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들 SE [워너 9월 11900원 할인전]
워너브라더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역시 독특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갱스 어브 뉴욕, 을 비롯해 디파티드도 그렇고 이 영화 역시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타란티노와 더불어 정말 개성있는 감독이다

 

실화라서 그런지 더욱 실감이 난다
갱스터에 대한 동경심, 그리고 그들의 실체가 잘 드러난 영화다
직장에서 죽어라 일하고 세금 바치고 작은 월급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밥벌레가 되고 싶지 않다는 헨리 힐의 독백을 나는 너무나 공감했다
아마 갱스터가 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직장인의 비애라고 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성이나 취향과 관계없이 직장에 나가고 작은 돈을 벌어 가족과 먹고 산다
그 날이 그 날 같고 인생은 지루함의 연속이고 직장에서 안 잘리면 천만다행인 그런 똑같은 나날이 반복된다
알라딘에 맨날 토로하는 얘기도 그런 직장인의 비애가 아닌가?
아마도 헨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고, 갱스터가 되지 않는 이상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면 밥 벌어 먹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특별히 머리가 좋지도 않고 (공부 쪽으로) 좁아터진 집에 불구인 동생을 포함해 일곱 식구가 우글거릴 정도로 가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헨리가 폼나게 사는 길은 갱스터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사는 동네는 이탈리아계 마피아인 폴리의 구역이었다
폴리의 부하들이 저지르는 꺼리낌 없는 행동들, 일종의 특권은 어린 헨리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경찰도 제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폴리는 어두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면서 질서를 잡아주기까지 한다
내가 보기에 헨리는 갱스터가 될 자질이 충분한 아이다
자발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말 원해서 하는 거 말이다
설경구랑 조한선 나온 "열혈남아"를 보면, 모두 억지로 상황 때문에 조폭이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헨리는 정말 그 일을 원하고, 그런 직업을 즐기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기지만, 갱스터로서의 정체성이 확실하다고 해야 할까?

 

생각이 없을 정도로 잔인하기 그지없는 토미를 보면서 분명히 어디서 본 배우다, 싶었는데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역시나, "나홀로집에" 나왔던 어설픈 악당이었다
왠만큼 유명한 외국 배우가 아니면 구분을 잘 못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딱 눈에 들어왔다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영화 속의 토미는 정말 너무 잔인하고 살인을 즐긴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antisocial personality 같기도 하고 하여튼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겁도 없이 마피아를 죽이는 바람에 총맞아 죽었지만 말이다
그것도 참 웃긴다
순수 이탈리아인만 마피아 조직에 들어올 수 있는데, 토미가 마피아로 인정받게 된다
그들의 친구인 지미와 헨리는 기쁨에 들떠 이제 자신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조직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한 토미는 어머니가 맞춰준 양복을 입고 의기양양하게 마피아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총맞아 죽고 만다
얼굴을 쏘는 바람에 얼굴이 심하게 뭉개져 어머니는 관도 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5.18 때 총맞은 사람들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코 등이 뭉개져 형체가 없어진 사진이었는데, 너무 무서워 벌벌 떨었다
영화 속에서는 총 쏘는 장면만 보여 주고 끝인데 사후처리 장면을 보여 준다면 정말 잔인하고 끔찍할 것이다
보통 주인공은 총을 신나게 쏴 댄다
그리고 혼자서 대부분의 악당을 전부 해치운다
그렇지만 주인공에게 총맞은 이들의 다음 모습은 더 이상 안 나오니까 동정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주인공의 끔찍한 살해 행위를 보면 더이상 공감이 안 가고 멋있게 보이기는 커녕 잔인하게 느껴져서 불편하다

 

로버트 드 니로는 얼마 전에 본 "택시 드라이버" 때와 너무 달라 얼른 못 알아 봤다
알 파치노와 약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믿었던 헨리에게 뒤통수를 맞고 20년을 복역하게 생겼으니 인간을 믿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면서 보내고 있을까?
2004년까지는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했는데, 과연 출소했을지 어떨지 궁금하다
나와봤자 벌써 70이 넘은 노인이겠지만...

 

좀 이해가 안 간 부분은, 마피아의 보스인 폴리가 헨리의 증언에 의해 기소됐고 역시 20년이 넘는 형을 언도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헨리는 마피아의 복수를 피해 간 걸까?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의해 모든 기록이 말소된 채 5년간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간다고 나왔는데, 영화 속에 묘사된 마피아들은 5년이 지났다고 해서 그래도 놔 두지 않을 놈들이다
역시 연방 정부에 맞서기엔 그저 한낱 범죄 집단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보스인 폴리가 감옥에서 평생 썩게 된 것을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한 2인자에 의해 용서를 받은 걸까?
조직 내의 역학 관계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생각만큼 복수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전국적인 조직망이 아닌 이상 그 넓은 미국땅에서 주민등록증까지 말소된 헨리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을 찾기 위해 이스라엘 정보부 요원들이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영화 "뮌헨" 을 보면서, 이런 점을 느꼈다
암살이라는 게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구나, 영화에서 쉽게 죽이는 건 정말 영화니까 가능한 거구나...
하여튼 정부보다 우위에 있는 조직은 없는 것 같다
군사력, 정보력, 인맥 기타 등등에서 모두 말이다
사조직이 국가를 능가한다면 그 나라는 더 이상 국가 유지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노련한 보스 폴리는, 절대로 마약은 손대서 안 된다고 헨리에게 경고한다
아마 자기 경험을 토대로 한 얘기였을 것이다
마약 거래를 하면 연방정부에서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국 정부는 다른 건 다 몰라도 마약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정도로 폐해가 심각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감옥에서 평생을 썩기 싫으면 마약에 절대 손대지 말라는 폴리의 조언을 받아들이기엔, 헨리는 너무 젊고 야심만만 했던 것일까?
결국 마약 거래 때문에 헨리는 기소됐고 절묘하게 증인이 되서 빠져 나오긴 했지만, 평생 믿고 의지하던 친구들을 배신했고 증오해 마지 않던 삶, 밥벌레 같은 삶을 살고 결국 이혼까지 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도박판에서 돈을 많이 딴 노름꾼이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난다면?
주식에서 돈을 왕창 딴 사람이 다시는 주식에 손 안 대고 그 돈으로 쭉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이 영화 속의 헨리도 6백만불에 이르는 돈을 수중에 넣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왜 자꾸 다시 범죄 생활에서 못 벗어나는 걸까?
또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술집 나가는 아가씨가 돈을 착실하게 모아 그 생활으 청산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왜 이런 일은 불가능한 걸까?
쉽게 돈을 벌면 쉽게 잃는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생활 습관을 바꾸지 못해서인 것 같다
특히 헨리처럼 체질적으로 갱스터로서의 삶이 몸에 착 맞는 사람은 더더욱
하여튼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건 쉽게 변하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그래서 도박꾼은 또 도박장으로 향하고, 주식꾼도 객장을 떠나지 못하고 술집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마지막에 헨리가 지미와 폴리를 배신한 건 정말 충격이었다
자기 목숨을 너무 사랑한다는 헨리의 변명이 정말 그럴 듯하게 들린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이고, 어찌 보면 어지간한 배신 행위는 목숨이 걸린 이상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긴다는 표현이 흔히 나오는데 정말 이게 가능할까?
또 죽어 버리면 그만인데 과연 생명보다 더 중요한 대의명분이 있을 수 있을까?
나처럼 작은 고통에도 벌벌 떠는 사람은 독립운동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이고, 그래서인지 영웅이라는 것도 왠지 허울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마도 나는 헨리와 같은 타입의 인간인 것 같다
물론 감옥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 절대 범죄 같은 것도 못 저지를 위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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