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 무블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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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정보를 처음 얻은 것은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란 책이었다.

역자 하인후가 김상근 교수에게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완역본을 출간하고 싶다고 연락한 것이 시작이다.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을 읽을 때만 해도 솔직히 이 책의 완역본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게 완역본이 나왔다. 당연히 굉장히 반가웠고, 의욕적이었다.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를 읽으면서 피렌체사에 대한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갈증은 실제 이 책을 받고 읽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빠르게 사라졌다.

왜냐고? 생각보다 두툼하고, 낯선 이름들이 너무 많고, 예상한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총 8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권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다르다.

단순히 피렌체의 역사만 다루지 않고, 로마제국의 동서 분열부터 시작한다.

그 당시 유럽의 중심이었던 곳을 기본으로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 이야기가 나온다.

솔직히 수많은 이름은 가독성을 아주 많이 떨어트린다.

읽으면서 피렌체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요약된 역사는 어느 정도 그 시대 역사를 아는 독자에겐 좋은 요약본일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말이다.


2권 이후 교황파(구엘프)와 황제파(기벨린)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나온다.

이때부터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의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가 그 시대를 최대한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반면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는 그 역사를 잘 정리 요약해서 보여준다.

그때는 요약에서 빠진 내용이 궁금했는데 실제 읽으면서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가 생각을 바꾸게 했다.

비전공자가 읽기에는 너무 자세한 부분이 많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전에도 나의 눈길을 끈 로마와 피렌체의 상황을 비교한 문장을 발견한다.

“우선 평민과 귀족 간의 불화가 로마에서는 논쟁을 통해 해결됐지만 피렌체에서는 싸움으로 결정되었”다.

이것은 “로마의 평민은 귀족과 함께 최고의 영예를 누리기를 원했지만, 피렌체의 평민은 귀족을 배제하고 정부를 독차지하기 위해 싸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렌체하면 결코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가문이 하나 있다.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4권에서부터 메디치 왕조의 창시자인 조반니 데 메디치가 나온다.

이 가문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고, 의문을 품게 한다.

이 강대한 가문조차도 몇 대를 넘기지 못하는 혼란을 이 시대가 보여준다.

조반니, 코시모, 로렌초 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그들을 끌어내리려고 한 세력이 나온다.

이 책의 재미는 이 서술에서 나온다. 물론 그 자세하고 방대한 이야기가 가독성을 방해한다.

권력을 둘러싼 전쟁에서 메디치 가가 승리하면서 거의 군주정처럼 변한다.

하지만 이것도 위대한 로렌초의 죽음으로 혼란으로 빠져든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추천사의 김상근 교수마저도 어려운 책이라고 말한다. 내 경우만 놓고 보면 맞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죽기 꼭 1년 전 1526년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헌정되었다.

교황 클레멘스 7세의 본명은 ‘줄리오 디 줄리아노 데 메디치’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군주론>의 저작 의도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이 뒷부분도 저술하려고 했다고 한다. <군주론>에 가려진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무 두툼하고, 낯선 이름과 역사라 더딘 독서와 집중력이 자주 깨어졌더.

하지만 읽다 보면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잘못된 선택의 반복과 더디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모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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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플롯 짜는 노파
엘리 그리피스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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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낯선 자의 일기>로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소설상을 수상했던 작가다.

개인적으로 이 고딕 문학 느낌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이번 소설을 선택할 때 두 가지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하나는 당연히 <낯선 자의 일기> 작가란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미스 마플’이란 이름이다.

미스 마플은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가 창조한 할머니 탐정 캐릭터다.

이 할머니 탐정이 활약하는 작품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살인 플롯 짜는 노파가 미스 마플 역할을 하면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이 노파 페기 스미스가 죽은 채 발견된다.

그녀의 죽음에 이상함을 느낀 것은 간병인 나탈카다.

실제 그 노부인의 죽음은 심장 마비로 인한 자연사로 처리된다.

나탈카는 페기가 가진 수많은 범죄 소설에서 그녀에게 헌사나 감사의 말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부분을 담당 형사 하빈더에게 강력하게 말한다.

하빈더는 전작에서도 나온 인도계 동성애 여행사다. 나중에 이 소설도 하빈더 시리즈로 묶이려나?


나탈카와 함께 이 의문스러운 죽음을 같이 조사하는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수사였다가 세속으로 돌아온 후 전념으로 카푸치노를 만드는 베네딕트다.

나탈카와 베네딕트는 페기의 물건 속에서 단서를 찾으러 갔다가 총을 든 괴한을 만난다.

위험의 순간 베네딕트는 나탈카를 보호하려고 움직인다.

총을 든 괴한은 책 한 권을 들고 집밖으로 달아난다.

이때 ‘우리가 당신을 찾아간다’라고 적힌 협박 엽서를 발견한다.

이 사건이 페기의 죽음을 더 조사하게 한다. 감사의 말을 남긴 작가를 찾아간다.


살인 컨설턴트란 페기의 명함이 발견된다. 뭐지?

솔직히 말해 이 정도 왔을 때 페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안다.

페기와 친한 범죄 소설가 덱스 챌로너를 만나 페기의 역할을 알게 된다.

이 덱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세 명의 민간인이 함께 한다.

우크라이나 출신 나탈카, 전 카톨릭 수도사였던 베네틱트, 페기의 이웃인 BBC 라디오 출신 에드윈이다.

두 명의 젊은 남녀와 달리 에드윈은 여든 살 노인이다.

그리고 이들이 덱스를 만난 그 밤 덱스는 총을 맞고 죽었다. 사건이 점점 커진다.


이 세 명은 하빈더를 만난 다음 아마추어 탐정 역할에 푹 빠졌다.

단서를 찾기 위해 추리작가들의 문학 페스티벌이 열리는 애버딘까지 차를 몰고 간다.

이 문학 페스티벌에서 ‘우리가 당신을 찾아간다’가 적힌 엽서를 받은 작가들을 만난다.

그들은 모두 페기에게 감사의 말을 남긴 작가들이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또 죽은 채 발견된다. 누가, 왜, 어떻게 죽인 것일까?

이 시체가 발견된 후 하빈더는 애버딘으로 불려온다. 이 아마추어 탐정 삼총사의 증언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아마추어 탐정들은 열의 가득하다.

여기에 나탈카 주변에 등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우크라이나 남성 둘이 의혹을 더한다.


이 소설의 구성은 전작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4명이란 것 정도.

전작처럼 단순 반복이 아니라 하빈더의 등장이 가장 많고, 베네딕트, 나탈카, 에드윈 순으로 나온다.

나탈카가 베네딕트보다 많을 줄 알았는데 세어 보니 그가 더 많다.

하빈더가 말한 것처럼 그는 좋은 형사가 될 자질을 이야기 속에서 자주 보여준다.

뛰어난 관찰력과 탁월한 추리력은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순수하고 숫기 없지만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행동을 보여주려고 하고, 실제 그런 행동을 한다.

강한 인상을 준 나탈카가 두려움으로 약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드윈은 젊은 남녀와 함께 움직이면서 이전과 같은 열정과 활력을 찾는다.


전작의 무거운 분위기를 이번 소설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아마추어 탐정들의 활약과 추리가 코지 미스터리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한다.

전작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부분도 재밌다. 시리즈의 재미 중 하나다.

단서와 관찰과 추리가 곁들여지면서 하나씩 사건을 풀어간다.

작가는 여기서 하빈더의 비중을 높이고, 살인 사건을 꼰다.

갑자기 미스 마플이 등장한 소설 속 장면과 왠지 닮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그냥 느낌만 그렇다. 물론 착각일 수 있다.

하빈더 시리즈라고 앞에서 말했는데 이 아마추어 탐정들이 다시 활약하는 것도 보고 싶다.

흥미로운 캐릭터와 책을 둘러싼 이야기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아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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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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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 이전에 고이케 마리코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현재 인터넷서점에 나온 정보로 검색하면 가지고 있는 책들은 많이 보인다.

보통 이 정도 작가면 한두 권 정도는 읽었는데 이상하게 읽은 책이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읽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전에 나온 책을 읽은 것일까?

아마 한 권도 읽지 않았다가 이번이 첫 번째일 것이다. 이런 경우는 나에게도 아주 드문 일이다.


솔직히 말해 작가 이름을 보고 선택했다. 에세이란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이 작가의 몇 가지 이력이 나의 시선을 항상 끌었고, 마음 한곳에 담아두었기 때문이다.

책을 받은 후 생각보다 얇아 놀랐다. 암으로 죽은 남편에 대한 애도가 담겨 있는 것은 검색으로 알았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을 했는데 반만 맞았다.

간결하고 뛰어난 문장의 뛰어난 가독성을 그 속에 담긴 감정이 진하게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과 추억들이 불쑥 튀어 오르는 순간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지 작가는 보여준다.

큰 일이 아닌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에 갑자기 다가온다. 오열하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다.

이런 상황과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고이케 마리코의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도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다.

아내가 먼저 받았고, 몇 년 후 남편도 받으면서 최초로 부부 동시 수상했다. 대단하다.

후지타 요시나가의 번역본을 찾아보니 겨우 두 권 출간되었고, 한 권은 절판 상태다.

언젠가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지만 늘 그렇듯이 장담할 수는 없다.

나오키상 수상 이후 몇 가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뻔한 질문에 살짝 웃는다.

이 둘은 처음에는 아이 없는 동거를 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법적 결혼을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법적 배우자 혹은 보호자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 편에서 병들기 전 미시마 유키오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행동하는 모습 때문이라고 하는데 미시마 유키오의 정치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코로나 19가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이런 현실과 다른 화면 속 장면이나 실생활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시간이었다.

불과 3년이란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켰는지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남편이 죽은 후 마주하는 일상과 기억과 추억들이 정말 담담하게 적혀 있다.

자신의 유년기 기억과 현실의 감정을 엮어서 풀어낸 이야기는 몰입도가 상당하다.

목차를 간단하게 훑어보면 죽음, 슬픔, 상실, 기도, 기억 등의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단어들이 품고 있는 감정이 이 에세이에서 강하게 녹아 있다.

그리고 자신이 글로 쓴 감정들이 실제와 어떻게 다른 지도 깨닫는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배우자를 상실한 사람이 겪게 되는 일상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작가가 보여주는 것 이상을 보고 느끼려고 하면 내가 경험해야 가능하다.

행복했던 순간, 갑자기 다가오는 상실감, 서로의 반쪽이란 확신, 엇갈린 시간, 솔직한 독백들.

이 글이 연재되는 동안 온 수많은 메일, 팩스 등의 이야기는 백인백색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 저마다의 사연과 상실과 슬픔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과 간결한 문장을 보면서 소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빨리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 최소한 단편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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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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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자주 읽는 일본 작가 중 한 명이다.

감상적인 부분을 많이 차단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아주 간결하게 풀어내는 작가다.

상당히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이번 소설도 읽으면서 부모님과 나의 짐 정리를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사 놓고 읽지 않고 있는 책들과 정리하지 않은 수많은 잡동사니들을 떠올리면 암담하다.

매년 정리해야 지 하면서 사는 것이 더 많아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자신에게 부끄럽다.

결혼 전에 산 물건을 본가에 옮겨 놓은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상황과 비교하게 된다. 그런 상황과 나이가 된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모토코는 시어머니가 갑자기 죽은 후 유품정리를 해야 한다.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계속 해서 월세가 나간다. 업체에 맡기면 빠르게 처리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업체를 부른다고 해도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하다. 홀로 쉬는 날, 휴가를 내어 시어머니의 집에 온다.

이 집에 첫발을 딛는 순간 내뱉은 말 중 하나가 ‘마계’란 표현이다.

많은 짐과 함께 그 속에서 느끼게 될 감정의 혼란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방에서 다른 사람이 머물다 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래된 집에는 구석구석 짐들이 쌓여 있다. 꺼내다 보면 이 물건이 ‘여기 있었구나’ 하고 놀란다.

자신의 집도 그런데 낯선 시어머니의 집은 어떻겠는가! 처음에는 작은 집이라고 만만하게 봤다.

그런데 살아온 시간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사용하지 않은 듯한 많은 그릇 등과 가방 등은 의문을 자아낸다. 물론 나중에 이유가 나온다.

오랜 세월 버리지 않은 옷들, 쌓아 둔 신문 등. 그리고 4층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환경.

쓰레기를 마구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분리 수거를 해야 하고, 대형 가구 등은 개수 제한도 있다.

쉽지 않다. 힘들다. 돈으로 해결하려고 해도 비용이 높다.

이렇게 모토코는 시간을 내어 시어머니의 유품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한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집의 수상한 온기를 옆집 사람의 이야기로 납득한다.

그런데 집에 놓여 있던 물건들이 그녀의 화를 돋군다. 50대 중년 여성에겐 힘든 일이다.

남편이 와서 도와주면 되겠지만 평일에 휴가를 내어 오기가 쉽지 않다.

이 부분은 흔한 변명이다. 주말에 둘이 와서 정리한다면 더 쉽다.

물론 분리 수거한 물건들은 해당일에 내놓아야 한다. 일본의 높은 야근 비율이 하나의 장애 요인이다.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모토코는 자신의 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비교한다.

두 분의 상황이 다르지만 그녀는 어머니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소설 후반에 가면 새로운 사실들이 나오면서 이 비교는 다른 모습을 가진다.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는 그녀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나온다.

같은 빌라에 사는 자치회 노인들이다. 대단히 열정적이고 힘차게 돕는다.

처음에는 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그들의 도움을 요청하자 새로운 길이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재밌고 공감할 부분이 하나 나온다. 바로 남편의 유품 버리지 못하는 감정이다.

자신의 추억이 가득한 물건을 버리는 것은 누군가에겐 힘든 일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볼 때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남편의 방으로 가져가라고 한다. 포기하는 물건이 늘어난다.

현실과 감상의 중간에서 누군가는 냉혹하게 처리를 해야 한다. 아내의 승리다. 이것이 맞다.


유품정리는 단순히 분류와 버리기와 재활용의 순간만이 아니다.

버리는 순간 추억과 기억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현실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단순히 버리려고 한다고 바로 되는 것도 아니다. 버리는데 돈도 들고, 시간도 정해져 있다.

버리기 아까운 물건 등도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을 사용할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자치회 노인들과 옆집 사나에다.

시어머니의 유품 중 그들이 필요한 물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대화 속에 오해가 풀린다.

시어머니 유품정리와 함께 또 다루는 이야기 중 하나가 지방 도시의 인구 소멸과 낡은 집 문제다.

모토코의 엣집도 동생 부부가 이사를 해야 하면서 팔고 유품 등을 정리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이 올케의 정리를 쉽게 한다. 착한 유경험자의 현실적 판단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모토코의 감정이 몇 번이나 변하고, 오해하는 순간들이 나온다.

유품정리업체의 높은 비용이 천천히 자신의 힘으로 정리를 할 수밖에 없게 한다.

이 과정에 감정은 오해를 넘어 이해와 공감, 연대로 이어진다.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글을 두고 두 사람의 성격을 비교한 마지막 부분도 인상적이다.

닫힌 세계에 머물다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순간도 나온다. 이 순간도 힘들게 만들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현실적 문제와 나의 상황을 돌아봤다.

모토코가 시어머니에 대해 가진 단편적인 정보가 새롭게 바뀌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삶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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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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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무지>로 처음 만난 작가다. 이번 소설은 아주 화려한 수상 이력을 뽐낸다.

전작도 정신없이 달리게 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대단하다.

단순히 재밌게 읽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 시발점은 설정에서부터 시작한다. 흑백 게이 커플과 그 아버지들이란 설정이다.

이 게이 커플이 총에 맞아 죽은 다음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리고 이 아버지들이 자신의 아들이 게이란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격렬하게 그려낸다.

아들의 죽음 전에는 그렇게 반발했는데 죽은 후 그 상실감과 후회는 너무나도 거대하다.

게이인 것에 더해 흑백 커플이란 설정을 더해 성 정체성에 인종 문제를 더했다.


죽은 아들의 두 아버지들도 결코 평탄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다.

둘 모두 감옥에 몇 년씩 살다 나왔다. 이 둘은 자신의 아들이 게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폭력으로 아들의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몇 년 동안 아버지의 부재는 아주 큰 문제다.

흑인이 아이크의 아내는 일을 세 개나 하면서 아이지아를 키웠다.

아이크가 감옥에서 나온 후 범죄 쪽에 발을 내딛지 않은 것도 이런 과거 때문이다.

백인 버디 리의 경우 아내가 부유한 판사와 재혼 후 아들 데릭을 키웠다.

하지만 아들은 그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했고 술과 폭력에 절은 아버지와 살아야 했다.


아이자와와 데릭은 잘 자랐다. 자신들의 직장과 배우자도 만나 결혼식까지 올렸다.

대리모를 통해 두 사람의 아이까지 얻었다. 이들의 삶에 유일한 아픔은 아버지들이다.

가장 행복해야 하는 순간 아들이 게이란 사실에 화가 난 아버지가 있었다.

이 화가 아들의 죽음 이후 끊임없는 자책과 후회로 바뀐다.

그런데 이 둘은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다. 냉혹한 살인자에게 확인 사살당했다.

경찰은 이 사건 해결에 대한 단서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몇 개월을 그냥 보낸다.

데릭의 아버지 버디 리가 아이크를 찾아와 우리가 범인을 찾자고 한다.

아이크는 거부한다. 무서워서? 아니다. 자신 속에 숨쉬는 너무나도 강렬한 폭력성 때문이다.


아이크의 생각이 바뀐 것은 두 아이의 무덤과 비석이 손상된 것을 본 다음이다.

그것을 보자마자 그는 아들 커플을 죽인 살인자를 죽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버디 리에게 전화하고, 이 둘은 경찰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아들 친구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 흑백 중년들이 티격태격한다. 그들의 살아온 길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백인인 데릭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흑인 아이크의 삶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흑인이었다면 바로 총을 쐈을 상황도 나온다.

이때 버디 리가 하는 말은 그가 며칠 동안 아이크와 다니면서 깨달은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은 곳곳에서 나오고,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인종 문제를 표현한다.


LGBTQ 문제도 정면에서 다룬다. 두 아들이 게이니 당연한 일이다.

단서를 얻기 위해 찾아간 게이바에서 아이크가 한 남자의 손길에 화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입견이 만들어낸 두려움의 결과다. 이렇게 작가는 게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의 행동을 그려낸다.

이곳에서 만난 게이와 대화하면서 인종 갈등보다 더 심한 성 정체성 문제를 조금 인식한다.

차별은 그 대상이 가장 잘 인식한다. 대상이 아닌 사람은 잘 느끼지 못한다.

백인인 버드 리가 백인 하층민으로 살면서 결코 느끼지 못한 것을 아이크와 함께 하면서 경험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듣는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계급의 문화를 잘 표현한다.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가는 흑백 아버지의 과격한 동행 이야기다.

그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도 지적이지도 않다. 가는 길마다 폭력이 난무한다.

아이크가 말했듯이 중대범죄를 수없이 저지르면서 나아간다.

그런데 그들만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아들 살인자들은 더 많다.

하지만 법은 이런 곳까지 미치지 못한다. 차별이 심한 곳에서는 법도 사건을 차별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들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넘쳐난다.

‘살아만 있다면’이란 전제가 붙는데 사별의 고통이 만들어낸 현실 인식이다.

읽다 보면 뭉클하는 순간이 생긴다. 이런 감정도 통쾌한 복수와 피 튀기는 장면에 밀린다.

이 밀린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운으로, 부성애로, 차별의 문제로 머리와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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