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dts 2disc) : 아웃케이스
신한솔 감독, 백윤식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예상했던 영화가 전혀 아니었다
과연 백윤식은 연기를 잘 한다
그 카리스마!!
재희 역시 생각보다 훨씬 역할에 잘 어울렸다
춘향전인가 뭔가 찍을 때 검사로 나오는 게 하도 안 어울리고 오버 그 자체라 정말 짜능났었는데 이번 순진남 역할은 무척 어울리는 것 같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슬펐다
껄렁껄렁한 고등학생이 특이한 싸움법을 배우는 내용인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니라 맞고 사는 자의 슬픔, 뭐 이런 내용이었다
영화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사람들은 폭력성에 열광하는 걸까?
영화 속 장면들은 너무 끔찍해 눈을 감을 때가 많았다
내놓고 조폭 영웅시 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폭력이 이렇게도 잔인하고 끔찍할 수 있는지 상당히 놀랬다
교사가 아이들을 때리는 장면도 너무 리얼해 교사라기 보다는 폭력 학생들의 보스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학교 깡패에게 얻어맞은 주인공의 친구는 생명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왜 관객들은 이런 잔인한 설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걸까?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서?
혹은 우리 안에 숨은 폭력성 때문에?
어쩌면 K1을 보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이히만이 잔인한 악인 같지만, 실은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그녀의 분석이다
오히려 그는 생각이라는 걸 못하는, 사유가 없는, 말하자면 미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히틀러의 끔찍한 학살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앞장섰다는 것이다
학살계획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곧 국가를 위하는 일이고 민족을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아이히만은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식을 못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민주투사들을 고문하는 고문관들이, 잠깐 쉬는 시간에 아이들 걱정하고 부모 생각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시키는 잔인한 현장에서, 어떻게 그렇게도 평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아무리 잔인한 살인자라도 그 현장을 떠나서는 매우 평범한 그저 그런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히틀러 역시 광기에 사로잡힌 미친 인간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한나 아렌트는 거기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악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이유는 뭘까?
아렌트는 그것을 사유의 결핍이라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생각이 없는 것이다
판단력이 정지되고 뭐가 옳고 그른지를 모르는 것이다
아마 박정희 시대 고문관들도 그것이 나쁜 행위라는 것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만약 독재가 나쁘다는 걸 깨달았다면 어쩌면 그렇게도 일상적으로 고문을 저지를 수 있었겠는가

 

영화를 보면서 자꾸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백윤식이 재희에게 싸움을 가르치면서 왜 너는 힘도 세고 반사신경도 좋은데 사람을 때리지 못하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나는 재희의 캐릭터가 원래 착한 사람이라 공격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천성적으로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백윤식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하도 많이 맞아 봐서 두려움 때문에 때리지 못한다고 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정말 그 위험성이나 결과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두려워 하지 않고 덤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이 제일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뭘 모르니까 물불을 안 가린다

 

백윤식이 싸움을 가르쳐 달라는 재희에게 싸움 배워서 뭐 하냐고 거절한다
그러자 재희가 이렇게 묻는다
당신 맞아 봤어요? 맞고 사는 사람의 심정 알아요?
난 그 대사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직접 겪지 않으면 절대 그 고통을 모른다
아버지가 형사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로 깡패 친구들에게 매일 얻어맞는 그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단순히 신체적인 아픔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굴욕감, 수치심, 억울함...
참 이상한 게 영화 속의 깡패들은 사람을 괴롭힐 때 꼭 성추행을 동반한다
구타유발자에서도 그랬는데 이 영화에서도 깡패가 재희의 고추를 만지작 거린다
또 자기 발 밑을 핥으라고 한다
상대방에서 수치심을 유발하고 완벽한 복종의 상징적인 표현인 줄은 알겠는데, 그런 행위는 가해자에게도 수치스럽지 않을까?
쾌감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도 역겨워질 것 같은데 왜 이런 행위를 태연하게 시키는 걸까?
변태처럼 보인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말은, 인생은 싸움이고 싸움의 기본은 상대방의 기를 꺽는 것이라는 대사였다
촌철살인과 같은 말이 아닌가 싶다
꼭 신체적인 싸움이 아니라 할지라도 주도권 싸움부터 시작해 직장 내에서의 갈등 관계 등 인간관계나 업무적인 일들이 결국은 상대방과의 투쟁이고, 기선 제압을 해야 이길 수 있으니까
그러려면 일단 실력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두려움을 없애야 할 것 같다
결국은 용기가 가장 중요한 덕목일까?

 

하나의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꽤 괜찮은 영화였음이 틀림없다
더불어 백윤식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바다
시나리오 고르는 눈이 매서운 것 같다
범죄의 재구성에 이어 이번 영화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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