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미술 - 미술사 연구총서 4
김이순 지음 / 서울하우스(조형교육)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신간 <조선왕실 원의 석물>을 너무 재밌게 읽고 다른 책도 찾아 보게 됐다.

2007년에 출간된 책이라 시의성에 떨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도판이 정말 훌륭하고 조각, 특히 용접조각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저자의 전공이 조각이라 그런지 한국의 근현대미술이라는 제목보다는, 한국의 조각미술사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용접조각이란 무엇인가, 구상조각이 사실 재현 조각과 어떻게 다른가, 이우환의 모노파가 한국 단색주의에 미친 영향, 설치 미술과 영상 미술의 특성, 조각가 김복진과 권진규의 예술관 등에 대해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철학적인 내용, 특히 실존주의와 한국적 미니멀 조각에 대한 부분은 다 이해하지 못했다.

서양의 미니멀주의와 한국의 미니멀 조각이 어떻게 다른지 막연히 느껴지긴 하지만 정말 작품에서 평론가들이 말하는 그런 추상적인 사고는 전혀 와닿지가 않는다.

전통 미술이 대상의 재현에 초점을 맞춰 얼마나 똑같이 묘사하는지 기술적 부분을 중시하므로 장인이라 불린 반면, 현대의 예술가들은 구체적 형상을 표현하는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그 형식이 어떻든 간에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정신성의 추구가 가장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철학자라고 해야 할까?

예술가란 기술적 측면보다 정신의 표현이 훨씬 본질적인 것 같다.

그렇다면 조영남 대작 사건도 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해프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지막에 실린 권진규 조각가에 대한 대담이 인상적이었다.

한 작가의 일생을 전기가 아닌, 작품을 통해 돌아보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임을 느낀다.

우리나라 미술사가 좋은 게, 평론을 읽고 당장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미술 향유층이 두터워져 좋은 미술가들이 많이 나오고 평론이 활발해져야 대중들도 미술 작품을 많이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인상깊은 구절>

32p

후쿠자와 유키치는 자신이 1868년에 설립한 게이오 의숙 같은 교육기관을 통해 민간 계몽활동을 벌이는 한편, 이러한 계몽은 정부의 혼자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지식인 등 사회의 엘리트층이 정부와 협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근대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집권적 정부 하에어 이를 지지할 근대국민의 형성이 필요했고, 또 이러한 일에 앞장설 민간 지도력으로서 관료주의를 벗어난 지식인과 기업가들의 후원이 당시의 과제였던 것이다.

75p

동경미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김복진이 일제에 대해 적극적인 저항의식을 갖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99p

일제가 1930년대 후반의 전시체제에서 한국 여성들에게 근검절약하여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할 것을 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병사가 될 국민'을 낳아 키우도록 촉구했다는 직접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1938년부터 비상시국임을 강조하며 한국 여성들에게 강요한 것은 후방에서의 노동과 의식주의 긴축, 절미 등의 근검절약이었다. 1942년 이전에 일제는 우리에게 황군에 지원하기를 권장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내선일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인을 전쟁터에 내보낼 정도로까지는 조선인의 충성심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101p

일제가 한국작가들에게 특별히 시국미술을 제작하도록 강요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작가들이 시국미술을 적극적으로 제작한 예도 드물다. 실제 일본인 심사위원들은 한국작가들이 시국색을 직접 띤 작품을 제작하기를 기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자연 연구와 함께 고전 연구를 통해 로컬 컬러를 띤 작품'을 제작하여 문화를 개척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당시 신문 사설에서조차 한국 미술가들에게는 여전히 '반도의 전통과 풍속'을 통해 향토색을 표현하고, 각자 자신이 타고난 분야에서 기량을 발휘하여 작품제작에 전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113p

서양미술에서 베르트 모리조, 케테 콜비츠, 모더존 베커 등의 여성미술가들이 어머니로서 경험과 자의식이 반영된 초상적 성격의 모자상을 제작했던 경우와 달리, 앞서 살펴본 작품들은 대부분 남성작가의 작품이었고, 이옥순 같은 여성작가의 작품조차 일반적인 남성작가의 모자상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183p

우리의 실존주의는 진정한 저항과 참여의 기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박서보가 강조하는 저항이나 부정의 개념은 진정한 현실참여나 저항의 의미라기보다는 전통과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과 저항이었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지극히 미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190p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혈통과 가문을 귀중히 여겼지만 진작 우리의 전통 미술에서 가족을 주제로 다룬 작품을 찾기가 어렵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속의 인물들은 대를 이어가는 엄숙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여 있는 듯하며, 가족간의 단란함이나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207p

<길 떠나는 가족>에서 가족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가장의 모습과 가장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행복해 하는 식구들의 모습은, 현실적으로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을 돌보고 가족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 가장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며, 이는 전후 사회에서 가장들이 이상적으로 바라던 가족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36p

이우환은 "최고의 표현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기보다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을 빗겨 놓음으로써 세계를 좀더 신선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심문섭은 "자연은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수정하지 않고 표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사이에 끼어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아주 약간만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조각가의 역할이다"라고 피력한 바 있다. 

245p

예술가의 몸을 승화된 신체로 보았다는 니시다는, 작가에 의한 표현 작용(예술 행위)이 없으면 세계와의 만남이 불가능하고, 예술작품으로 성립하려면 사실상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物과의 대립을 통하여 자연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우환의 모노하 작품을 보면, 사물들이 있는 그대로 제시된 것 같지만 사실은 작가가 매우 신중히 선택하고 배열한다. 이러한 과정은 인위적으로 사물을 가공하지는 않더라도, 작가의 적극적인 개입 ('모노'의 선택과 배열, 장소 선정 등)을 통해 작품이 성립됨을 의미한다. 작가의 철저한 개입에 의해서만 '있는 그대로의 모노(物)'가 '미술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우환의 논리로 보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작가의 개입여부에 달려 있다.

254p

이우환은 미술가들이 선망하던 비엔날레 출품의 기회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이때 자신의 모노하 이론에 부합하는 작가를 선정함으로써 이우환과 모노하는 한국화단에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되었다. 

262p

전후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들은 앵포르멜 미술뿐만 아니라 구상미술로 전쟁의 잔혹성을 표현했는데, 작가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이러한 작품들은 사실재현적인 미술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279p

구상조각은 삶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드러내는 요소가 결여된 추상조각에 대한 반발을 토대로 형성된 미술인만큼, 현 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미술이어야 한다. 은유성이 있다는 점에서 구상조각은 전통의 사실조각이나 추상조각과는 다르다. 

282p

인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서양식 조각개념은 불상조각이나 장승 등 전통조각에서처럼 인체를 관념적으로 표현하던 조각개념에서 벗어난 것으로,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인체를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했던 우리의 근대조각은 아직 작가의 내면의식을 직접적으로 담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때문에 김복진이 사상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미술운동에 가담했지만 자신의 이념을 조각 작품으로 구현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294p

풍속, 기법, 유물 등 소재적인 측면에서 전통의 요소를 찾거나 타자에 의해 발견된 정체성을 내면화하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때로는 서구를 '물질주의'로 타자화하여 정신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주를 이뤄왔다. 한국적인 미술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화한다는 것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사항이지만, 사실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화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에릭 홉스봄이 '전통'이란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창조물'로서 국민을 결집시키기 위한 국가 이데올로기였다고 주장했듯이, 애초 '한국적인 것'이라는 것은 실재가 아니고 한국인의 의식을 결집시키기 위한 가상의 표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320p

미국은 록펠러 재단 같은 탄탄한 후원에 의해 새로운 비디오 아트를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계 강대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예술에 뒷받침이 충분하지 못했던 러시아에서는 1990년대까지도 비디오 아트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었다. 끊임없이 첨단의 장비가 요구되는 영상미술은 적극적인 경제적 지원에 의해서만 작가들의 샘솟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구체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359p

권진규 스스로 자신을 장인이라 일컬은 것은 상징적 의미도 있겠지만 그의 꼼꼼한 석고취형 과정과 성형과정에서 드러나는 치밀함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356p

"권진규의 작가정신이야말로 한국미술사에서 그가 갖는 중요한 의미 중의 하나입니다. 주문제작, 시류, 모방에 머무는 작가들과는 대별되는 것이지요. 그의 뜻하지 않은 죽음을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일제강점기의 모노노 아와레(아름다움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 비애, 주변에서의 소외 등의 도식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권진규의 죽음의 이유를 이제는 가난과 질병, 사회적 소외로 집약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작가로서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의 필연적 선택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수전증이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렸을 때 작가로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이지요."

"작가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제작하는 데 한계를 느꼈을 때 조용히 생을 마감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의 자살은 현실 도피적인 방식으로서의 생의 마감이 아니라 진정 작품을 사랑한 작가였기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단절되어 도피의 방식으로 생을 마치는 작가가 아닌 것이죠.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지라도 그것은 창작을 이룰 수 없었던 작가에게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권진규에 대해 환상을 깔고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담아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현대 시기를 살아간 작가가 이룬 독보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가 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권진규에 대해서는 이제 자살의 비애보다는 작가정신이 살아있는 작가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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