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서은국 외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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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실망스럽다
어쩌면 행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답이 없는, 우문현답 같은 놀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자는 마지막 후기를 빌어, 행복이란 부를 가져서 내가 느끼는 감정, 즉 효용에다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을 곱하는 것이라고 했다 (베르누이라는 사람이 만든 공식)
같은 100만원을 가졌어도 이건희가 가진 100만원과 내가 가진 100만원의 감정은 하늘과 땅 차이이니, 단순히 부를 행복의 척도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 부를 얻게 됐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하지는 나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그 점이야 말로 저자의 독특한 시각인데, 저자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구분해서 설명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몇 년 후 내가 1억 짜리 차를 가지면 미치도록 행복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저축을 하고 차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과외로 일도 한다
그러나 막상 1억 짜리 차를 갖게 됐을 때, 과연 몇 년 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미칠 정도로 행복할까?
그건 알 수 없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우리는 전두엽의 상상 능력을 사용하지만, 우리의 뇌는 매우 부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상상하기 때문에 예측과 결과가 맞을 확률은 낮은 편이다
뭐, 당장 나 자신만 봐도 그렇다
엄청나게 기대했던 데이트가 정말로 기대 수준을 충족시킨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언젠가 미친듯이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와 데이트하면서 가장 좋았던 시간은 집 앞에서 그의 차를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자주 인용되는 셍텍쥐뻬리의 어린 왕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너를 네 시에 만난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진다고
그런데 저자의 설명을 빌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한다
소풍가기 전날 밤이 제일 흥분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왜 우리는 이처럼 다르게 예측하는 걸까?
뇌가 정보를 받아들일 때 전부 저장을 하려면 아마 몇 년만 살아도 용량 초과에 이를 것이다
우리의 뇌는 똑똑하게도 경험을 압축한 후 몇 개의 키워드만 입력한다
알집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 회상하려고 할 때 일부를 꺼낸 후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다
그러고 보면 100% 정확하게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특별히 인상깊게 본 것, 중요하게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대충 비슷하게 회상하지만, 그 외의 주변 풍경은 정황에 맞춰 꾸며 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슈퍼갈 때 마주친 옆집 아줌마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정확히 기억을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또 아주 맹탕으로 꾸며내는 건 아니고 대충 비슷하게는 생각해 내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목격자들의 진술을 증거로 용인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뇌가 눈과 상호작용을 한다고 설명한다
뇌는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다
그렇지만 완전 미친 놈이 아니고서야 불리한 상황을 무조건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지는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낙관주의자는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해 대처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뇌는 눈이 받아들인 현실을 어느 정도 가공한 후 가능하면 유리한 쪽으로 인지시킨다
합리화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여우와 신포도 우화처럼 말이다
인간이 매우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현실감각을 유지하고 사는 것은, 다 뇌와 눈의 조화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자기합리화에 서툰 편이다
일어난 현실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버리는 게 속편할텐데, 거의 불리한 쪽으로 받아들이므로 걱정 근심이 많다
저자는 이것도 방어기제의 일종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나도 그런 이유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 후 실제가 그 보다 나으면 최악은 면했다고 위안하는 편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설픈 상상으로 미래의 감정 상태를 예측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먼저 겪고 있는 현재의 다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관찰해 보라고 한다
내가 느끼는 것과 남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떻게 다를 수 있냐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저자의 실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하게 반응한다
사실 나도 아빠를 보면서 저 모습이 몇 년 후의 내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아빠는 취향이나 신념, 사고방식 등이 나와 매우 비슷한 사람이다
부모 자식 간이니 닮는 게 당연하면서도 흡사 놀라울 만큼 성향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방식도 닮아서 가끔 나도 놀랜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50대가 되면 딱 아빠처럼 늙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아빠를 자주 관찰하게 되고 아빠가 하는 얘기들은 나도 신뢰감을 가지고 경청하는 편이다
저자는 여기서 범위를 확대시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낀다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이 현재 겪고 있는 경험의 느낌을 토대로 미래의 내 감정을 예측하라, 이게 바로 저자의 결론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알게 된 밈이라는 개념을 저자도 쓰고 있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신념들이 있다
그래서 사회는 그 신념이 개인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전파시킨다
신념이 정확한 것일수록, 안정된 사회일수록 신뢰감이 생겨 더욱 쉽게 확산된다
이를테면 결혼이나 자녀를 낳으면 행복하다는 신념이 그렇다
결혼 생활 내내 행복한 것도 아니고, 꼭 자녀가 있어야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case by case고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녀가 가정을 이루어 그 안에서 2세를 양육시켜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회는 끊임없이 개인에게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다고 주입시킨다
특히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 신념이 서구보다 훨씬 널리 퍼진 것 같다
또 이런 이유로 동성애 가족이나 싱글맘 등도 쉽게 용인되지 않는 것 같다
확실히 밈은 독특한 설명체계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도킨스의 책을 참조할 생각이다

 

왜 내 예측이 항상 빗나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훌륭한데 그 대안이 별 게 없다는 사실이 좀 슬프다
그래도 우리는 현실에 대한 면역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아주 불행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왠만하면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약간의 위안이 될까?
어찌 보면 행복은 너무 추상적이고 가변적인 감정, 혹은 상태라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는 건 뜬구름 잡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잘못 예측하기 쉬운 미래의 나를 위해 현실의 나를 너무 닦달하지 말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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