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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폭에 흐르는 중국역사 - 황제의 여인들
짜오지엔민 지음, 곽복선 옮김 / 정독(마인드탭(MindTap)) / 2017년 12월
평점 :
야사 위주의 책일까 봐 걱정했는데 책 수준은 괜찮다.
중국인이 쓴 중국사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지루한 경우가 많은데 이 책 역시 수많은 비빈과 황제들이 등장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헷갈리고 잘 모르겠다.
조선사라고 하면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당시 상황이 금방 그려지는데, 진의 후주 진숙보의 딸 선화부인과 수 양제의 사통이라는 문단이 나오면, 진숙보와 선화부인이 누구인지 찾아봐야 해서 독서 시간이 무한정 늘어지고 있다.
대신 반복해서 읽고 검색하다 보면 중국의 복잡한 역사와 수많은 인물들이 대강의 개요가 잡히는 장점이 있다.
사극이라고 하면 궁중 암투가 대부분이라 그저 사랑 얘기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오직 황제만을 바라보면서의 권력의 원천인 애정과 아들을 얻기 위한 투쟁이 여자들의 세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책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중국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유일한 황제로 등극한 무측천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서에 길이 남을 놀라운 권력자임이 분명하다.
어린 아들과 조카의 뒤에서 정국을 좌지우지한 서태후와는 또다른 진정한 의미의 최고 권력자였던 듯 하다.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치열하게 남성본위의 세계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투쟁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러고 보니 저자의 전작, <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번역이 비교적 매끄럽지만 간간히 어색한 번역투의 문장이 아쉽고, 제목도 야사 같은 느낌이 들어 책의 진중함을 다 못 보여 주는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머리말 6p
생존의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여성의 세계는 외부의 남성 세계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녀들은 지위를 갈망했다. 지위가 이러한 세계 속에서 그녀들의 존귀함과 비천함을 결정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권력을 추구하였다. 권력이 이러한 세계 속에서 그녀들의 지배력을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정을 갈망하였다. 애정이 이러한 세계 속에서 그녀들의 삶의 윤택함을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그녀들의 개인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무수한 내궁의 규칙, 규례 및 금기의 제한을 받아야 했다. ... 여인천하의 모든 여인들은 오직 한 남자, 군주만을 둘러싸고 움직여야 했다. 한 남자만을 둘러싸고 돌고 돌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던가?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느끼는 이야기들이 그 당시에는 절대로 그렇게 감동적일 리가 없었다. 삶과 죽음의 투쟁, 영혼과 육체의 충돌, 자유와 질식의 격투. 이러한 것들이 시도 때도 없이 꽃같이 아름답고 옥같이 고운 육체들을 괴롭혔다. ... 그녀들은 공동으로 소유한 유일한 남자가 안배하는 그대로 해야 했지만 동시에 그와 은근하게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자기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에게서 자신에 대한 호감, 환심, 총애를 반드시 얻어내야 했으며, 하늘이 도와 그의 아들을 낳고 언젠가 봉황이 새겨진 황후의 관을 쓰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러한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그녀들은 적막히 떠도는 밤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상인 남자는 단지 한 명에 불과하고, 황후 자리도 한 개에 불과하며 눈에 두드러지는 비빈의 자리도 몇 개에 불과한데 여인들의 수는 너무나 많아, 이러한 자리들을 얻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이기면 왕이 되고 패하면 도적이 된다'는 말 그대로 내궁 여인들의 세계와 그 바깥 남성들의 세계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녀들에게 가장 어렵고 가장 처참한 일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일부의 여인들은 욕망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정치적인 조력자를 찾아내었다. 자기 처지에 안주하며 냉담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지내는 여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처한 국면을 좌지우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운명에 자신의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깊고 깊은 내궁에 있는 여인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성공만이 허용되며 실패는 허용되지 않았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자식이 없다면 그 여인은 치명적인 재앙을 맞거나 치욕을 당하는 것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위험한 국면을 만회하고, 시대의 조류를 거슬러 움직이면서, 황제와 가깝다는 편리를 이용하여, 남자들의 지배를 격파하고, 국가의 지배자로 변하여, 남자들을 다스리고, 여인들을 다스리며, 모든 세상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면서, 자기 자신을 주재했던 황후 비빈들도 있었는데, 그 지배 방식은 장기간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었다. 황후의 관에서 황제의 관으로 바꾸어 쓰려뎐 시도는 당나라 시대 몇몇 황후 비빈이 용감하게 시도한 경우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생명과 명예를 모두 잃어 버렸다. 혈로를 뚫고 황제위에 올라간 사람은 무측천 한 사람뿐이며, 이로써 천고에 길이 빛나는 여황제가 되었다. 그 대가는 일천여 년에 걸친 여론의 공격이었다.
규율을 벗어난 자는 반드시 징벌을 받았다. 징벌은 인위적인 것도 있고, 운명적인 것도 있었다.
11p
비록 중국의 조상들이 '여자는 재능이 없어야 덕이 있다'라는 말을 전해 주었지만, 왕왕 현실은 오히려 반대의 현상을 보여 주었다. 군주들이 재능 있는 여인들에게 쉽게 끌렸기 때문이다. 군주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국가 이익을 위해선 덕 있는 여인을 필요로 하였지만, 자신의 개인 감정을 위해서는 재능 있는 여인을 필요로 하였다. 역사상 가장 이름을 날렸던 몇몇의 황후비빈들은 모두 재녀였다. 여성의 재능은 여러 가지인데 제일 보편적인 것은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문예적 재능이었으며, 비교적 이목을 끌었던 것은 노래와 악기를 잘 다루고 춤을 잘 추는 것이었다.
19p
내궁의 엄격한 등급은 궁정 생활을 관리하는 데 유리하였다. 궁궐의 여인들이 승진할 수 있는 계단을 제시하여 주고 있었으며, 최선을 다하여 군주를 모시도록 촉진하였다.
38p
천하의 여성들을 선택하는 특권을 지닌 군주들이 재혼하는 여자를 처나 첩으로 맞아들였다는 것은 당시 시대의 조류가 정절을 엄격한 사회도덕으로 삼지 않았으며, 여자의 재혼이 남녀 쌍방의 체면을 깎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처녀를 중시한 것은 송, 명의 이학이 흥성하면서 힘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여인의 몸값과 정절 여부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스스로 존귀함이 있어야 다른 이의 존귀함을 얻게 되는데, 여인의 존귀함은 한 남편만을 죽을 때까지 섬기는 데 있었다. ... 남성이 재혼녀를 맞아 들이는 것은 가문을 더럽히는 것이었다. ... 혼인관계에 있어 비교적 원시적이었던 청의 통치자들도 중원으로 들어 온 후에는 신속하게 정절 관념을 받아들였으며, 원래보다 더 엄격하게 실행하였다.
44p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 행운을 얻더라도 그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열등감이 있는 법이다. 가문의 계보를 위조하여 자기의 신분을 높여 사회의 인정을 받기를 갈망하였다. ... 비천한 여인을 황후로 삼는 것은 아무튼 어쩔 수 없는 형세에서 임시변통으로 취하는 계책이었지, 정통 여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었으며, 대단히 큰 사회적 압력을 받는 일이었다.
50p
주우규는 음란에 빠져있던 아버지를 찔러 죽였다. 주온은 30년 넘게 세상을 주름잡았던, 수많은 영웅호걸들도 감히 맞설 수 없었던 인물이었는데, 최후에는 윤리도덕을 위반한 것으로 인해 갑자기 죽게 되었다.
71p
극히 적은 사례를 제외하고는 절대적으로 남자가 중심이었던 사회에서 황후와 비빈들은 절대 금기로 여기는 군주 자리를 감히 차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수렴청정은 모후가 어린 황제를 보호하는 제도의 일종이다. 그러나 모후에게 별도의 동기가 있게 되면, 수렴청정은 어린 황제의 인격에 대한 모욕과 유린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자기의 친아들이 아닌 경우에는 이러한 변태적인 일이 상당수 발생하였지만, 친아들에 대해서는 드문 일이었다.
98p
역사적 비극들은 서로 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 대해 별다른 감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내심으로 편안해 하였다. 개인적인 비극들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자는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104p
서출에서 적통으로 된 황위 계승자에 대하여, 통치그룹은 그가 능히 전체 국면을 고려하여 정치 원칙으로 모자 관계를 확립하고 일반적인 핏줄의 윤리관계에 얽매이지 않기를 희망하였다. 동시에 그는 그의 지위와 권력이 생모로부터가 아니라 적모로부터 왔다는 것과 그가 유일하게 지켜야 하는 정해진 친족 질서는 황위 계승자라 불리는 것임을 이해해야 했다.
111p
진정한 생명의 의지처는 남편이 아니며 전정한 정신의 버팀목은 종교가 아니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아들의 신분에 걸려 있었다. 황후비빈이 볼 때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아들을 대신해 거론할 것이 못되었다. 아들은 그녀들의 모든 것이었다. 만일 중년에 아들을 잃으면 더욱이 외아들을 잃는다면 비록 주변이 이전과 다름없이 같을지라도 그녀들 자신이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 빠져 들거가게 된다.
116p
군주는 그녀들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를 제공하지만 이러한 지위를 장기간 보전할 수 있을지 여부는 상당 부분 그녀들에게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아들은 황후비빈들의 끝없이 누릴 수 있는 재산이었으며, 비교할 데 없는 정치적 보장이었다.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에 기대어 평생의 복을 누릴 수 있었다. 후대를 낳아 기르는 것은 본래 동물들의 천성이지만, 황후비빈에게 있어서는 정치적인 충동으로 승화되었다. 그녀들은 아들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러한 고귀한 어머니의 사랑도 오히려 그녀들의 자기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 앞에서는 날로 사라져가는 얼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버림과 냉대를 받는다 할지라도, 아들에게는 절대로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166p
남존여비의 전통문화 속에서 훈육을 받기 때문에 여성은 어려서부터 무의식 중에 감화되어 강렬한 의존 심리를 갖게 된다. 그 지위가 얼마나 높든, 권력이 얼마나 크든, 또한 얼마나 많이 독립적인 성격을 갖든 잠재의식적으로 남성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보면 당시의 사회는 남자 중심의 세계였기 때문에 남성의 도움과 밀어줌이 없다면 그녀들의 지위는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근본적으로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기초를 세울 수 없었다. 도덕으로 자기를 잘 다스리는 태후는 감정의 갈등에 빠져들어 가는 것을 힘을 다하여 피하면서 정치상의 몇몇 파트너만을 구하였다. 그러나 애정을 중시하는 태후는 아주 쉽게 정치 파트너를 남자노리개로 변하게 하거나 또는 남자노리개를 정치적 파트너로 변하게 하였다.
340p
사람이 생활하는 즐거움 중 최대의 즐거움은 인간관계가 정말로 찰떡궁합일 때이다. 무릇 군주의 총애를 얻는 여인들은 어쨌든 군주와 가장 잘 어우러진 여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융합이 이루어지려면 수많은 요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철저한 이해, 심령상의 교통, 정취상의 의기투합이 있어야 한다. 군주와 육신의 욕망을 넘어 정신적 교감이 있는 정감을 가진 황후와 비빈들은 모두 남다른 소질을 갖추고 있어 군주의 심사를 지극히 잘 살필 수 있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는 쌍방 모두 진정을 드러내 감히 자신의 진실한 정감을 표현하며 마음먹고 유쾌한 교류를 하게 된다. 그들의 관계는 간단한 부부관계나 군주와 신하의 관계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 승화된 친구관계가 된다.
<오류>
51p
우문윤은 무제 우문경의 큰 아들로~
->우문경이 아니라 우문옹이다.
106p
유송의 문제 유애융의 비빈이며~
->유애융이 아니라 유의륭이다.
119p
한 소제는 즉위한 후에 장자 유오를 태자로 삼았으며, 그의 생모인 왕(王)비(妃)를 첩여로 책봉하였다.
->한 소제가 아니라 한 원제다.
320p
후당 장종(이사원. 5대 10국 시기 후당의 두 번째 황제로 진왕 이극용의 양아들)
->장종은 이극용의 친자로 이름은 이존욱이다. 이극용의 양자인 이사원은 다음 왕인 명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