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숙종후궁 장희빈 - 한국의 인물 2
지두환 지음 / 역사문화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왕실 친인척 계보를 분석한 책들을 여러 권 낸 저자의 책이라 무척 기대를 하고 책바다를 통해 빌려 읽었다.
나중에 나온 <조선의 왕실> 시리즈는 좀더 저자의 해설이 들어있는데 이 책은 순수하게 실록 기사로만 구성되어 있어 편하게 읽히지가 않는다.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으나 요즘에 거의 쓰지 않는 어휘들이 많고 대화도 비유법이나 고사를 인용해 에둘러 말하기 때문에 무슨 얘기인지 쉽게 감이 안 온다.
이렇게 훌륭하고 자세한 실록의 기록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이를 재구성하여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면 참 좋을 것 같다.
어렵게 읽고서 느낀 바로는, 숙종은 정말로 감정이 쉽게 격분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한 명의 후궁도 두지 못하게 했던 명성왕후 김씨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 받은 게 아닐까 싶다.
장희빈을 총애하여 수많은 신하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귀양보내 왕비로 세웠으면 그대로 잘 살 일이지, 불과 5년만에 다시 폐위하여 전 부인을 불러 들이고 그녀가 사망하자 이제는 장희빈 탓이라고 기어이 죽게 만드는 것은 뭔가.
더군다나 다음 왕위를 이을 세자의 친모인데 말이다.
아들이 있다 할지라도 남편 마음에 안 들면 왕비의 지위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죽임을 당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왕비 역시 아내이기 전에 왕의 신하가 아니었나 싶다.
연산군의 부인 폐비 윤씨가 그랬고 장희빈도 그렇고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 역시 하나뿐인 유일한 아들인데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인현왕후는 아들도 못 낳으면서 친정 세력을 등에 업고 후궁과 불화하는 것이 꼴보기 싫어 무리해서 폐위를 시켰다지만, 그렇게 힘들게 왕비를 만든 장희빈을 특별한 사건도 없이 느닷없이 다시 폐위시킨 것도 이해하기 참 어렵다.
이러니 환국에 여자를 이용했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책에도 중간 과정이 생략되어 있고 갑자기 장희재를 유배보내고 중전을 다시 희빈에 지위에 놓는다고만 되어 있다.
옆에서 받들어 모시기 참 힘든 왕이었던 게 분명하다.
박태보의 고문 장면은 너무나 참혹해 읽으면서도 눈쌀이 찌푸려졌다.
그런데도 저렇게 의연하게 답변할 수 있다니 확신범이라는 생각에 좀 무섭기도 하고 좋게 보면 선비의 기상은 군왕의 폭압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모양이다.
<인상깊은 구절>
75p
귀양갈 때 김만중의 모친인 윤부인이 전송하면서 말했다.
"영해로 귀양을 가는 것은 선현들도 면하지 못했던 바이니 가거라. 몸 조심하고 내 걱정일랑 말아라"
이 말을 들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110p
전에 이르기를, '부모가 사랑하던 것은 나도 사랑한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아들이 자기의 아내가 마땅하지 않더라도 부모께서 <나를 잘 섬긴다>고 하면, 아들은 부부의 예를 행하여 일생토록 변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내전의 처사가 성심에 합하지 못한 점이 있으시더라도 우리 선후(先后)께서 당시에 돈독히 어루만져 사랑하시던 일을 생각하신다면 전하의 효성으로 어찌 차마 폐절한다는 뜻을 어려움 없이 가할 수가 있겠습니까?
113p
숙종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비망기의 내용은 전혀 살펴 유념하지 않고서, 기필코 부인을 위하여 절의를 세우기 위해 도리어 내가 참언을 들어주어 무죄한 사람을 폐출하려 한다고 하니, 과연 이럴 수가 있는가? 차라리 나를 폐위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였다.
139p
성상은 총명이 전고에 없이 뛰어나고 또 영단이 있는데, 단지 한때의 사적인 총애에 빠져 위호를 폐치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주저하면서 빨리 결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동방은 중국과 달라서 열성들께서 비필(妃匹)을 중히 여겨 반드시 명문 귀족 가운데서 대대로 부덕이 출중한 사람을 선발해 왔다. 임금이 어렵게 여기고 있는 것은 희빈의 출신이 미천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였다. 이에 권대운 등이 장현에게 상을 내릴 것을 청하면서 대신의 은례에 따르게 하였고, 또 장희재를 무신의 극선인 무고와 태복의 자리에 올려 놓았으며, 이에 계속 제수하여 순월 사이에 마구 뛰어 올랐다.
아, 정사에 주의가 있음으로부터 어찌 후궁의 형이요 여항의 미천한 자가 이 직임에 제수된 적이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