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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1337~1453 - 중세의 역사를 바꾼 영국-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이야기
데즈먼드 수어드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8년 3월
평점 :
근대에 비해 서양 중세사는 항상 모호한 안개 속 같은 기분이다.
특히 복잡한 혼인 관계와 민족국가 형성 전의 왕위 계승 문제로 확실한 실체가 보이지 않는 기분이다.
말로만 듣던 백년전쟁이 어떤 배경 속에서 누가 주도하여 어떻게 전개되고 끝났는지에 대한 자세한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정리가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다!
자세한 전투 내용은 정확히 이해를 못했고 프랑스와 영국이라는 민족국가 형성에 백년전쟁이 큰 분수령이 됐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또 중세 전쟁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끔찍한 대학살 내지는 초토화 작전인 슈보시와 점령군에게 내는 일종의 보호비인 파티스, 몸값 지불을 통한 포로 사업 등의 실체를 알게 됐다.
문득 병자호란이 생각났다.
청나라가 침입한 후 무수한 포로들을 데려가 노예로 삼거나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게 했는데 이는 병사들의 개인 재산이라 함부로 방면해 줄 수 없었다는 의미를 이해할 것 같다.
오늘날의 포로 석방 같은 개념이 적용될 수 없고 중세의 전쟁이란 일종의 재산 획득 과정으로 왕과 귀족은 영토를 얻고 병사들은 포로와 값나가는 물품들을 얻는다.
이런 약탈물도 무조건 자기 것이 되는 게 아니라 1/3은 반드시 주군에게 바쳐야 하고 주군은 또 그 위의 상위 귀족과 왕에게 일정 부분을 바쳐야 비로소 권리가 인정이 된다.
영국의 왕들은 프랑스의 대귀족을 사로잡아 얻게 된 몸값으로 전쟁 비용을 충당했다.
중세의 왕들은 고려나 조선 시대의 유학자 같은 점잖은 군주가 아니라 직접 말을 타고 전장의 일선에서 지휘하는 무사들이었다.
장 2세는 영국군에게 잡혀 엄청난 몸값을 지불해야 했다.
슈보시는 적군의 자원을 파괴시키기 위해 인명과 재산을 전부 불태워 버리는 일종의 대학살이다.
몽골군만 끔찍한 대학살을 저지르는 줄 알았더니 중세 전쟁의 특성 같기도 하다.
백 년의 긴 기간 동안 프랑스에 영토를 두고 원정전을 펼쳤던 영국의 국력도 놀랍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부르고뉴 궁전의 배신이 있었으며 결국 이들이 다시 프랑스 편으로 돌아오고 대포의 개발로 영국군은 축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르고뉴 공작은 영국 대신 프랑스를 선택하는 바람에 프랑스 왕실에 합병되어 버린다.
민족국가 형성 전이니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은 듯 하다.
<인상깊은 구절>
382p
백년전쟁에 대한 잉글랜드의 유일한 기념비는 버너스 경의 웅혼한 프루아사르 번역과 세익스피어의 사극들이다. 두 나라 사람들 간의 불편한 관계의 기원은 백년전쟁 동안 벌어진 전투, 포위전, 슈보시, 몸값 갈취, 약탈, 파티스, 프랑스에서 잉글랜드인들이 저지른 방화와 살해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강력한 근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