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지음, 최재형 옮김 / 책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19세기 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의 여행기를 몇 권 읽었는데 이 책도 시대적 차이 때문인지 문장이 확 들어오질 않고 흡입력이 다소 부족해 천천히 읽힌다.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 즉 근대화된 사회의 계몽인이 전통 사회인 극동 지역을 방문해 그들을 관찰하는 수필은 당시 사회를 알려주는 귀한 자료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루하다.

전에는 서양인이 동양인을 본다는,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생각했는데 비슷한 포맷의 책을 몇 권 읽다 보니 오히려 근대인이 전통 사회를 보는 시대적 관점이 더 핵심인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근대화가 덜 된 아프리카의 전통 부족 지역을 방문해서 의료 선교 등을 펼치고 여행기를 쓴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가치관이 전혀 다른 전통사회를 신기하게 한편으로는 미개함을 안타까워 하지 않을까?

예컨대 저자는 계몽주의 교육을 받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근대인이고, 그가 방문한 조선은 비록 시대는 같지만 사실은 훨씬 오래 전의 고대 사회와 비슷한, 전통주의 가치관을 가진 나라였으니 단순히 문화적 차이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매우 달랐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저자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당시 조상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사극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우리 조상들은 중국을 지성으로 섬겼고,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생산력이 매우 낮았으며, 조상숭배는 서구의 기독교와 같은 위상을 갖는 종교였으며, 미신은 일상화 되었고, 여성과 농민들은 남성과 양반들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철저한 신분제의 나라였던 듯 하다.

19세기 말의 조선과 21세기 대한민국은 전혀 같은 사회라 할 수 없는 매우 이질적인 나라인데, 아직도 우리가 조상들과 공유하고 있는 특성들도 보인다.

밥 한 번 먹자는 빈말이나,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체면 위주 문화, 차린 게 없다면서 한 상 푸짐하게 내오는 겸양의 말, 의례절차나 겉모습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보다는 남의 이목을 훨씬 중시하는 점은 너무나 똑같다.

이런 점은 정말 한국인의 특성 같다.


<인상깊은 구절>

45p

조선의 고질병은 바로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앉아서 시간을 허비하고만 있는 이 나라. 그러므로 곽씨처럼 일로 굳은 살이 박인 손을 가진 사람을 본다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55p

포졸 한 명이 돌아와서는 나리께서 준비가 되셨다며 우레와 같이 큰 소리로 고했는데, 서양식 사고를 하는 내게 동양의 이와 같은 예의 격식은 참으로 위압적인 것이었다. 아아! 애잔하도록 낡은 동방이여! 이러한 광경은 내게 타고난 재능으로 미래가 창창하던 사람이 음주와 불운 속에서 결국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마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게 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포졸의 균형 잡힌 자세와 행동에 배어 있는 무언가가 그를 여전히 신사답게 느끼도록 하였다.

76p

조선에서는 짐수레같이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가축조차 짐을 지고 갈 수 없는 길이 많아서 결국 나라의 모든 힘쓰는 일은 상놈의 두 어깨가 담당했다. 

80p

일생 동안 우리가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직접 듣는 것은 이보다도 훨씬 적다. 결국 이것은 앎이라는 삶의 기능을 얻기 위해 우리가 무엇보다 훨씬 더 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81p

조선에서 '독립'이란 말은 새로운 개념이다. 단어 또한 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다른 존재로부터 분리된 오롯한 자신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양 세계에선 넓은 국토에 집이 한 채 그렇게 서 있듯 개인도 자신의 책임 하에 홀로 살아가는 반면, 동방의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집도 마을을 이루면서 반드시 함께 들어선다. 또한 서양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확장과 분화 작용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뻗어가는 큰 힘인 데 반해, 동양에선 삶을 한정하고 응축하면서 그 중심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이 과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상놈들이 차지했다. 사실 이들 상놈들의 능력 또한 너무나 쪼그라들어 있어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절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친한 사람 하나 더 붙여주지 않는 한 아무리 간단한 걸 시켜도 절망한 채 넋 놓고 있을 뿐이었다. 

87p

벼슬아치들에게 이러한 증오를 표출하는 가운데, 임금을 향해 품고 있는 이들의 충성심은 대단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설사 실제로는 아주 사악한 폭군일지라도, 상놈들은 왕을 현명함과 자애로움의 결정체이자 절대 죄를 범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신의 아들 혹은 절대 선, 옥황상제 등으로 불렀다. 다만 대궐의 신하에서부터 지방 관리까지, 전하를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모든 벼슬아치들이 나라를 축내고 있는 날강도이며 무법자일뿐.

 상놈이 같은 인간을 두려워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들의 적은 '작은 악마'라고 번역될 수 있는 도깨비나 귀신이었다. 이들은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안 좋은 상황을 이 '작은 악마'들 때문이라 여겼기 때문에, 도깨비나 귀신을 잡아 가두거나 깊은 땅속에 묻는 방법을 찾느라 얼마나 진지하고 열심인지 몰랐다.

89p

어떤 일에도 안절부절못하는 법 없이 삶을 저렇게 평온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에 파인 저 깊은 주름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하곤 했다. 나는 그것이 이 상놈들을 평생 따라다니며 그들의 삶을 속박하는 그것, 바로 귀신에 대한 공포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놈이 돌아가신 조상님과 맺고 있는 관계는 내가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독실하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과연 그 행위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들이 4대조까지의 모든 무덤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이복형제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조할아버지의 육촌형제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이들이 조상님을 얼마나 극진히 모시는지 알 수 있었다. 대체 그 조상님이 뭘 남겨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년 돌아오는 제삿날엔 어떤 조상님도 빠뜨리는 법이 없었다.

125p

장교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만주의 무슬림들이 코란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요지는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식이라면 내가 만주에 살았으면 나도 무슬림이었다.

203p

나는 이 동방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이 어떤 것이든 너무 영적인 것에 집착하면 반드시 재앙으로 귀결된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물질적 번영뿐 아니라 영적 풍요도 필요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이를 들먹이거나 여기에 의존해선 안 된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각자 제자리를 지킬 때 가정은 번창하고 이름은 빛날 것이다. 

229p

서양에서 중요한 가치가 부여되는 개인의 독립성 또한 조선 사람들에게는 전혀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우리 미국의 영광스런 표어 '여럿이 모여 이루어내는 하나'는 이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완전히 정신 나간 생각일 뿐이었다. 왜 인간이 서로 경쟁하며 치열하게 생존해나가야 하는가? 이들은 그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조선 사람들에게 삶이만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개인의 독립성이라는 것은 불신이며 의심이고 인간의 기본 도리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치 아이들이 꼭 모여서 노는 것처럼, 이들은 혼자 있으면 두 배로 편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불편한 것을 감내해가며 반드시 함께 어우러졌다. 그것 때문에 일이 두 배로 어렵게 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그들이 혼자 있음을 두려워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들 사고방식 자체가 서양인들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230p

아무리 생각 없는 미국인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 깊은 곳에는 노동이란 존귀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교육을 할 때도 어린으들은 어떤 식으로든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다. 조선말로 노동을 뜻하는 말은 일인데, 이 단어는 손실, 손상, 나쁜, 불길한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 쓴다. 게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가 의심의 여지없이 고대로부터 귀한 신분이라는 것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어떤 인터넷 게시판에서 딸을 고생시키지 않고 월세받는 건물 물려주고 전업주부로 살게 하고 싶다는 글에 대한 댓글들이 죄다 찬양 일색이었다. 맞벌이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 의식 보다는 남편의 부족한 월급을 메꾸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맞벌이 강요한다고 분노하는 댓들들을 보면서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노동은 곧 하기 싫은 일이다는 걸 느꼈다)

244p

양반 생의 제일 큰 목적은 자신이 죽고 나면 제사를 지내줄 아들을 가지는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그 아버지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다. 아들이 이렇게 아버지를 전적으로 따르도록 키워지고 나면 결국 그도 아버지만큼이나 쓸모없거나 못난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주변의 귀감이 되는 아들이라 할 수 있었다. 

246p

양반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는 조상님들께 제사를 올리고 모시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르고, 그보다 조금 먼 어른이 돌아가시면 조금 짧은 기간 동안 상을 치르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계속되는 단식과 제사는 그에 맞는 복장과 금전 지출을 요구했는데, 살아있는 가족 전체가 먹을 양식을 마련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이러한 예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종교를 저버린 타락한 무슬림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260p

도망치던 청군은 평양으로 향하는 동안 지나갔던 모든 곳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조선의 여인들은 산으로 도망쳤고, 천상의 제국에서 왔다는 이 무뢰한들에게 약탈과 강도를 당한 노인들은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확실히 두 나라의 병사들이 평양까지 진군한 모습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는데, 만약 일본이 조선에서 한 번이라도 점수를 딴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들이 반도를 가로질러 진군하는 동안 지난 곳마다 돈을 냈고, 현지 주민의 삶과 재산을 침해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청군은 평양으로 뒤죽박죽 몰려들었고, 이때 부대를 먹이기 위해 매일 이백 마리의 돼지를 잡았다고 한다.

267p

조선은 이제 확실히 일본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갔다. 고종은 하는 수 없이 조선의 독립을 천명했다. 고종을 포함해서, 중국을 아주 높이 받들어 온 선대 모든 왕들의 그 조선 문명을 들여다보면 사실 왕은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게 중국은 '대국'으로 위대한 중심이 되는 왕국이었다. 반면 일본은 난쟁이들이 사는 허접한 땅, 왜국이었다.

289p

공자의 가르침의 목적은 효를 다 하면 은혜를 입어 이승에서의 번영이 있을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직도 조선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숭상하긴 하지만, 이러한 사상 체계가 실패했다는 것이 요즘처럼 완벽하게 증명된 적은 없었다. 제사를 올리고 예를 그렇게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람들의 조상은 자손들을 결국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다. 

307p

예배당은 지금 지어지고 있지만 김씨는 이것을 보지 못했다. 부활을 기다리던 그의 몸이 이미 땅속에 잠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충실했고, 삶이 거의 끝나 힘이 빠져나가던 순간까지도 그 힘과 용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죽음과 부활! 가장 똑똑한 자들이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헛되이 찾아 헤매다가 결국 포기하고 망각한 채 죽어갔던 그것. 아무 것도 모르는 가난하고 늙은 이교도 하나가 그 비밀을 찾았고, 승리 속에 잠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