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로의 길 - 유럽의 교훈 석학인문강좌 69
박지향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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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페이지 정도의 짧은 책이지만 내용이 아주 알차다.

근대화를 곧 영국으로 상정하여 영국 예찬론이면 어쩌나 우려했는데 기우였다.

인문학 강좌라는 일반 시민 대상의 강연집이라 그런지 이해도 쉽고 핵심만 잘 요약해서 전달력이 아주 높다.

이 시리즈가 너무 마음에 들어 가급적 많이 읽어 보고 싶다.

보통 자유와 민주주의를 같이 얘기하는데, 책에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립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한다.

근대화의 시작을 영국의 산업혁명과 의회민주주의로 본다면,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바로 사유재산권의 확립이라고 한다.

사극을 보면 어느날 갑자기 왕이 신하를 잡아가고 재산을 몰수해 버린다.

간단히 말해 영국에서는 사적 재산권이 법으로 보호되어 정부에 의한 갑작스러운 몰수가 어려웠던 것이다.

서양사를 읽으면서 왜 영국 국왕들은 의회를 열어 세금 인상을 요구했는지 의아했다.

왕의 권한으로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반드시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 하나?

책에서는 윌리엄의 정복 이후 영국에서 의회의 전통이 강해졌고, 의회에서 왕에게 재정 지출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권리가 이양되어 갔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유재산권의 확고한 인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사유재산이 완벽하게 보호되어야만 비로소 자유로운 인간이 가능하고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여 민주주의, 즉 권력의 분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을 부정한 공산주의가 결국은 일당독재로 변질되고, 심지어 3대에 걸친 세습왕조가 21세기에 구현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재산권이 자유민주주의의 필요 요소임은 분명하다.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이 제국주의 식민지에 대한 평가다.

저자는 영국의 예를 들어 식민지배가 반드시 일방적인 착취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생산력의 향상과 인구 증가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인도 같은 경우는 철도와 근대법, 영어 공용어 사용 등을 통해 오히려 하나의 거대한 민족이 되어 결국은 영국을 쫓아내게 된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로 눈을 돌리면 우리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을 듯 하다.

민족주의적인 반감을 예상해서인지 조심스럽게 지적하기는 하지만, 일제 치하에서 근대적 유산이 확립되었고 노골적인 친일파 이외에도 다수의 평범한 협력자들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감정과 현실은 확실히 다른 듯 하다.

근대화의 성과와는 별개로, 식민지라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 2등 국민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98P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해 개인의 개별성과 독자적 생각을 매우 중요시한다. 밀은 특히 개별성의 개발이야말로 자기 발전의 핵심 요소로서 인간됨과 진정한 행복의 필요조건이라고 확신하였다. 개성의 계발만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천재는 극소수이며 그들이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천재는 자유의 분위기에서만 숨 쉴 수 있다. 밀이 판단하기에 개별성의 발전을 가장 저해하는 것은 억압적인 정치권력이 아니라 사회적 압제인데, 그것은 다수의 횡포에 의한 법적, 물리적 강제일 수 있고 혹은 사회적 관습이나 공공여론일 수 있다. 군중은 자신의 사상과 다른 사상을 용납하지 않으며 대화와 토론이 아닌 힘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사회에는 관용이 필요하다. 밀은 오직 생각들이 자유롭게 소통될 수 있는 곳에서만 '좋은 생각이 나쁜 생각을 대체'하는 가운데 무지가 사라지고 진리가 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민주주의와 '다수가 항상 옳다'는 아둔한 획일주의가 확산되면서 관용이 위협을 받게됨을 우려했고, '마치 단 한사람의 독재가 인류 전체의 입을 막을 수 없듯이 인류 전체가 단 한 사람의 이견을 막을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였다. ... 복지국가의 기저에 깔린 정서는 이 장에서 다룬 평등에의 욕구를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개념이 완전히 다른 개념, 즉 모든 사람이 동등한 출발과 동일한 전망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개념으로 바뀌고, 기회의 평등을 넘어 보상과 분배의 평등을 주장하며, 정부가 그 역할을 행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03p

"현명한 법의 공정한 집행보다 더 강력한 문명화의 도구는 없다." 실제로 식민 지배가 남긴 근대적 사법 체제는 전통 사회 엘리트가 누리던 초법적인 권위를 헌법상의 통제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이것은 식민지 사회의 변화에 대한히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219p

식민주의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체제였고 피지배민들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었으며 자신의 능력을 회의하게 만드는 중대한 누를 끼쳤다. 이 점에서 식민주의는 강하게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친일파로 간주되는 윤치호조차 일제의 민족 차별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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