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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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2022년 신작이다. 아직 읽지 않은 기타기타 시리즈 중 신작이다.

현재 기타기타 시리즈는 두 권 나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전편을 읽지 않아 의문이 생기는 대목도 있고, 살짝 풀어놓은 이야기에 혹한 부분도 있다.

문고상 기타이치의 활약과 정체가 불명확한 기타지의 존재는 책을 다 덮은 지금 여운으로 남았다.

일본 시대극이다 보니 그 시대의 의상과 문화와 계급 등에 대한 설명이나 주석이 상당히 많다.

덕분에 속도를 내다 잠시 늦추고, 다시 속도를 올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중반 이후는 나름 요령이 생겨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재밌다.


모두 3화로 구성되어 있다. 요 앞에 읽은 <인내상자> 덕분에 세 편의 중편 소설집으로 생각했다.

1화 ‘아기를 부르는 그림’을 다 읽을 때까지도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2화와 3화가 이어지면 이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생각하지 못한 구성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문고상 기타이치다. 소설을 읽으면 문고상이 어떤 직업인지 잘 몰랐다.

편집자 후기를 읽은 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방대한 미야베 월드에 대한 편집자의 해설을 보면서 잠시 고개를 끄덕인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고, 조금 정리해서 언젠가 도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이지만 전체적으로 이어진다.

이전 시리즈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번 편집자 후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번 이야기는 한 편의 장편 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물론 1화만 놓고 보면 독립적인 단편 소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체 이야기가 이어진다.

기타이치라는 평범한 인물을 내세워 그 시대의 풍경과 삶 등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다른 시대극에서 큰 활약을 한 모양이다.

편집자 후기만 거의 40여쪽에 달해 그 방대한 정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이 시리즈들을 읽다 보면 이 후기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아기를 부르는 그림>은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보선 그림과 등을 돌린 변재천 님이 엮이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상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림이 아기를 부른다고 했다가 그림이 아기의 죽음을 데리고 온다고 한 부분은 감정적이다.

이성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가 사람이기에 상황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기타이치가 임신을 불러오는 그림으로 문고본을 만들려고 했을 때 반대한 이유도 이것이다.

임신을 한 여성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기가 죽으면 복이 화로 변한다.

기타지가 주은 그림과 영험하다고 한 그림이 대비된다. 인간의 욕망이 다른 해석을 불러온다.

마지막에 진상에 도달한 결론은 씁쓸하다.


2화와 3화는 바로 이어져 있다. 2화의 소제목이 <짱구머리 속에 든 것>이다.

짱구가 다른 시리즈에 등장했다고 한다. 편집자 후기에 의하면 기타기타 시리즈에서도 한몫 할 것 같다.

이번 사건은 모모이 도시락 가게의 일가족이 독으로 죽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쉽게 판단하면 일가족 자살이지만 검시관 구리야마에 의하면 타살의 가능성이 더 높다.

작가는 법의학 상식을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몇몇 묘사가 닮았다.

사건 현장에 다른 신발을 신게 하거나 머리를 묶거나 족흔을 기록하거나 등.

누가 먼저 죽었는지도 밝혀 내는데 이 부분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물론 나중에 어떤 식으로 사람을 독살하게 되었는지 기타지의 가설이 나오는데 섬뜩하다.


이번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구시대의 범죄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물리적 증거나 상황에 대한 수사보다 고문에 의한 자백을 우선하는 사회의 문제를 직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자백이 아니라 ‘고문’에 의한 자백이다.

당연히 그 자백은 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증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한다.

모모이 가족 살인 사건도 유력한 용의자가 잡은 후 고문했고, 자백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잔혹한 고문 때문에 죽었다. 법적으로는 사건이 해결되었다.

이런 사건을 누군가가 다시 파헤친다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묘한 문제들이 나온다.

결국 진실은 기타이치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관찰로 단서를 찾아낸다.

언제나처럼 일본 시대극은 초반 진입이 어렵다. 중반 이후는 역시 미미 여사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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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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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 15권이다.

이 시리즈에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읽은 것은 단 한 권 <아이 틴더 유>뿐이다.

단 한 권 읽은 것 때문에 이 시리즈가 경장편만 다룬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제대로 표지도 보지 않았다.

이번 책은 세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다룬다는 소개 글이었다.

이전에 나온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판타지 설정이 없는 것 같았는데 이것도 역시 오판이었다.

착각과 오판으로 시작했지만 소설은 잔잔하지만 재밌는 설정으로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표제작 <모든 것들의 세계>는 처음 읽으면서 빵 냄새 가득한 카페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저승차사가 나타난다.

이승에 있는 부모가 영혼 결혼식을 시켰다는 것이다. 배우자는 게이인 천주안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귀신은 고양미다. 먼저 저승으로 온 선배다.

영혼 남편 천주안에게 사후 세계를 알려준다. 아! 영혼 결혼식을 올린 두 귀신이 이혼할 수도 있다.

단편 속에 자세한 이야기를 요약하고, 두 사람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나온다.

양미는 게임을 하다가 옆집에 불 난 것도 몰라서 죽었고, 천주안은 부모의 결혼 강요에 홧김에 자살했다.

둘 모두 황당하다. 그리고 영혼이 어떻게 소멸하는지 알려준다. 이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

부모나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면 소멸한다. 양미가 PC방에 자주 가는 이유다.


<마음소라>도 기발한 발상을 보여준다. 처음 대충 봤을 때 ‘마음소리’인 줄 알았다.

이 마음소라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평생 하나 만들어지고, 마음소라의 주인이 진심을 담아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소라 속 마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마음소라를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알 수 있다.

양고미에게 도일이 이 마음소라를 주고 사랑을 고백했을 때 얼마나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 있었을까?

불타는 청춘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둘의 사랑은 진실했고, 그 기한은 다른 청춘과 별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마음소라의 소리를 통해 감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서로 헤어진 후 이 마음소라를 찾은 것은 도일의 아내 천양희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듣지 못하지만 달라고 한 양희, 그 이면에 있는 감정은 또 어떤가.

간결한 이야기 이면에 담긴 씁쓸함과 아련함 등이 마음 한곳에 파고든다.


<페어리 코인>은 놀라운 부동산 사기 수법 하나를 먼저 보여준다.

확정일자를 하루 지난 후 받았는데 그 사이에 매매를 한 후 대출을 받았다.

사고 팔고 중계한 모두가 짠 사기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는 말에 아득해진다.

재밌는 것은 사기 당한 이 부부에게 요정이 있다는 것이다. 화자인 나의 오랜 친구다.

아주 오래 전 할머니의 할머니가 산에서 발견하고 딸들에게 물려준 요정이다.

요정이니 당연히 이것을 팔라는 요청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팔지 않고 함께했다.

그런데 남편 우진의 친구 현철이 페어리 코인을 만들어 사기를 치자고 한다.

자신들이 당한 사기에 대한 복수다. 모든 것은 현철이 준비하고 요정만 데리고 무대에 나오면 된다.

수많은 코인 사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간결하게 요약해서 보여준다.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에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기고, 과거 기억 하나가 우진에게 떠오른다. 여운을 남긴다.


세 편 모두 판타지 설정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 설정 뒤에 담기 이야기는 현실의 우리 삶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기억하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당한 것에 좌절하고, 복수에 힘을 낸다.

그리고 앞의 두 편의 주인공은 애너그럼으로 이름을 만들었다. 고양미, 양고미.

에세이 <이유리위원회 산하 의문규명위원회의 어떤 오래된 어젠다에 관하여>도 한 편의 소설 같다.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설정을 가져온 듯한 도입부가 시선을 끈다.

몇몇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작가의 오래된 어젠다를 보면서 “나도 그런 부분이 있지” 말한다.

아주 짧은 단편집이지만 끝까지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이 작가의 데뷔작과 앤솔로지 참여작들을 한 번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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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골 - 축구 역사를 빛낸
Aczel 지음, 서지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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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카투니스트 Aczel이 축구 역사상 가장 멋진 최고의 골 장면을 일러스트로 그리고 해설한 책이다.

여덟 장으로 나누어 최고의 골부터 최고로 이상한 골까지 230개의 골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 골들이 선택되었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내가 못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으로 표기된 골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멋지게 그려내었다.

일러스트이다 보니 내가 보지 못한 골들 대부분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몇몇 장면은 인터넷 검색으로 그 대단한 골을 확인해야 했다. 대단한 골들이다.


누구나 꼽는 최고 중의 최고 골은 마라도나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영국과의 8강전 골이다.

최고의 골 장면을 꼽을 때면 항상 나온다. 왜 마라도나가 최고의 선수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이 골과 함께 항상 따라다니는 골이 있다. 바로 ‘신의 손’이라 불리는 골이다.

저자는 이 골을 최고로 이상한 골로 꼽았다. 만약 올해 마라도나가 카타르 월드컵에 뛰었다면 노 골이다.

판정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보다 심판의 권위가 우선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업사이드 판정 때문에 첫 경기를 패한 아르헨티나 팀이 떠오른다.


그 다음 순서로 즐라탄의 태권도 슛이다. 30미터 오버헤드킥이다. 이 거리에서 오버헤드킥이 되다니.

3위로 메시가 바로셀로나 시절에 넣었던 마라도나와 닮은 꼴 골이다. 왜 메시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4위로 카를루스의 바나나킥이다. UFO 킥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이 슛이 아주 자주 방송에 나왔다.

5위는 지단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넣은 발리 킥이다. 기술적으로 본다면 이 슛보다 더 멋진 골이 많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저자가 게임의 중요성, 리그의 수준, 골의 대단함 등을 감안해서 정한 것 같다.

일반인의 눈으로 봤을 때 더 대단한 골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후에 나오는 골들은 앞의 네 골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것과 비교해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저자는 단순히 골 순간만, 그러니까 어시스트 순간만 다루지 않는다.

그 골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다 보여준다. 선수들의 움직임과 골의 궤적, 수비수 등의 위치 등.

멋진 패스를 발리 슛으로 마무리하거나 오버헤드킥으로 넣거나 UFO처럼 날아가 들어간다.

지루의 전갈 킥은 또 다른 모습의 슛이다. 이후 이런 슛은 적지 않게 나온다.

심지어 골키퍼가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기도 한다. 날아서 발 뒤로 골을 넣는다. 최고의 골키퍼 골 참조.

골키퍼 자책골 중 하나는 영상으로 보면서 장난 아닌가 했던 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진짜다.

황당한 자책골들은 또 다른 기억들을 불러온다. 영상으로 찍힌 순간 그 골들은 영원히 박제된다.


내가 생중계로 바로 본 골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축구를 특별히 찾아볼 정도의 팬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때 손흥민의 경기는 열심히 찾아봤다. 그때 푸스카스상을 받은 골을 바로 봤다. 대단했다.

골키퍼의 선방으로 몇 골을 놓친 후 폭풍의 질주 후 넣은 골이다.

아마 나처럼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들의 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끔 채널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프리미어리그 골 장면만 모아 보여주는 방송이 나온다.

이때 넋을 잃고 볼 때가 많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런 경험을 그림으로, 상상으로 해 본 책이다.

몇 골은 영상이 없지만 거의 대부분 영상이 남아 있어 찾아볼 수 있다. 시간 나면 몇 골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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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사냥
차인표 지음 / 해결책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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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인표의 세 번째 출간 소설이다. 집 어딘가에 그의 이전 소설이 꽂혀 있을 것이다.

이전에 좋은 평을 받은 것을 보고 산 것 같은데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소설을 출간한 연예인이 몇 명 있는데 대부분 사 놓고 묵혀 두고 있다. 나쁜 습관이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 유일한 책이 가수 이적의 <지문 사냥꾼>이다. 나름 재밌게 읽었었다.

그 이외 소설은 솔직히 언제 읽을 지 모르겠다. 책 욕심에 산 것들이 대부분이라 더 그렇다.

이런 나의 생각을 이번 소설이 조금은 돌려 놓았다. 소설가 차인표가 그렇게 만들었다.


인어가 불로불사의 영약이란 설정은 이전 일본 만화 타카하시 루미코의 <인어의 숲>에서 봤다.

현재 이 만화는 인어 시리즈로 세 권까지 나왔는데 집에 구판으로 2권까지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소설은 일본 만화와 다른 이야기다. 인어 고기가 불로불사의 영약이란 설정만 비슷할 뿐이다.

차인표는 작가의 말에서 인어가 각 문화권마다 어떻게 다른지 간단하게 서술한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의 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받아쓴 글이라고 한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 내용은 모른다. 언젠가 읽게 되고, 그때 이 소설을 떠올릴 수 있으면 어떨지?


작가는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풀어낸다.

하나는 현재, 하지만 1902년이고, 다른 하나는 천 년 전 신라 효소왕 시대다.

외딴 섬에서 아내와 남매를 두고 살아가는 어부 박덕무 가족 이야기가 현재다.

천 년 전 이야기 속 주인공은 공랑이라는 소년이다.

덕무의 아내가 아내가 갑자기 죽은 후 딸 영실마저 병에 걸려 죽기 직전이다.

어떻게든 딸을 살리고 싶은데 일제의 앞잡이가 된 공씨가 인고 고기 기름 한 방울로 상태를 좋게 한다.

딸을 살리러면 무엇인든지 할 마음의 준비가 된 덕무이기에 공씨의 유혹에 넘어간다.

공씨는 독도의 강치를 일본인들이 학살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바다가 피로 붉어졌다.


공랑은 우연히 절벽 사이길로 들어가 잔잔한 호수 같은 곳에서 이상한 생명체를 본다.

이 생명체가 마을 할머니가 말한 인어란 것을 안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 할머니에게 이것을 말한다.

할머니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한다. 욕심은, 허기는 소년을 인어가 사는 곳으로 가게 한다.

어린 인어가 좋아하는 구슬 같은 나무 열매를 던지자 새끼 인어가 나타난다.

이 인어가 공랑에게 쉽게 잡을 수 없는 물고기를 잡아준다. 이 물고기를 집에 가져와 구워 먹는다.

생선 굽는 냄새가 나자 마을 어른들이 하나둘 집으로 온다. 어디서 이 물고기를 훔쳤냐고 소리친다.

인어가 잡아주었다는 사실을 말하자 사람들은 인어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공랑을 때리고 협박한다. 어린 아이가 감히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은 이성을 잃게 한다.


불로불사의 인어 고기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삶아 진액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어른 여성 인어만.

백 달이 넘은 여자 인어는 몸속에 생명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불로불사의 기운을 품고 있다.

그런데 이 인어를 토막 내 오랜 시간 통에 넣고 삶는다고 상상해보라. 끔찍한 장면이다.

인간의 욕망은, 인어 고기에 대한 갈망과 생각은 이런 끔찍함이 아무렇지도 않다.

천 년 전 공랑을 협박한 마을 사람들이나, 현재의 공씨 노인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어린 인어 남매를 잡았을 때 덕무와 공씨가 보여주는 반응은 서로 다르다.

인간의 감정이 남아 있는가? 없는가? 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무서운 일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 몇 가지 가설을 내놓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속초에 있는 영랑호에 대한 전설을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아온 서복이 진짜 좇은 것이 인어란 것이다.

소설을 읽다가 든 의문은 인어가 불로불사의 영약이란 것을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 것이다.

신라 화랑들이 이 마을에 찾아온 것은 어떤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차라리 한국의 역사와 연결하지 않고 판타지로 풀었다면 어땠을까?

기대한 것보다 문장이 탄탄하고, 주제를 끌고 나가는 힘이 좋다. 잘 읽힌다.

소설가 차인표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소설도 시간 내어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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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 물리학자 김범준이 바라본 나와 세계의 연결고리
김범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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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물리학자 김범준의 과학 에세이다.

얼마 전 우주에 대한 거대한 상상력을 다룬 물리학 책을 읽었기에 색다른 느낌이다.

나로 시작해 시선을 우주로 확장해 나가면 나란 존재가, 좀더 거대하게는 지구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시간은 또 어떤가. 100년도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

너무나도 미미한 티끌 같은 존재이지만 삶은, 사람은 그 존재로 의미를 가진다.

그 의미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다. 책 곳곳에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저자는 일상의 순간에서 과학을 끌어내어 우리 앞에 조금 쉽게 풀어놓는다.


저자를 기억하는 것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다.

좋은 책을 쓴다고 해도 과학의 경우 쉽지 않다. 그런데 방송에 나온 저자라면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알쓸신잡>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이들의 책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안다.

물론 이전부터 알던 소설가 김영하나 유시민 작가의 책을 제외하면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다.

이후 다른 저자들의 책에 관심을 두었지만 나의 주관심사가 아니라 뒤로 밀렸다.

독서의 편향성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으려고 최근 과학책을 아주 조금 읽는데 여전히 어렵다.

학창 시절 싫어했던 과목들이고, 나이 든 지금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씩 읽다 보면 내 삶과 연결되는 이야기가 나와 나의 인식을 새롭게 해준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에 읽었고, 무심코 지나간 것들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모두 5부로 나누었다. 인간의 존재로 시작해 공존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42개의 단어로 과학과 삶을 잇고 있다. 생각하지도 못한 단어들이 나온다.

대표적인 단어가 ‘꼰대’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당신이 문제다”라고 할 때 고개를 끄덕인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당신이 문제란 것이다. 나의 삶을 잠시 돌아본다.

처음 ‘빈칸’이란 단어 속 이야기를 읽으면서 빈 곳이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인연’이란 단어를 보면서 불교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적으로 접근해도 우리의 인연은 너무나도 낮은 확률이다. 나의 관계를 떠올려본다.


과학의 방법론, 접근법 등을 이야기 속에서 하나씩 풀어낸다.

과학이 절대적이 아니라 것과 긴 세월 동안 연구와 관찰로 쌓아온 것이란 사실을.

‘이해’에서 공통의 나무 그늘을 말할 때 일상의 우리가 얼마나 다른 생각으로 이야기하는지 알게 된다.

최근 과학에서 ‘법칙’이란 단어 대신 ‘이론’을 사용한다고 한 이유를 알려줄 때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증가’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가 아니다.

이것은 수학의 기하급수적 증가에 대한 쌀알 이야기와는 다른 내용이다.

인간의 삶에 단순히 수학 공식을 대입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현대 과학이 확률의 기반으로 발전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우리가 그냥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무한’이다. 무한을 인식하려고 하면 너의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인간의 인식 한계를 넘어선 그 단어, 숫자 등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물리학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로 ‘대칭’을 꼽았다는 부분도 재밌다.

인간의 얼굴에서 좌우대칭이 완벽한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거울과 나의 모습에 대한 인식을 다룬 이야기도 재밌다. 안다는 것의 어려움이려나!

‘자연’은 존재를 더 깊게 파고들게 한다. 스스로 그러함이란 의미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의 이면에 무엇이, 어떤 활동이 있는지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는 단순히 과학만 말하지 않고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도 같이 돌아본다.


사실 이 책은 단숨에 읽지 못했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가, 내용이 잠시 숨을 고르게 했다.

과학 이론은 나의 지식을 더해주었지만 과학과 삶을 연결한 이야기는 인식의 공간을 확장시켰다.

약간 어려운 내용들도 나오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책 속에 추천한 책들이 있는데 눈길을 둔 제목들이 몇 보인다.

가끔 이렇게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굳어가는 머리를 조금 흔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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