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모습, 한국의 아동생활 한말 외국인 기록 13
E.G.켐프 외 / 집문당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책에서 인용된 글귀를 읽고 구한말 아동들의 실태가 어땠는지 관심이 생겨 읽게 됐다.

오래 전 발간된 책이라 책바다를 통해 구했다.

19세기 말 조선을 다녀간 외국인들의 기록은 피상적이고 종교적인 부분이 많아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곤 하지만, 우리 전통사회의 모습을 현대인이 아닌 당대인의 눈으로 직접 관찰한다는 부분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책에 나온대로, 기독교 국가과 비기독교 국가의 차이를 가장 저명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 바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닐까 싶다.

기독교 유무보다는 오히려 전통 사회와 근대 사회의 차이 같아 보인다.

여성 선교사의 눈으로 묘사해서 그런지 당시 조선 여인들은 마치 가정의 노예와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이들 역시 방임과 학대에 노출되어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어에는 home이라는 단어가 없고 house 만 존재한다고 했다.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 운운할 수도 있겠으나 확실히 전통사회, 특히 주자학이 지배했던 폐쇄적 신분제 사회의 여성의 지위는 종속적 존재에 불과했던 듯하다.

여전히 명예살인이 용인되는 오늘날의 이슬람 사회를 보는 느낌이다.

이른바 메갈페미니즘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21세기의 대한민국과 100년 전의 조선은 확실히 전혀 다른 사회 같다.



<인상깊은 구절>

35p

대체로 한국인들은 유럽의 어떤 나라와도 필적할 정도로 정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옷을 하얗게 하고 잘 세탁하는 데 가장 원시적인 도구를 가지고 끝없는 시간과 정열을 쏟는다

40p

한국의 여성들은 이름이 없다는 이상한 결핍증으로 상처를 입는다. 여자들은 애칭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이름은 없다. 

44p

한국의 많은 맹인들은 불쌍한 사람이다. 그들의 생계 유지 수단은 점을 치는 것이다.

윤치호는 전직 학부대신으로서, 토착 교회의 지도자이며 교양 있고 세련되어 어떤 나라에도 자랑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교회의 엄청나게 빠른 성장에 기인하는 위험을 지적했으며, 교회의 성장에 따른 책임과 더불어 교회에 대한 바람직한 신뢰를 주장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배움에 대한 소질과 함께 교육열이 매우 높으며, 성경 공부에 엄청난 정열을 바쳤다.

한국 교회의 또 다른 인상적인 측면은 그들이 <기도>에 집착하고 기도의 효혐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점이다. 새벽 기도 모임에 대해서는 벌써 언급했지만 나는 우리 모국의 교회에서는 이와 유사한 행렬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이 극도로 가난하다는 것과 그들이 몸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원하는 일의 양에는 엄청난 자기 희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교 초기 시절부터 확실히 한국은 근본주의적 기독교가 호발할 성향이 다분했던 듯하다)

59p

친자이든 양자이든, 조선에서는 어머니를 방문하는 것이 모든 자식들의 의무로 여겨진다.

한국의 양반 사회에서 딸들은 아버지에게,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존경심을 표시하는 것이 예절이다. 또한 가라거나 혹은 앉으라고 할 때까지 선 채로 있어야 하는 것이 예절이다. 

64p

일본 국내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특징인 공손함을 한국 내 일본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가 없다. 일본 정부는 불안을 야기시켜 온 사람들을 철수시키고 좀더 훌륭한 공무원을 공직에 앉힐 시도를 꾸준히 할 것이 요망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국제 조류의 기회를 무시하고 고집스러운 쇄국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마 그 대가는 너무나 쓰다.

 한국인들이 최근에 겪은 가장 슬픈 손실의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 공작을 잃은 것이다. 그들의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친구였던 일본의 공작을 살해한 사람은 다름아닌 한국인이라는 사실에서 운명의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현대 일본을 찾아서>에서도 이토가 그나마 조선에 호의적인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안중근의 암살은 국제 정세를 모르는 무지한 테러였다고 말이다. 제 3자와 한국인의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67p

작년 서울에서 콜레라가 발생했는데 일본인들의 놀라운 노력에 의해서 약간의 희생자를 내고 퇴치되었다.

76p

논은 경작지이 중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소가 논을 일구고 있었다. 목장인 땅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한국에 온 이래 한 마리의 양도 보지 못했다

87p

통행 수단에 대해 말하자면 단지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첫째로는 조랑말인데 느린 걸음으로 인해 누구든 몹시 지친다. 둘째로는 가마인데, 그것을 타고 있는 동안 줄곧 가마꾼의 신음 소리를 들어야 한다.

비록 주씨가 한국인들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그의 존재는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확실히 가치있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중국인을 크게 존경하기에 우리의 작은 일행에 위엄을 심어 주었다. 주씨와 같은 인물을 우리가 밑에 사람으로 데리고 다닌다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은 우리를 고관대작으로 보고 있었다.

88p

우리는 한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그 절망적인 비능률적 습성을 다시 한번 기꺼이 감내해야만 했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편안하게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제물포 사람들은 항만 안에 있던 러시아전함들이 일본전함과 맞서기 위해 만 밖으로 나오다가 격침되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은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그것을 지휘했던 백전불굴의 용기 -그것이 두 나라 군대의 특성이다-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7p

한일합방 이후 일본 총독부는 전반적으로 볼 때 조선의 물질적인 개명과 향상에 많은 일을 했다.

25p

영어의 가정(home)이라는 것과 의미가 상통하는 어휘가 없는 민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국어에는 집(house)이라든가 좀 고상하게 표현하면 댁(宅)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지붕이 있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가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인들은 참으로 가부장적인 사람들이어서 가장이 능력만 있다면 8촌까지의 권속까지 같은 울안에 들어와 산다.

조선의 가옥에 관한 문제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난방에 관한 문제인데, 그 방법이 비록 경제적이라고는 하더라도 통풍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아주 비위생적이고 치명적이다.

31p

한국 여성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그들은 지적으로나 지위, 그리고 능력에 있어서 그들보다 더 사랑을 받고 자라 온 오라버니들보다 더 열등하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가 생활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고자 한다면 일찍 결혼해서 남편과 시어머니께 철저하게 복종해야만 한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그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시갓댁 조상을 받들어 모실 아들을 낳음으로써만 좀더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사내아이를 가진다면 그의 가정 생활은 정말 행복하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언제인가 그도 자기의 며느리에게 차례로 고된 일을 넘겨주고 며느리에게 똑같은 복수를 하며 그 자신이 종살이에서 벗어나 이제는 종을 부리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여인네들의 엄격한 폐쇄성은 여전히 원시적인 고집과 밀착되어 있으며, 이는 그들을 일종의 가사 노예와 고된 일은 물론 무지와 미신 속에 묶어 두려는 데에 그 책임이 있다. 

사실상 여성들을 통제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불신하도록 하기 위해 여인들은 무지와 가정이라는 좁은 공간에 구속당한다. 서양인인 우리는 여성에 대해 그러한 대우에 대해 분노를 느끼기 쉽지만 여인네들의 조심스러운 폐쇄성은 오히려 자신을 좀더 많이 드러냄으로써 부딪칠 수도 있는 부도덕한 상황들에 대해 최상의 보호책이 된다.

39p

불교는 한때 왕실에서 숭배하는 국교이기도 했으나 일본에서처럼 국민들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불교와 유교 두 신앙으로부터 나온 많은 신념의 요소들은 원시적인 신의 숭배와 혼합되어 종교적 신념들의 이상한 잡신의 모습을 형성해 놓았으며 그 결과 모든 한국인의 정신을 복잡하게 해놓았다. 

"한국인의 본질적인 신앙은 영혼 숭배라고 할 수 있다."

46p

귀중한 생명이 그토록 많이 죽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조건하에서 생존하고 성년기까지 성장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48p

호랑이는 한국에서 알려진 동물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가장 두렵게 생각되며, 호랑이가 이야기꾼에게서 가장 빈번히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53p

기독교 국가와 비가독교 국가를 비교함에 있어서는 여성의 지위에 대한 비교보다 더 명확히 양자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법은 없다.

(그보다는 근대 사회와 전통 사회의 비교라는 생각이 든다)

60p

그 가정이 부유하고 노예나 하인들을 거느렸다면 젊은 신부가 반드시 고통을 겪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보통 가정은 안락한 생활 수단도 갖기 못해서 모든 가족들은 언제나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어린 신부가 이런 집으로 갈 경우 장래는 어둡고 슬픔으로 가득할 것이다.

63p

당신은 온갖 종류의 무서운 질병과 그것을 잘못 취급하고, 늙은 무당들이 그들에게 행한 무시무시한 일들로 인해서 일어난 상처로 고통받는 많은 어린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개한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무서운 광경들 중의 하나는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불필요하게 고통받는 환자이다.

80p

가련한 형수,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형수의 운명은 확실히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다른 불친절이 없다 하더라도 형의 잔학함과 사악함은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의 연약한 육체는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딘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어느 날 그는 자포자기하여 자살함으로써 자신의 절망적인 고통과 불행을 끝냈다. 가련한 형수!



<오류>

37p

1907. 왕은 일본의 압력으로 그의 조카에게 왕위를 양위했다.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조카가 아니라 아들이다.

50p

주문모가 순교할 때 나이는 불과 25세였다

->주문모는 1752에 태어나 신유박해 때인 1801년에 순교했으므로 25세가 아니라 49세 때 사망했다.

51p

1861년에 다섯번째로 조선 교회의 밀사가 북경에 도착했다. 주교는 밀사의 긴급 요청에 못이겨 그들에게 선교사를 파견할 것을 약속했다.

->주문모가 신유박해 때 순교 후 다시 외국인 선교사가 입국한 것이 1836년이므로 문맥상 1861년은 잘못 표기된 년도 같다.

59p

대비 홍씨 : 헌종의 계비였던 정효왕후를 의미함

->정효왕후가 아니라 효정왕후이다.

65p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자는 일본에서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일본이 아니라 중국의 뤼순에서 재판하고 사형당했다.

89p

그것을 지휘했던 백절불굴의 용기

->백전불굴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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