 기동력이 빠르다. 서양의 고급 인력은 높은 임금, 보험, 의료, 좋은 집과 하인, 비즈니스석 비행기표, 사륜구동 차량 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 근로자는 거주할 곳만 있으면 나머지 조건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서양회사는 여론에 민감하므로 사회적, 환경적 규범을 준수하려고 노력하나 중국 회사에게 이러한 부담은 거의 없다. 중국인은 심지어 전쟁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7년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사막 지역에서 9명의 중국 석유노동자들이 반군에 의해 살해되었으나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곳에서 일했다. 서양회사였다면 아마 현장으로부터 즉시 철수했을 것이다. 서양이 아프리카 국가의 부패, 인권, 환경침해 등에 관한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것도 중국에게는 플러스 요인이다. 내정불간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340p

아프리카 최고 부자인 당고트는 권력층과 지나치게 가깝다는 세간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지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당고트는 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 경제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모델을 형성하고 있는 기업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