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 규장각 보물로 살펴보는 조선시대 문화사
신병주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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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근무할 당시 썼던 책인 모양이다.

뻔한 이야기일까 봐 안 읽었던 책인데, 인터넷 검색하다가 궁금한 문장이 있어 읽게 됐다.

세종조의 성비와 공비에 대한 기사였는데 이 책을 봐도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고 인용만 됐을 뿐이라 아쉽다.

검색해 보니 성비는 태조의 후궁 원씨이고, 공비는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였다.

앞쪽의 그림이나 지도 등은 너무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고 있는 그대로의 설명 뿐이라 지루했고 뒷부분의 저작 소개가 흥미롭다.

지봉유설이나 반계수록 같은 책들은 이름만 들어봤지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실학자들이 근본적으로는 성리학자였으나 명분론, 의리론과는 다른 실제적 학문을 논한다는 점에서 좀더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03p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어를 써야 오랑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박제가의 발상. 북학 선구자의 이미지에 극단적인 중국 신봉자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기에 충분하다. 박제가는 북학에 대한 확신범처럼 일생을 살았다. 중국의 선진문화를 동경하면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보잘 것 없는' 조선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가 <북학의> 곳곳에 나타나 있다.

147p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이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와 크게 다른 것은 토지, 호구, 군사 항목이 없는 대신에 인물이나 제영의 비중을 늘린 점이다. 이는 성리학 이념이 조선 사회에 점차 확산되면서 이에 충실했던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널리 전파하고, 관리나 학자들이 쓴 시문들을 알려 문화 국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이 학문과 문화를 중시하는 사림파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면서 이러한 점이 더욱 강조되었다.

307p

지봉유설에서 이수광은 "우리나라 사람의 일로서 중국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부녀자의 수절, 천인의 장례와 제사, 맹인의 점치는 재주, 무사의 활 쏘는 재주"를 들었다. 

330p

대개 실학자와 성리학자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 실학자들 모두 출발전은 성리학이었다. 그 점에서 이들은 성리학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390p

그러나 중인들은 양반 중심의 신분사회를 극복하기보다는 양반을 닮으려는 안일한 입장에 머물렀다. 시문집이나 전기 편찬에 주력한 것은 이들의 한계였다. 결국 중인들은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서 역사적 기능을 하지는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라 할 중인 문화를 형성하는 데 그쳤다.


<오류>

29p

인헌왕후(효종의 할머니)의 친가인 능성부원군 댁에 보낸 것이다. 

->인헌왕후의 아버지 구사맹은 능성부원군이 아니라 능안부원군이다. 능성부원군은 구치관으로 세조 시대 영의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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