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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문화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49
이케가미 쇼타 지음, 이은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짧은 분량의 일본 문고들을 보면 확실히 일본 사람들은 오타쿠적인 기질이 있고 우리보다 훨씬 더 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으며 무엇보다 대단한 출판 대국인 것 같다.
trivia 라는 시리즈 제목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궁금한 세부적인 것들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풀어 놓는다.
사실 다른 주제들, 이를테면 영국 집사나 메이드, 귀족들의 삶, 정원문화 등은 아주 재밌고 유익했는데 이 책은 밀도 면에서 다소 떨어지긴 하다.
분량도 230 페이지로 짧은데 한 쪽은 정리를 한답시고 이상한 도해와 요약문을 실어서 난삽하다.
고등학교 문제집도 아니고 왠 요약본인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인들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당시 시대상을 쉽게 설명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국가의 치안이 발달하고 이성적인 개인들이 사는 오늘날과 전통사회는 확실히 매우 달랐던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24p
현대 사회에서도 자연 재해와 화재, 그리고 그에 따라 일어나는 기근과 혼란은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이다. 하물며 간단한 기계 장치와 인력, 동물의 힘에 의존하며 정보전달 수단도 발전하지 않았던 중세 세계에 있어서 재난은 거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중세의 사람들은 대처하기 힘들고 원인조차 알 수 없는 강대한 부조리함에서 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내려진 신의 경고 또는 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회와 수도회는 이러한 재난을 교묘하게 자신들의 강론에 도입하였다. 현실적인 문제를 봐도 당시 사람들이 재난에 대해 취할 방도가 신에 대한 속죄밖에 없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도와 의식은 사람들의 혼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교회와 수도회가 행하는 빈민 구제는 재난으로 인해 집과 재산을 잃은 사람들을 구원해주었다. ... 사람들은 기근을 신의 시련이라 생각하여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식과 청빈한 생활을 장려했다. 이는 실제로 기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특훈이기도 했다.
30p
중세 초기에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대처는 국왕이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각 지자체가 주최한는 재판소에 판결과 형의 집행을 맡겼다. 또한 무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소지하는 자가 자신의 영역을 외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 의무이기도 했다. 설령 빈곤한 집안의 가장이라 해도 자유민으로서의 신분이 보증되어 있다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의 경찰권이 발달하지 못했고 재판에 죄인을 출두시키려면 원고 측과 그 친족이 추적해야만 했던 상황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복수를 무조건 허락해버리면 피해자 간에 피튀기는 혈투가 끊임없이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착안해낸 것이 보호 구역이라고 하는 일종의 안전 지역이었다.
32p
중세 세계의 형벌은 범죄자를 갱생하여 범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본보기로 삼음으로써 범죄를 억제하는 형태였다. ... 조사능력이 부족했던 중세 세계에서는 공정한 판결이 내려졌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고문에 의한 자백과 결투 재판, 신명 재판 등이 통용되고 있었다. 이 시대는 징역 같은 자유형은 없었으며 감옥은 재판이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범죄자를 구속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위생이 불량하고 식량 사정이 나빴던 감옥 생활은 수감된 범죄자를 크게 괴롭혔다.
182p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시작으로 하는 그리스도 교회는 그 신앙을 확대하기 위해서 예부터 내려온 이교적 신들에 대한 신앙을 타파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교회는 고대 신앙을 축소하여 자신들의 가르침 안에 도입함으로써 고대 신들을 믿던 민중을 그리스도 교도로 개종시켰다. 원래 우상 숭배가 금지된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와 마리아상을 세우게 된 것도, 부활설제 수목을 이용하는 것도 이교적 신앙 의식을 도입한 여파이다. 유일신 외에 성인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신앙도 이러한 이교적 문화의 흔적 중 하나였다. 성인은 각 지역마다 숭배하던 신들의 흔적 또는 민간 설화 등의 주인공이다. 그들에 대한 전승은 그리스도교적 훈화로 바꿔치지 당했으며 그 기적은 신의 힘이 초래한 것으로 변했다.
190p
로마 가톨릭 교회가 유럽을 지배했던 중세는 다수의 신학자들이 세계와 사상의 모순을 해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연구와 해석을 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다고 일컫어지는 연옥도 그러한 신학자의 몽상에 의해 태어난 새로운 세계였다. 연옥의 존재는 신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커다른 구원을 가져왔다. 그리스도교적으로 죄인 취급을 받는 고리대금업조차 생전의 선행에 따라서 정화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것이다. 또한 당연하게도 죄를 씻고 연옥에 들어가도록 중개해주는 성직자들의 지배력이 강화되었으며, 수입 또한 증가하게 되었다.
192p
그리스도교에서 신은 모든 것을 창조해낸 위대하고도 선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는 수많은 부조리함과 악의가 만연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고통을 신이 자신들에게 내린 원죄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여 그 모순을 해소하려고 해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악을 짊어져야 하는 존재를 몽상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악마였다. ... 다양한 자연재해와 전염병도 종종 신의 분노가 아니라 악마의 소행으로 여겼다. ... 현대 시점에서 보자면 히스테리와 정신 착란 부류라 생각되지만 당시 사람들은 악마의 소행이라 생각했다. 악마 퇴치는 어디까지나 의식에 지나지 않지만 정신적인 안정을 주어 실제로 효과도 봤다.
196p
애초에 기사는 혈통으로 이루어진 귀족 계급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직무에 의해 귀족 계급으로 편입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206p
광대는, 태어나면서부터 핸디캡을 안고 있는 인간을 왕과 영주가 소유물로 삼은 경우와, 그들의 몸짓과 언동을 흉내 내는 직업 광대가 있다. 광대는 멍청하다는 인식이 있기에 왕이라 해도 무례한 발언이나 비판이 허락되었다. 교회는 순진무구를 가장하여 저속한 기예를 하는 직업 광대를 악덕한 존재로 치부한다.
224p
싸우는 사람들이 권력자였던 사회에서 전쟁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에서 보는 국가 간의 섬멸전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중세 전쟁은 대부분이 소규모였다. 페데(사적 전투)라 불리는 복수권을 방패로 삼는 약탈은 많은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를 관통하는 경제 활동으로 행해졌다. 하지만 국가라는 틀이 강해지자 십자군 등의 종교 전쟁, 국내외의 주권 분쟁도 벌어지게 된다. ... 이문화권과 이단에 대한 공격을 제외하면 전쟁은 유희적인 면도 보였다. 야전이라면 회전할 지역과 시간을 지정하여 상대하고 일몰이 되면 자신의 진지로 물러났다. 또한 몸값을 받을 수가 있기에 전투 중에 사망한 것만 아니라면 기사는 산 채로 생포됐다. 경기같은 느낌이 나는 야전에 비해 농성전은 지혜와 무력을 집중하는 총력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