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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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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명관의 소설을 읽었다. 우연히 <고래>를 사놓았지만 묵혀두었고, 이 책을 빌려 읽은 사람이 재미있다고 했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다른 책도 역시 사놓았지만 책장 한 곳에 그냥 조용히 모셔만 두고 있다. 책장에서 <고래>를 볼 때면 언제 시간내서 읽어야지 생각하지만 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 바로 옆에 쌓아둔 책들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소설의 경우 제목을 읽고 소설이란 생각조차 못했다. 천명관이란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한 번 더 유심히 쳐다보았겠지만 제목이 노동소설의 분위기가 풍겨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읽어야 할 것은 어떻게든 오는 모양이다.

 

모두 여덟 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문학잡지에 실린 글들을 모았다. 요즘 단편집에서 발표지면이 표시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는데 이 책은 그 정보가 실려있다. 반가웠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이런 정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책을 읽다보면 어디에, 언제 실린 글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책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발표 순서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가장 최근작인 <핑크>가 2014년 6월호 문학사상에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한 문장이 그의 이력에서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시도를 위한 시발점인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의 단순한 착각과 무지와 기대일 수 있지만.

 

이 단편집에서 단편소설을 한 편씩 읽을 때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단어가 있다. ‘파국’이다. 특히 표제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와 <전원교향곡>을 읽을 때 더 그랬다. 마지막에 그들이 선택한 삶이 이성대신 감정의 분출로 이어지면서 내일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가다로 하루 일당을 벌어먹고, 때린 아내로부터 이혼 당하고, 아이들과 대화조차 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술 한 잔의 만용이 만들어낸 40만원의 빚 독촉은 냉동칠면조를 흉기처럼 휘두르게 만든다. 훔친 벤츠트럭을 타고 달리는 그의 모습은 제목 그대로다. 반면에 귀촌의 환상을 마구 파괴하는 <전원교향곡>의 마지막 장면은 파산과 함께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자 희망마저 빼앗아간 것에 대한 우발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외형은 복수지만 실제는 자기파괴다.

 

비루한 가장의 죽음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봄, 사자의 서>가 약간 밋밋했다면 <동백꽃>은 조그만 섬마을에서 벌어지는 치정싸움이 웃기면서도 애잔하다. <왕들의 무덤>은 중년 여작가의 거짓과 허위와 허세 뒤에 감쳐진 메마른 감성이 과거의 사건 속에 조용히 흘러나왔고, 불면에 시달리는 한 편집자의 중의적인 마무리가 인상적인 <파충류의 밤>은 나 자신이 가진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산산조각낸다. <우이동의 봄>은 90년대 초반 힘겹게 산 한 청년의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앞날처럼 꽃비가 내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핑크>에서는 대리기사의 불편한 진실이 마지막 한 문장으로 엮여지면서 섬뜩하게 만든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엄숙하지 않은 발랄한 문장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각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간결하면서도 잘 짠 구성으로 하나씩 풀어내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시나리오 작가의 이력이 힘을 발휘한 것일까?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머물고 살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켜 삶의 다른 한 면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그냥 스쳐지나갔거나 혹은 스쳐지나간 나의 모습들이다. 파국으로 달려가든 삶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든 속내를 감추든 그들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다. 나 또한 그렇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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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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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느낌의 경찰소설이 나왔다. 이전까지 경찰소설이 현장에서 활약하는 경찰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경찰이 되기 위한 교육생들이 그 대상이다. 제목도 한자로 표기되지 않으면 학교의 교장과 교감 중 한 명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리고 강렬한 표지가 압권이다. 처음에는 제목과 연기가 눈에 들어왔는데 조금 더 집중하니 경찰과 총알이 보인다. 예전에 날아가는 총알을 처음 묘사했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아마 새로운 경찰소설이 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경찰학교가 배경이기에 몇 명의 학생들이 등장하고 그중 한 명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착각이다. 제98기 경찰학교 단기과정에 들어온 여섯 명이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이들을 한 명의 경찰로 성장하고 교육과정을 마무리하게 도와주는 멋진 담임 교관으로 가자마 기미치카가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가자마 교관이다. 그가 없다면 여섯 명의 경찰 교육생은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거나 퇴학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관찰력과 분석력과 진심어린 관심은 약간 평범할 수 있는 경찰학교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불심검문에서 시작해 배수로 끝나는 이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같은 동기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많은 일들이 생긴다. 어떤 순간에는 배려가 동정과 업신여김으로 다가오고, 오해가 빚어낸 협박은 오히려 살인 위협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저질렀던 친했던 동기에 대한 한 번의 실수는 자신의 바람을 빼앗아가고, 경찰학교도 역시 사회부패의 어둠이 깃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에 빠져 공포에 휩싸이고, 의욕만 가득하여 긴장감만 고조되는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교관이 있다. 바로 가자마다. 각각의 이야기에 짧게 등장하지만 진짜 경찰이 될 교육생을 발견하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작가는 여섯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켰지만 그들의 재능을 다르게 설정하여 경찰의 역할에 대해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누군가는 불심검문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고, 누구는 조사와 고문에, 아니면 경찰오토바이나 경찰차 운전에 뛰어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냥 경찰로만 봐오던 사람들이 맡은 바 역할에 따라 어떤 활약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중에서 자주 마주치는 파출소 경찰도 있고, 운전할 때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경찰차나 오토바이 경찰도 있다. 가끔 길에서 만나게 되는 불심검문 경찰도 역시. 흔히 짭새라고 부른 경찰도 물론 있다. 실제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경찰들이 바로 이들이다. 정치에 휘둘려 공권력을 마구 뿜어내는 경찰이 아니다.

 

각각의 캐릭터를 잘 살려내었고, 각 이야기에 미스터리를 집어넣어 끝까지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미 가자마 교관이 주인공인 소설이 연재되고 있다니 반갑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보고 싶은 것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한 여섯 명의 주인공 중 한두 명을 주연으로 발탁하고, 이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 이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각각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작 시리즈는 어떨까? 그리고 경찰이 되는 것이 실제 이렇게 힘들다면 지금까지 내가 본 경찰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대로 된 경찰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우리들에게 그들은 멋진 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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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 소실형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가지오 신지 지음, 안소현 옮김 / 살림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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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의문이 먼저였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이란 문구가 특히 그렇다. 그리고 뒤에 소실형이란 단어가 붙어 있다.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자를 보지 않았기에 형벌의 종류라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왕따와 같은 사회적인 무시로 인한 징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형벌은 로버트 실버버그의 소설 속 무시형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그 소설을 읽지 않아 어떤 식인지 모르지만 놀라운 착상이다. 여기에 작가는 한 가지 덧붙인다. 배니싱 링이란 특수 금속을 목에 채운 것이다.

 

처음 이 링의 설명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것은 손오공의 머리띠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채운 고리 말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번에도 이것을 더 발전시킨다. 이 링을 목에 걸면 여기서 나오는 전파 때문에 사람들이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옆에 존재하지만 알지 못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럼 바로 옆에 붙어있으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링에 몇 가지 금지사항을 집어넣었다. 1미터 접근 금지, 편지나 자살용 도구 사용 금지 등의 다양한 기능이다. 간단한 작동 원리는 생각에 링이 반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목을 조이면서 다음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든다.

 

SF적 발상에서 시작한 소설이다 보니 소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일들이 곳곳에 나올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으면 편할 것이란 생각을 막기 위한 설명들이 이어지고, 보이지 않으면서 생길 수 있는 위험도 같이 보여주면서 이 형벌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조금씩 알려준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이야기의 틀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아이디어에 안주했다면 조금은 지루했을 것이다. 주인공인 아사미 가쓰노리가 왜 처벌을 받고, 어떤 마음에서 이런 형벌을 선택했는지, 그의 과거는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몇 가지 사건들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이 아이디어가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들고, 다음 전개를 예상하게 만들면서 가독성을 높인다. 뒤로 가면서 갑작스럽게 튀는 전개로 조금 아쉬웠지만.

 

잘 만들어놓은 이 소설도 몇 가지 의문이 있다. 가장 먼저 드는 것은 가쓰노리가 왜 그렇게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한 것일까 하는 것이다. 마성의 여자 나카하라 아야나에 완전히 반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도 아니고, 유전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소실형이란 형벌이 전혀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과 이 실험에 대한 조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실형을 받은 죄수가 길을 가다 차에 치여 죽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 이것이 사회적 논쟁으로 발전하지 않는 것은 너무 이야기를 축소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반면에 존재하나 인식하지 못하는 그의 존재를 두고 사람들이 귀신 같이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소재의 빛나는 상상력이 사실 이 소설의 반을 차지한다. 그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은 그 다음의 문제다. 작가는 이것들을 과도하게 벌이지 않으면서 빠른 전개를 펼친다.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뒤집으면서 문제를 만들고, 이 문제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면서 몰입도를 높인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투명인간이 되었지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투명인간의 위력을 그는 보여주지 못한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배니싱 링이 조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다가갈 수도, 말을 걸 수도, 편지를 보낼 수도 없다보니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살도 불가능하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소실형이 실제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형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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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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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에밀 졸라의 소설을 두 권 읽었다. <목로주점>과 <나나>로 기억한다. 이 두 작품은 단지 읽었을 뿐이다. 그 당시 그 어떤 감흥도 충격도 큰 재미도 나에게 주지 못했다. 읽었던 이유는 바로 세계문학에 포함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새롭게 번역되어 나온 <제르미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 포스터를 표지로 한 구판 <제르미날>을 사놓고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산 것도 아마 에밀 졸라라는 작가 이름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지금 이전까지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모든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고, 루공마카르 총서에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다. 내가 놓친 것들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목로주점> 속 주인공의 아들 에티엔이다. 그는 불황기에 일을 찾아 이동하던 중 몽수 지역 탄광촌까지 오게 된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작업반장을 폭행한 후 회사에서 잘렸다. 살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한다. 불황기에 일자리는 귀하다. 탄광촌도 감산을 하고, 해고를 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그가 르 보뢰 탄광을 방문했을 당시 운 좋게 한 명의 탄차운반부가 죽어 일자리가 생긴다. 하루 일당이라도 벌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면서 지옥 같은 탄광 갱도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마외 가족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에티엔이 외부에서 탄광촌으로 유입된 인물이라면 마외 가족은 태생적인 광부 가족이다. 할아버지 이전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아이들까지 모두 이 탄광촌에서 나서 자라고 일한다. 본모르는 지금 당장 연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일했고, 마외는 탄맥 중 하나를 입찰로 받아서 실적으로 일당을 받는다. 그의 아내 라 마외드는 아이를 일곱이나 낳아서 집에 거주할 수밖에 없다. 큰 아들 자샤리와 큰 딸 카트린과 둘째 아들 장랭은 탄광에서 일하는데 이들이 번 돈이 없다면 이 가족은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없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자본가들이 점점 그들의 일당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배경 중 하나인 파업도 바로 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놀라운 것은 자본가들이 어느 정도 파업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에밀 졸라는 단순히 에티엔과 마외 가족뿐만 아니라 이 탄광 지역과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단순히 등장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조상이 탄광회사 지분을 산 덕분에 편하게 살고 있는 그레구아르 가족이나 탄광회사 사장인 엔보 씨, 카트린의 첫남자이자 연인인 샤발, 가게를 운영하면서 외상을 주고 그 대가로 여자들과 자는 메그라, 탄광에서 해고당한 후 주점을 하는 라스뇌르, 바쿠닌을 숭배하는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수바린, 그 외 240번 탄광촌의 수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다양한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움직이면서 소설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초반 탄광에 대한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지난 후 몰입도가 높아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인물들 때문이다.

 

에티엔이 탄광에 머물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카트린이다. 처음 그는 그녀를 남자로 생각했다. 카트린도 초보인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일을 가르치고 도와준다. 이때만 해도 이 둘의 로맨스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대 하층민의 삶은 우리의 예상을 뒤집는다. 카트린의 노린 샤발이 계속 그녀를 집적이다가 어느 날 밤 그녀를 덮친다.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인 그녀가 성적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한 번의 성관계는 이 둘을 연인으로 묶어준다. 한 번 정도 에티엔에게도 그녀에게 키스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놓쳤다. 이 선택이 서로 바라지만 둘이 함께 할 수 없게 만든다. 이 둘의 간절한 바람은 소설 끝까지 이어지면서 이 잿빛 소설에 한 줄기 따스함을 전해준다.

 

작가가 보여주는 탄광촌의 삶은 아주 힘들고 고되다. 일할 수 있는 나이만 되면 아이들도 탄광으로 가서 일한다. 그들도 하나의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성 관계가 벌어지고, 임신도 빈번하다. 아들을 가진 엄마는 아들이 결혼해서 집에 돈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 같아 걱정한다. 딸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돈이 필요하다. 회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고,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은 이들에게 생존을 제외한 어떤 것도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주지 않는다. 이때 나타난 에티엔은 혼자 살아 돈에 여유가 있고, 사회과학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다. 그의 학습이 깊어질 때 탄광촌의 모순과 부조리가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도 그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르 보뢰 탄광은 의도적으로 파업을 유도한다. 공제조합이 만들어졌지만 파업을 위한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 파업을 할 때만 해도 그들 중 누구도 이것이 이렇게 길어질지 생각하지 못했다. 기금이 바닥나고, 다른 곳의 지원도 끊겼을 때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 빵을 사는 것이다. 그들이 거대한 물결로 움직일 때 구호가 ‘빵을 달라!’로 바뀐 것은 바로 그 절박감의 표출이다. 이 구호에 대해 아내의 외도로 괴로워하는 엔보 씨가 보인 반응은 배부른 부르조아에게 당연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연상되었다. 그 외 다른 자산가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보는 현실은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파업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약했다. 어느 부분에서는 더 강했다. 약한 것은 헌병과 경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동의 제약이 심했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강한 충돌이나 파괴가 없었다는 것이다. 더 강한 것은 예상을 넘어선 기간 동안 파업을 이어가면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의 싸움은 늘 자본가 편이다. 하루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버텨줘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돈이 없다. 돈이 없으면 굶주릴 수밖에 없다. 배고픔은 의지를 나약하게 만든다. 이 순간에도 그들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 그 당시 파업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약간은 의외다. 그것은 프랑스 대혁명의 강한 인상 때문이다.

 

에밀 졸라는 사실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이 모든 상황을 적어나간다. 그의 치밀한 관찰은 놀라운 묘사로 이어졌고, 감정을 극도로 절제한 문장들은 현실을 가장 멋지게 그려내었다. 에티엔이 허영심에 조금씩 물들어가는 과정이나 그가 절제되지 못한 군중의 흐름 속에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나 군중들이 공권력 앞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등의 이 모든 것들이 각 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묘사 속에서 꽃을 피운다. 탄광 노동자들의 열망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악에 바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극렬하게 움직일 때 인간들의 가장 순수한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다양한 위치의 다양한 의견이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대단한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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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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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 가는 길>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른다. 나에게는 이런 소설들이 몇 권 있다. 내용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만 재미있게 읽은 책들 말이다. 이후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진술>에 대한 극찬을 읽고 사서 읽고 난 후 이전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몰입도와 재미와 반전까지 펼쳐지는 그 소설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해 기억하는 최고의 소설이다. 그리고 2년 전에 나온 <손님>도 상당히 좋았다. 경마장 시리즈를 다 읽지는 않았지만 몇 권 읽으면서 재미와 이해의 간극을 크게 경험한 것과 비교해 이 두 작품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럼 이번 소설은 어떤가?

 

누나라는 제목과 함께 기대한 것은 이전과 비슷한 구성의 소설이었다. 그런데 얼마 읽지 않아서 이전과 다른 소설임을 깨닫게 되었다. 열두 살 소년이 화자로 등장해서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귀신과 전설과 환상 등을 섞어 사슬처럼 이야기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텔레비전도, 아니 라디오도 없던 시절을 배경으로 열두 살 소년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 아주 잘 그려내었다. 토속적인 구어도 좋았지만 어떻게 포장하면 한 소년의 성장소설일 수도 있는데 ‘씹’과 같은 노골적인 표현을 적나라하게 사용해 놀라게 했다. 이 단어가 한두 번 정도 나오면 엄숙한 문단의 분위기가 반영되었구나 생각할 텐데 끝까지 나오면서 더 놀랐다. 아마 나의 놀람은 다른 소설들에서 이렇게 열두 살 소년이 이 단어를 지속적으로 노골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자지를 본 여자의 보지를 봐서 입을 다물게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장면들에서 전혀 각색되지 않은 노골적 표현들이 등장하고, 귀신과 뱀을 두려워하는 소년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용기를 내는 장면은 풋풋한 첫사랑의 분위기가 풍긴다. 약간 미친 것 같다는 누나의 사연이나 까마귀 눈알을 먹어 귀신을 본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괴담 같다. 만오천 년을 산 나무와 결혼한 이야기나 동굴에 들어가서 난쟁이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전체 분위기 속에서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전설과 설화가 너무 당연한 듯 소년의 입을 통해 나올 때 마치 그것들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책의 재미난 구성 중 하나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체 이야기가 완전히 독립된 것도 아니다. 어느 것은 갑자기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사슬은 단단하게 이어져 있고, 열두 살 소년의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상상력과 충격과 아픔으로 가득한지 잘 보여준다. 열두 살 소년의 이해 안에서 보는 세상과 실제 세상과의 차이를 볼 때면 순수함을 상실한 나의 모습과 아직은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열두 살의 현실이 먼저 다가온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될 때면 나의 그 시절이 살짝 떠오른다. 아마 나도 그랬지 않았을까 하고.

 

정확한 연도는 나오지 않지만 70년 대 초로 예상되는 그 시절 삶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 풍요보다 결핍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펼쳐지는 열두 살 소년의 모험과 사랑은 이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년의 입을 통해, 생각을 통해 나오는 단어와 이야기들은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란 생각에서 쉽게 내뱉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런 착각의 틈새를 잘 포착하고, 불분명한 이야기 때문에 오해와 환상이 덧붙여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속에도 삶이 들어있다. 작가의 이전 작품과 조금 색다른 느낌이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이 문득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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