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대제 - 그의 삶, 시대, 유산 역사 모노그래프 3
린지 휴스 지음, 김혜란 옮김 / 모노그래프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지루할까 봐 걱정했는데 예상대로 읽느라 좀 힘들었다.

평전은 한 인물의 일생에 대해 너무 상세하게 설명하는 바람에 지엽적인 것들까지 다 읽어야 해서 지루함을 피하기가 어려운 듯 하다.

앞서 읽은 장거정 평전과 비슷한 느낌이다.

근대 러시아를 세운 표트르 대제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읽게 됐는데, 동양사에 비해 유럽사, 특히 러시아사에 무지하다 보니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진도가 빨리빨리 안 나가 꽤 힘들게 읽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개인의 찬양에 함몰되지 않는 입체적인 인물 평가와 18세기 러시아가 어떻게 유럽에 편입하게 됐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저술이다.

정통 역사학자의 놀라운 필력이 돋보인다.

책의 2/3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이다.

러시아 역시 유럽사에서는 변방인지, 스웨덴과의 전쟁은 그저 이름만 들어봤을 뿐 이렇게 중요하고도 20여 년의 시간을 끈 오랜 전투였는지 처음 알았다.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비로소 러시아는 유럽 사회의 진정한 일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근면성실하고 현실적인 독특한 개성의 집념어린 인간이었던 듯 하다.

취미가 배 만들기었던 황제라니.

목공이 취미였던 명나라의 천계제가 생각난다.

황제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매우 현실적인 취미를 가졌는데도 역시 개인의 역량에 따라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다를 수 있는 모양이다.

군대와 함께 살았던 스웨덴의 칼 12세나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았다) 맨 밑의 사병부터 복무했던 표트르 대제를 보면 확실히 유럽의 왕들은 조선의 유학자적 군주와는 매우 다른 지배자였던 듯 하다.

표트르 대제가 외국인 농민의 정부에 불과했던 예카테리나를 황후로 만들고 심지어 그의 사후 여제로 등극까지 했던 것을 보면서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던 숙종과 장희빈이 생각난다.

장희빈이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사후 병약한 아들을 통해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었을까?

농민의 딸을 황후로 세운 표트르나, 궁녀를 중전으로 만든 숙종이나 보통 성격의 군주는 아니었을 듯 하다.

또 표트르는 전처 아들 알렉세이를 고문으로 죽게 만든다.

이 부분도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것과 흡사하다.

저자가 평한 대로 당시 자식에 대한 관념은 오늘날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는 매우 달랐던 게 분명하다.

표트르의 사인은 물에 빠진 병사를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위키에 나왔는데, 역시 말도 안 되는 에피소드였다.

읽으면서도 너무 이상하다 싶었다.

저자는 항간에 떠도는 야사로 일축하고 있고 진짜 사인은 요로결석에 의한 요폐쇄와 그에 따른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생각한다.

1월 17일 배뇨장애가 발생했고 1월 28일 사망하는 바람에 후계자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결석은 엄청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인데 그로 인해 죽기까지 10여일 간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렸을지 짐작이 간다.

전통주의에 함몰되어 있던 러시아를 근대화 시킨 표트르를 보면서 메이지 유신과 조선의 개항에 대해 생각해 봤다.

표트르는 개혁을 위해 유럽 여러 나라를 순례했고 복식 개혁을 단행하고 군함을 건조하고 군사력을 키웠다.

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타국과의 교류가 단절됐기 때문일까?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의 교류마저 단절한 채 고립주의로 나간 것이 가장 큰 요인일까?

정말 소현세자가 등극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으면 중세적 농본주의 유학자의 나라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당시 사회체제로는 왕 개인의 노력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이런 위대한 지도자의 전기를 읽으면 한 국가를 이끄는, 특히 전제군주제의 왕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지고 우리 근세사에서 근대화를 가능케 할 군주가 없었음이 아쉽다.



<인상 깊은 구절>

40p

러시아 농민의 탈주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피해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17세기 러시아의 기후나 토양이 대체로 농업의 생육에 매우 빠듯한 조건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농민경제가 농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국가에 재정여유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꽤 성공적이었다. 대체로 낮은 생산성을 초래한 것은 흔히 말하는 농노제도 때문이 아니라, 까다로운 기후적, 지리적 환경 때문이었다. 물론 농노제도 자체가 훌륭해서 농민이 농노제를 열렬히 받아들였다든가, 농민의 삶이 편안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44p

물론, 유럽 다른 나라들의 지식수준을 과장한다든가, 코페르니쿠스 이론이나 미적분학을 들어본 적 있는 서구인의 수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당시도 지금처럼 선진적 과학지식은 극소수의 전유물이었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전하는 토착적인 민중의 지혜와 기술이 대부분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민중의 지혜과 농민의 수공예로는 최신 군사기술의 창조와 원양함선의 건조 등 표트르가 상당히 주의를 기둘여야 했던 분야에서 성과를 거둘 수 없었고, 외국 조정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도 없었다.

57p

친척이 아닌 남성과의 접촉을 제한하는 특별한 풍습과 엘리트 여성의 생활을 고립에 가까운 상태로 규제하는 모스크바 차르국의 관습 때문에 여성의 공개적인 정치 행보는 제한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여성들은 여전히 상당한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이들이 왕족 혈통이기도 하고, 정교회의 대변자이자 왕족 남성들과 왕국을 돕는 중재자로서 왕후와 공주의 역할을 강조한 정치권력의 종교적 견해 때문이기도 했다.

94p

표트르는 상징적, 표상적인 것의 가치를 인정할 소양을 갖췄지만, 평생 관념보다는 물질에 훨씬 큰 애착을 두었고, 추상적인 것보다 실질적인 것을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상스러운 유머감각도 있었다.

104p

핵심 측근 내부에서 출세하는 데에 필요한 비결은 공식적인 자격보다 '성격상의 궁합'에 달려 있었다. 멘시코프는 표트르에게 추천될 만한 자질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는 차르의 유머 감각에 대응할 센스를 갖췄고, 함께 대작할 수 있을 만큼 주량도 셌다. 표트라가 멘시코프의 여러 단점, 그중에서도 그의 야망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 멘시코프는 수년 동안 자신의 지지 조직을 구축하면서 부와 권력을 형성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결국 표트르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코 동등해질 수 없었다.

156p

표트르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만만찮은 상대와 대결하고 있었다. 표트르는 결코 낙승을 거두지 못했고, 스웨덴의 '소년 왕(칼 12세)'은 표트르보다 훨씬 더 전쟁에 전력을 기울였음이 입증되었다. 심지어 그는 취향도 표트르보다 소박하고 불편한 환경에도 무심한 편이었다. 실제로 칼 12세는 1700년부터 1718년에 죽을 때까지 스웨덴 본토에 거의 돌아간 적이 없었다. 표트르가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짬을 내어 했던 일들, 이를테면 새로운 정원 조성의 감독, 가장무도회의 준비, 선반 위에서 코담배 보관함 만들기 등의 여러 가지 일을 칼 12세는 전혀 하지 않았다. 군대와 함께 한 칼 12세의 암울한 생활(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에 비교하면, 표트르의 문제 많은 가정생활은 전원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혹자는 집착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칼의 군대 사랑은 유별났다.

279p

표트르가 반포한 아래의 칙령은 표트르를 '괴롭힌' 수많은 탄원인을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탄원하지만, 그들이 탄원하는 대상은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한사람은 너무나도 많은 군사 업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힘든 일들로 둘러싸여 있다. ... 그리고 설사 그에게 그렇게 많은 업무가 쌓여 있지 않다고 한들,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일을 모두 살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298p

표트르는 자신이 '父情'에 이끌렸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역할에 관한 그의 인식은 결코 오늘날의 아이 중심적 개념이 아니었다. 표트르는 "사적으로는 부모지만, 우리처럼 매우 합당한 이유로 군주의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그 어떤 판관들의 판결과 무관하게 자식들에 대한 무제한의 권한을 갖고 있다."라고 글을 씀으로써, 당시의 신념에 공감을 표했다. 아버지는 두 번째 직책일 뿐이었다. 그는 임무를 맡은 군주였지만, 그의 아들은 가장 최악의 방법인 국가를 저버리는 행동으로 임무 수행에 실패했다. 표트르는 알렉세이를 대할 때 일종의 지독한 일관성이 있었는데, 그의 그런 태도는 누구든, 심지어 아들이라도 본인이 직접 쟁취하지 않은 특권과 승진을 누릴 수 없다는 그의 고집과, 높은 지위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봉사해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 우선 표트르 자신이 원치 않던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이를 결코 사랑한 적이 없었고, 알렉세이 또한 자신의 나이 겨우 여덟 살에 모친을 유배한 부친을 사랑할 수 없었다.

326p

시골의 풍류 생활에 대한 이런 설명이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삶은 그렇게 목가적이지 않았다. 평화는 여전히 찾기 힘든 상황이었고, 1720년의 하반기에 표트르는 해상에서 전투를 벌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335p

우리의 수도사들은 그간 너무 살이 쪘다. 천국으로 통하는 문은 믿음과 금식, 그리고 기도다. 나는 그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철갑상어와 포도주가 아니라, 빵과 물이면 충분하다는 점을 일러줄 것이다.  ...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다른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표트르 역시 신의 섭리가 인간사의 결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관념에 결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372p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오직 관료의 직책이 사람에게 사회적 명성을 줄 수 있다" ... 그러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출생과 결혼에는 계속 특권이 부여되었다. ... 요구하는 등급에 오를 만큼 성공한 평민에게 세습 귀족의 신분이 수여된다는 사실은 "귀족이 타고난 사회지도층"이라는 개념을 뒷받침했다. ...  "표트르가 염두에 둔 것은 귀족의 지위를 격하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은 우수한 자질과 혈통의 측면에서 귀족과 일반 평민이 다르다는 사실을 귀족계층에게 주입하려는 의도였다."

384p

표트르의 경제는 전통적인 틀 안에서 운영되었다. 그런 운영의 계기가 된 것은 전쟁이었고, 표트르가 군사적 요구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전제군주제와 농노제였다. "이 무소불위한 지배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백성을 이용하고, 자신이 나누고 싶은 곳에 백성의 부를 사용한다." 자급경제는 사복을 채우는 관료들과 지방 실력자들의 '착취'를 받는 백성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국가가 분담하기에 딱 충분한 흑자를 만들어냈다. 러시아인들은 거의 자본이 없었고, 보험제도나 품질관리제도 또한 없었다. 대외무역과 부수적인 서비스(보험, 운송, 중개)를 위한 신용거래는 외국인이 제공했다. 상인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 태도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416p

주지하듯이 표트르는 특히 '공익'에 반하는 범죄를 잘 용서하지 않았고, 그러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대체로 "지위고하를 막론한" 모든 관료가 처형식에 참석하여 적절한 주의를 받아야만 했다.

425p

"사람들은 미천한 신분에서 태어나 쭉 자라온 그녀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정점인 황후에 오르게 한 신의 섭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관료들은 기쁨을 표현함으로써 황후에 대한 각자의 충성심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443p

표트르가 자신에게 나타난 증상을 무시하고 활동 속도를 늦추는 것을 거부하여 자기 죽음을 재촉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일치하는 견해이다.

458p

군주의 측근이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가장 원치 않았던 일은 또 한 명의 표트르를 대면하는 것이었다. 그를 대면한다는 것은 진이 빠질 만큼 벅찬 작업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곤봉으로 두들겨 맞거나 치욕스러운 몇몇 의식에서 굴욕을 당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여성 군주는 대규모 군사 훈련 사이에 한숨 돌릴 틈과 약간의 여유를 약속했다.

467p

표트르의 경제는 전통적인 틀 안에서 운용되어 전쟁이나 방어가 자체의 추진력을 만들어 냈고, 표트르가 군사적 수요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제군주제와 농노제 덕분이었다. 그의 경제는 인구의 90퍼센트가 소작농인 전체 주민에게서 병역, 노동력, 세금을 착취하는 절대 권력을 사용했는데, 본질은 결국 러시아의 '후진성'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었다. ... 출세한 사람들은 기업가가 되기보다 장원경제를 성공적으로 착취하는 귀족이 되려고 했고, 기업가 중에서 가장 성공한 부류도 귀족이 되기를 열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성공한 개인 기업가의 일부는 구교도들이었는데, 그들은 제국의 기득권층에 합류하려는 열망 없이 자립과 절약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470p

표트르의 해군과 구소련의 우주로켓은 모두 각자의 직접적인 기능 이외에도 많은 상징을 만들어냈으며, 러시아가 인접 국경을 넘어 세계를 정복할 수단을 갖추고 세계 무대를 노린 주요 도전자였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동시에 표트르의 해군과 구소련의 우주로켓 모두 훨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공적자금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오류>

145p

표트르는 "스코틀랜드의 메리가 언니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명령으로 감옥에서 단두대로 끌려 나왔던 일"을 염두에 두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메리의 언니가 아니라 당고모다. 엘리자베스와 아버지 제임스 5세가 외종 사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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