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 1 - 창덕궁 후원 창경궁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 1
역사건축기술연구소 지음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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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처음 읽었을 때는 전각 이름이 너무 복잡하고 많아 읽기는 했지만 창덕궁과 창경궁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궁궐이 궁금한 이유는 건축학적 의미보다는, 전각 이름이 역사책에서 등장할 때 어디를 가르키는 말인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건축학적 지식에 포커스를 맞추는 책은 좀 지루한데 이 책 역시 앞서 읽은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보다는 건물에 페이지를 많이 할애하고 있다.

반복해서 자주 읽으니 동궐도의 복잡한 그림을 어느 정도 볼 수 있게 됐다.

동궐도가 없었으면 우리 궁궐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미약했을까 싶다.

궁궐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역시 후원이다.

동궐의 후원을 거닐며 자연의 변화를 완상하고 많은 시를 남긴 조선 국왕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한시를 배워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대중 매체가 없던 시절이니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늘날 보다 훨씬 풍부하게 느끼고 살았을 듯 하다.

경복궁과 덕수궁에 대한 2권이 아직 소식이 없어 아쉽다.


<인상깊은 구절>

217p

정조는 대보단 제사를 가장 열성적으로 치렀다. 재위 24년 동안 한 해도 친제를 거른 일이 없었고, 어떤 해는 무려 다섯 차례 이상 대보단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후 순조, 헌종, 철종도 대보단 제사는 왕실의 다른 제사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친제를 거행했다. 고종은 대보단 친제에서는 선왕들에 지지 않았다. 특히, 경복궁에 거처하는 동안 일부러 궁을 나서서 창덕궁 깊숙이 자리 잡은 대보단까지 와서 친제를 거행했다. ... 조선 국왕이 이미 멸망한 명나라 황제를 위한 제사를 치르는 것이 과연 꼭 필요한 일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현재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숙종 이후 조선의 역대 국왕에게 있어서 대보단 제사는 단순한 제사를 넘어서 조선 국왕의 어깨에 드리워졌다고 자부하는 유교적 통치 이념의 실천 덕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류>

65p

1778년 정조 2년 맏아들 문효세자의 빈을 맞기 위해 초간택을 할 때~

->1778년에는 문효세자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이 당시 초간택은 정조의 후궁을 맞기 위함이었다. 이 때 선발된 이가 홍국영의 여동생인 원빈 홍씨다.

123p

효명세자의 글 중에는 옥화당에서 누이동생 명원공주와 지낸 일을 언급한~

->명원공주가 아니라 명온공주다.

340p

순조 때는 효명세자 생모인 수빈 박씨 빈소도 이 곳에 모셨다.

->수빈 박씨는 순조의 생모이고, 효명세자는 순조의 정비 순원왕후의 아들이다.

377p

1816년(순조 16) 12월 15일, 혜경궁 홍씨가 경춘전에서 숨을 거두었다.

->혜경궁은 양력 1816년 1월 13일 혹은 음력 1815년 12월 15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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