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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 (2disc) : 디지팩
유하 감독, 남궁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스포일러가 많아요)
조인성이 조폭으로 나온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영화
"마들렌" 과 "클래식" 등에서 연기 잘 하는 꽃미남으로 각인된 조인성의 연기 변신이 무척 궁금했다
이렇게 잘 생긴 조폭도 있던가?
장동건도 "친구" 에서 비열한 깡패로 변신에 성공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조그마한 얼굴에 큰 키가 완전히 모델인데 과연 진짜 깡패 역을 잘할 수 있을지 궁금했었다
재밌었던 건 영화에서도 "요즘 건달은 저렇게 생긴 놈들이 해야 한다" 는 대사였다
역시 감독도 깡패 하기엔 너무 귀공자처럼 잘 생긴 마스크를 의식했던 것일까?
그 대사 듣고 엄청 웃었다
생각해 보면 비트의 정우성은 주먹은 잘 쓰지만 진짜 건달은 아니었고, "우리형" 의 원빈도 그저 귀엽기만 하지 조인성처럼 비열하게 나오는 진짜 깡패는 아니었던 것 같다
코믹하기 짝이 없는 두사부일체의 정준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제일 깡패 같던 꽃미남 배우는 장동건이었던 것 같은데, 조인성도 장동건처럼 확실하게 연기 변신에 성공한 것 같다
그 조그만 머리, 그 큰 키, 쭉쭉뻗은 팔다리, 험악한 전라도 사투리 입에 달고 욕을 내뱉지만, 그래도 너무 멋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역시 생긴 것도 타고 나는 것인지...
마지막 반전은 정말 충격이었다
병두가 망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또 밑의 부하에게 당할 줄은 몰랐다
사실 난 그 종수라는 부하를 인상깊게 봤기 때문에 배신하는 역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만약 병두가 친구 민호를 먼저 쳤다면?
아니면 종수가 민호를 건드리지 않고 주의주는 선에서 끝났다면?
병두가 이야기 하는 선에서 끝났다면 민호 역시 형사에게 고발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종수가 따로 끌고가 흙 속에 묻는 시늉까지 했으니 생명의 위협을 느낀 민호로써는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병두가 울면서 털어 놓은 이야기를 영화 소재로 삼은 민호의 행위는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 소재로 안 썼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털어 놓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비밀은 지키기 어려운 것일까?
그렇게 마음이 약한 병두는 결국 스스로 화를 자초한 꼴이 되버렸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거물이 된 회장 같은 사람은 아마도 권모술수의 대가이고 그 세계에서 가장 노련한 사람일 것이다
"달콤한 인생" 의 김영철처럼 천호진 역시 냉정한 보스 역을 잘 소화해 낸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천호진이 병두에게 박검사 살해를 넌지시 의뢰할 때, 죽을 때까지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역시 평생 동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엣가시처럼 보이던 현직 검사를 목숨 걸고 해치워 준 병두를 정말 믿어 봤더라면 어땠을까?
왜 천호진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병두를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 버린 것일까?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 역시 뒤통수가 두렵지 않을까?
아니면 천호진은 목숨을 나눌만한 동지가 따로 있었던 걸까?
결국 병두는 천호진에게 있어 그저 귀찮은 인물 처리해 주는 해결사에 불과했던 것일까?
"약속" 에 나왔던 공상두와 엄기탁 같은 의리 내지는 우정은 정말 드문 일일까?
건달 하면 의리고, 두목을 위해 대신 사형을 당하는 엄기탁 같은 사람이 바로 의리의 사나이, 건달이 아닌가?
병두와 종수의 관계, 또는 회장과 병두의 관계가 "약속" 의 공상두, 엄기탁의 관계가 되기엔 쌓은 세월이 부족했던 것일까?
약간 뜬금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다 보면 끝이 없게 된다
그러니 아예 서로 믿어버리면 어떨까?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서로에게 손해가 되는 게임이니, 처음부터 진심으로 대해 버리는 거다
갑자기 죄수의 딜레마가 생각난다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나왔나 보다
영화 속에 나온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대면 저마다의 서글픈 사연이 있을 것이다
회장에게 카메라를 대면, 그 자리에 오를 때까지 겪어야 했던 무수한 배신들과 치열한 자리싸움이 떠오를 것이고, 또 그 사이에 겪었을 고통과 서러움과 비참함, 그리고 죄책감과 분노 등이 아우러졌을 것이다
어쩌면 영화 속 캐릭터 중 산전수전을 가장 많이 겪었을 인물이기도 하다
어쨌든 살아 남았으니까 말이다
병두가 깨부수던 철거민들에게 카메라를 대면, 역시나 깡패들에게 살 터전을 뺏기고 쫓겨가는 기막힌 사연이 줄줄이 나올 것이다
병두에게 죽은 노상철은 또 어떤가?
하필이면 곱게 키운 여동생 시집보내는 날 예식장의 화장실에서 칼을 맞고 죽었으니 사실은 영화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 여동생이 오빠 시신을 보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서러울까?
병두를 2인자로 그렸지만, 그 밑에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얼굴 들이미는 부하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건달 세계에 발을 디딘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써 애환이 말도 못할 것이다
끽 소리 못하고 살해당한 박검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검사가 어느날 갑자기 실종됐으니, 그 가족들의 비통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일상이 지루하고 뻔한 것 같지만, 카메라를 비춰 보면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 나름대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병두가 민호에게 건달 생활의 애환을 말하자, 민호가 이렇게 말한다
편한 인생이 어딨냐, 나도 감독 되겠다고 3년째 죽치고 있다...
병두의 삶이 죽음을 늘 옆게 끼고 산다는 점에서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민호의 말처럼 하나하나 들춰 보면 남루하고 서럽지 않은 삶이 없는 것 같다
우리 모두 구차하고, 남에게 배신을 당하고 또 괴로워 하면서 배신을 때리고...
그래서 넋두리는 늘어 놓으면 한이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