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칼 세이건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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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과학자, 칼 세이건의 마지막 저서인 "에필로그" 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이 다소 지루하고 어려웠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책보다 훨씬 쉽고 가벼운, 그야말로 에필로그다운 수필류였기 때문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서문에 실린 아내 애니의 글은 칼 세이건의 가족사를 엿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안타깝게도 그는 골수이형성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겨우 예순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웃도는 요즘 세상에, 62세는 정말 너무 아까운 나이가 아닐 수 없다
골수 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하루에 72알씩 먹는 고통의 나날들 중에도 삶이 주는 환희와 기쁨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용기를 가지고 남은 날들을 불사른 그의 의지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죽기 직전 일시적인 호전이 있었는지, 유언 같은 한 편의 글을 썼고, 그 글이 책의 마지막에 "에필로그"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얼마 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글에서 나는 고통 속에서도 생의 아름다운 면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그의 긍정성을 발견했다
다섯 살짜리 어린 아들을 두고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러나 어디에도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과학자는 역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다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신을 찾지 않은 점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많은 종교인들에게도 감사의 글을 잊지 않았다

 

환경 오염과 핵무기에 대한 세이건의 걱정은 나에게 새롭게 와닿았다
핵무기나 국방비 증가에 대해서는 나 역시 매우 걱정하는 입장이지만, 환경 오염 쪽은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나로서는 뭐랄까, 환경주의자들이 지나치게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고 지키기 어려운 것들을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환경을 걱정해서라기 보다는, 권력을 얻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서 환경 문제를 들먹인다는 느낌이 강한 편이었다
이를테면 전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소는 다 폐기해야 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 때문에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느긋한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이건의 글을 읽으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중요한 것은 환경 보호를 외치는 것 보다, 개도국이 빨리 경제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개발원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빈곤의 종말" 에서도 반복된 주장이다
정말 환경 문제를 걱정한다면, 그것도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걱정이 된다면 가난한 나라들이 빨리 경제 성장을 해서 환경 문제에까지 신경쓸 여력이 생기도록 도와야 한다
인구 증가 문제도 그렇다
선진국들은 애를 안 낳아서 문제지만, 반대로 후진국은 여전히 높은 인구 성장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높은 인구 증가율은 반드시 가난과 연결되어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를 높이고, 경제 성장을 이룩해야만 후진국의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세이건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다

 

우주에 대한 인식을 넓힌 점도 새로운 소득이었다
가끔 우주개발에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돈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지적하는 글을 보게 된다
그런데 세이건은 해년마다 증가하는 국방비의 작은 부분이라도 우주개발 쪽에 투자를 했더라면 벌써 화성 쯤은 유인 우주선을 보냈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그러고 보면 국방비를 줄여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다
사회 복지나 기초 학문 지원 같은 일 등등 말이다)
그가 쓴 "콘택트"에서도 느낀 바지만,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꼭 미래의 이득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넓히는,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찾는 또 하나의 위대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에 인구가 너무 많아 다른 행성으로 옮겨 가기 위해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적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이익이 없더라도 우리를 둘러 싼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우주 개발은 커다란 의미를 주는 건 아닐까?

 

세이건의 말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우주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즉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여전히 절대자의 위대함은 손상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종교인들은 그들의 교리에 맞춰 우주를 변형시킨다
비록 세이건은 신을 믿지 않지만, 그의 말대로 과학이 찾아낸 사실, 혹은 진리를 인정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위대함이 손상되는 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니, 오히려 그 분이 설계한 세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좋은 일 아닐까?
왜 과학자들이 밝혀내는 학문적 진리가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야 하는지 모르겠다

 

세이건은 글을 참 잘 쓴다
도킨스와 더불어 많은 팬을 거느린 훌륭한 과학 저술가다
이런 저술가들이 많이 나와서, 대중들에게 과학이 밝혀내는 세상의 신비를 보다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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