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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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惡人). 단어만 놓고 보면 악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첫 감정은 도대체 악인은 누군가? 하는 의문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살인자가 악인이겠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가는 악인이란 제목으로 결과만이 아닌 그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읽기 전에 먼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사회적 분석까지 덧붙여 멋지게 그려낸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가 연상되었다. 책 소개 글에서 이런 분위기를 풍겼고, 어쩌면 엄청나게 압도적인 느낌을 받은 소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그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그러면서 마주한 것은 각 장의 제목들이었다. 희망과 과거와 현재의 느낌을 담은 그 제목들을 보면서 조금씩 빠져들었다.

 

처음엔 사실 이전에 본 작가의 다른 책처럼 건조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약간 황량한 기분이 들었다. 피해자 요시노와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는 진솔함보다 가짜로 가득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지는 유이치의 이야기에선 불안함이 느껴지고 긴장감이 전해졌다. 그리고 새롭게 나온 미쓰요의 일상에선 지지부진한 삶의 한 단면이 극대화된다. 이런 사람들의 만남이 거짓과 위선에서 진실한 감정으로 이어지면서 소설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미스터리소설에서 연애소설로. 그 감정의 전환이 비록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만 속도감과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뉴스로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소식들은 대부분 결과뿐이다. 왜? 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왜? 가 궁금하고 풀어지는 것도 진실한 왜? 가 아닌 보여주기 위한 왜? 인 것이다. 여기서도 매스컴의 속성은 잘 다루어진다. 왜? 에 대한 호기심은 그냥 단순히 흥미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또 다른 흥미꺼리를 찾아서 그 주변 사람들로 눈길을 돌리고 상관없는 것들도 파헤치고 까발리면서 규모를 확장시킨다. 이런 시선들에서 좀더 깊이 들어가 사건 당사자들을 만나게 되면 덧칠되어진 허상이 지워지고 본래의 참모습이 보이게 된다.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살인자의 내면과 삶을 파고들면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숨겨진 삶이 나타난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이유들은 분명 악당인 인물도 독자가 이해하게 만든다. 소설의 매력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살인자 유이치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상황을 보여주면서 과연 그가 악인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사건을 따라가면 첫 번째 용의자 마스오의 행동이 없었다면이란 가정과 피해자 요시노의 삐뚤어진 삶의 방식과 자기 기만적 행동이 그런 결론으로 이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살인자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까지 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재미있고 잘 읽힌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악인이 누군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먼저 살인자를, 다음으로 마스오를 생각하게 되는데 특히 마스오의 행동들은 철부지 모습과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음을 느끼게 하면서 나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하나의 살인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과 삶이 주는 재미는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인위적인 결말로 이어가면서 살짝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유이치가 한 말 중 어머니와 자신이 모두 피해자가 되길 원했다고 한 대목은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열쇠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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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역사 -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
올레 회스타 지음, 안기순 옮김 / 도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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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생각한 것보다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하트라는 말이 심장과 마음이란 두 의미로 풀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철학적 문화적 사유들이 담겨있다. 한 시대나 한 지역에 제한되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유럽과 중동과 아즈텍 문화까지 포괄하고, 각 종교 속에서 하트에 대한 의미를 탐구한다.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한 내가 가장 큰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하트(heart). 그냥 보통 심장이나 마음으로 번역 가능하다. 사랑의 징표로 현재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냥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신나고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심장이라고 하면서 각 지역과 시대마다 심장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면 약간 힘들지 모르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어렵게 느껴진 것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철학 서적을 너무 오랫동안 멀리 했다는 것도 이유고, 마음속으로 심장에 대해 해부학적 지식을 담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기계론적으로 보면 단순히 엔진과 같은 것인데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하게 설명해야 하는 반감이 작용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철학적 문화적으로 풀어낸 하트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읽은 과학 교양서적에서 심장에 대한 해부학 지식과 뇌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얻었기에 과거에 심장에 대해 생각한 것들이 약간은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문화사나 철학사와 엮어 생각하면 심오한 내용이 된다. 이집트인이 미이라를 만들면서 뇌를 없애면서 심장은 남겨 놓은 것이나 아즈텍 문화에서 인신공양을 하며 심장을 바치는 것이나 그리스 시대를 지나 유럽 그리스도교에서 심장과 관련된 신학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슬람 종교와 어떻게 다른지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하면서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그리스와 그리스도교에서 나타나는 심장과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엔 그냥 쉽게 지나간 것들인데 이 책에선 가장 많은 분량과 심도 있는 연구가 이어진다. 호메로스의 두 저작에 대한 분석을 심장과 연관하여 풀어낸 해석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책들을 보게 만들었다. 인간이 영혼을 만든 목적을 스스로 지배하고 자신 안에서 사납게 날뛰는 힘을 통제하고 절제하여 생각을 한데 모아 마음의 평정을 찾지 위해서(53쪽)란 대목에선 깜짝 놀랐다. 그 후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그리스 철학을 받아 논리를 강화하고 발전시켰는지 보았다. 서구의 개인주의가 그리스도교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존재하기 어렵다는 대목에서 예로 나온 천안문 사태의 한 장면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서구 문화의 핵심 관념으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죄의 개념을 지적하고 자책의 문화라고 한 대목에선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시대가 지나고 여러 철학자들의 글들에서 심장과 마음, 이성과 영혼 등에 대한 이해를 좀더 깊게 하게 되고 사랑과 낭만주의 글에서 하트가 종교적 그늘을 벗어나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 장면에서 약간 더 편하게 읽게 되었다. 성 담론 글에서 억압보다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불안 조장 선전 등의 성도덕을 아는 것보다 에이즈 감염에 대해 아는 것이 교육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한 대목에선 질병을 판매하는 요즘의 상업주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어 현재의 밸렌타인데이에서 심장 상징이 소비주의 시대의 상품들과 똑같이 소비된다고 지적한 대목에선 괜히 씁쓸한 마음이 생긴다.

 

어렵게 느껴지고 힘들게 느껴지던 글들이 약간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은 역시 마지막에 가서다. 현대의학에서 심장을 대체 가능한 하나의 근육처럼 생각하고, 생각이 이루어지는 곳을 두뇌에 두고 있지만 우리가 아직도 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두고 있는 것은 심장 때문이다. 비록 해부학 지식에 의해 밝혀진 사실일지라도 심장은 증후이고 상징이며 그 이상이고, 이것은 단순히 심장만의 것이 아닌 ‘심장과 머리, 이성과 감성 사이의 숭고한 상호작용’(418쪽)이란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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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기쁨 1 - '신의 물방울' 저자 아기 다다시
아기 다다시 지음, 오키모토 슈 그림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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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맛을 잘 모른다. 체질적으로 술을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붉어지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자주 간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나에게 끝없이 술을 권하지만 않는다면이란 전제 조건이 붙는다. 이런 내가 와인에 대해 알 턱이 없다. 선물로 들어오는 것이나 선물로 주면서 같이 마신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마시고 싶어 산 적도 없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 수많은 와인들 중에 과연 어떤 와인이 내 입맛에 맞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격이라도 소주처럼 싸다면 사놓고 마시면서 선택하겠지만 그 가격이 만만하지 않음을 생각하면 더욱 어렵다.

 

기억 속에 참 맛있게 먹은 와인이 두 병 있다. 하나는 동생이 프랑스 출장 다녀오면서 사온 것이고, 하나는 와인판매점에서 추천 받아 마신 칠레산 와인이다. 불행하게도 와인 병들이 귀찮아 치우면서 상표명을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게 먹은 프랑스 와인의 경우 이 책의 저자가 말한 천지인이 결합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나의 입맛에 맞았다. 이때부터 선물로 들어오면 한잔한잔 마시다보니 집에 병들이 제법 모이기도 했다.

 

이때 먹은 여파와 친구 아내가 생일 등의 이유로 모이면 와인 한 잔씩 하자고 하여 사들고 간 칠레 와인으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보졸레 누보에 대한 광고 때문에 한 번 사들고 갔는데 샴페인처럼 가벼운 맛에 다음부터 쳐다보지 않았던 기억이나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후 오히려 그 와인의 가격이 더 올라간 것을 보면서 와인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조금은 식어갔다.

 

그렇게 식어가는 중에 서점에 가니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가 히트를 치고 있단다. 뭐지? 하고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비싼 와인에 대한 이야기란 것을 알고 관심을 끊었다. 그렇다고 와인에 대한 관심과 마시는 것을 완전히 그만 둔 것은 아니다. 그러다 우연히 ‘신의 물방울’ 9권을 사게 되었다. 이유는 책 뒤에 나오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대의 맛있는 와인에 대한 설명은 다시 불을 붙였다. 해외에 나가면 한 병 사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역시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이름은 외울 수 없어 그냥 들어왔다.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렇게 나의 경험을 많이 늘어놓는 것은 이 책이 저자의 경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와인에 대한 풍부한 정보도 있지만 와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고 경험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최고로 치는 와인을 제외하면 머릿속에서 싼 가격의 좋은 와인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와인에 대한 갈증과 기억만 살아있다. 그래서 다시 목차를 한 번 보니 와인에 대한 기초 정보도 충실하다. 디캔팅에 대한 것이나 라벨 읽는 법이라거나 와인산지에 대한 정보 등이 담겨있다. 하지만 내가 와인에 대해 암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이런 정보는 책을 들고 다니거나 필요한 것만 메모하여 가지고 있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와인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쓴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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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비룡소 걸작선 49
랄프 이자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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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고 난 후 역자 후기에 이전에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 찾아보았다. ‘이쉬타르의 문’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표지가 비슷했다. 개인적으론 이전 표지가 마음에 든다. 이번 표지에선 왠지 모르게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표지를 찾아 비교하면 닮은 점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 아마 그림자처럼 처리된 인물과 박물관이란 이름이 섞이면서 이런 상상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이런 재미난 상상을 하게 하면서 소설은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줄거리만 따라 간다면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을 생각하면 나와 맞지 않다. 친유대적이고 성경에 너무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친유대적이란 의미는 내가 유대인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기본 바탕이 유대의 경전에서 말하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다른 나라의 전설이나 신화를 여기에 맞추어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악당 크세사노와 그를 물리치려는 쌍둥이 남매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경찰이 아버지가 도둑이라고 하면서 집을 조사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지? 이렇게 그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있었다. 집에 있는 사진들이나 일기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일부 찾지만 전체적인 것들을 완전히 떠올리지는 못한다. 아버지 일기에서 힌트를 얻은 그들은 아버지 찾기에 나서고 그 도중에 남동생 올리버는 크바시나라는 잊어버린 기억의 세계로 넘어가고, 현세에 남은 제시카는 미리엄이라는 학자의 도움으로 잊어버린 아버지와 동생과 세계를 구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쌍둥이라는 인물과 현세와 환상의 세계를 동시에 그리면서 상황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짐작하게 한다. 두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크바시나는 동생 올리버가, 베를린은 누나 제시카가 있으면서 비밀을 풀고 세계와 자신들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전개는 양 세계를 번갈아 가면서 진행된다. 이런 평범한 구성이지만 담겨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특히 크바시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환상소설이 주는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동료들을 만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그 친구들이 특이하다. 페가수스나 유리로 만든 벌새 니피나 나폴레옹의 망토였던 코퍼나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엘레우키데스에 붓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말하는 생명체가 아닌 존재도 이곳에선 살아 움직이고 존재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특이한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일들을 겪은 후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성은 약간 흔하지만 역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새롭게 만들어낸 다른 존재들로 재미를 준다. 대상이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라면 진부하다는 표현을 하긴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올리버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험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환상적이다. 반면에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조사 과정은 아이들에겐 좀 지루하지 않을까 한다. 크세사노의 정확한 이름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역사를 끌어오고, 유대 성전에 나온 기록과 연결시키는 일들이 굉장히 정밀하고 많은 자료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책인가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너무 아이들을 낮추어 본 건가?

 

미하엘 엔데가 ‘모모’에서 시간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기억’을 다룬다. 기억을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놓으면 역사가 될 것이다. 가까이는 르완다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대학살이나 나치의 인종말살 정책 등의 무시무시한 것들이고, 더 멀리 가면 구약에 기록된 것들일 것이다. 특히 “지난 수천 년간 사람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우주관을 만들어 냈지. 특별히 견고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지. 불행히도 인간들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의 과거를 죽여 버렸지.” (2권 60쪽)라는 문장은 앞에서 말한 유대적인 종교 색채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느낌을 준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이나 독일의 수많은 반체제 인사나 장애인들을 학살했다고 하면서 잊지 말라고 하는 부분에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에 의해 학살되는 현실을 말하지 않은 점에선 아쉬움을 느꼈다.

 

또 하나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면서 인류가 전설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하면서 다시 성경을 말한다. 이 부분도 역시 개인적 생각과 너무 갈리는 부분이다. 원리주의자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저자가 유대인이 아닌가 의문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런 종교적 상징과 강조가 남발하면서 개인적인 사상과 충돌하였다면 두 남매가 펼치는 모험은 빠져들게 만든다. 구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역사로 더 재미있을 것이고,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남매가 두 세계에서 벌이는 모험과 조사로 충분한 재미를 누릴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던 만큼 아쉬운 점이 있었기에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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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권력
아서 제이 클링호퍼 지음, 이용주 옮김 / 알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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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럽은 지도 상단에 표시되어 있고 아프리카는 지도 하단에 표시되어 있을까? ’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뭔가가 머리를 후려치는 듯했다. 만약 어린 아이들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와 반복적인 교육에 의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지도 작성 방법 속에 그 시대의 이권과 지배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생각은 못했다. 그래서 지구를 이러 저리 굴려보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놀라운 광고문구 때문인지 모르지만 약간은 지도와 권력이라는 제목에서 좀더 격렬하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전개와 예시를 기대했다. 하지만 원제인 투영의 힘(The Power of Projections)에서 알 수 있듯이 지도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과 제작을 위한 탐험 등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하나의 지도가 그 시대를 어떻게 대변하는지와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고 이용되는지 보여준다. 처음 기대한 발상전환의 공격도 사람을 잡아당기는 상황들도 거의 없다.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몇 번 나오는데 그것은 남북한 분단과 독도 문제와 서해 문제가 하나의 좋은 예가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유럽의 관점에서 진행된 이야기들이라 낯선 지명과 생소한 인물들로 속도는 더디게 진행된다. 그런 중에도 날카로운 지적과 지도 제작을 둘러싼 의도와 목적과 역사는 재미를 준다.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역사 속 지도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닐까 한다.

 

저자가 자주 지도 제작자가 위치, 방향, 거리, 크기, 모양 등의 외부세계를 부정확하게 묘사한다고 지적한 것처럼 지도는 보이는 것 이상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지도 제작자의 의도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투영도법에 따라 유럽대륙이 실제보다 크게 부각되고, 날짜 변경선등이 정해지는 힘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지도를 ‘시간에 펼쳐진 공간의 지성화’라고 규정한 한 것은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우린 일상생활에도 지도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 목적지를 찾아가거나 소유지 분쟁 등의 개인적인 부분에서 국경선 등의 영토 분쟁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그 한 예인 독도가 민족감정과 함께 반드시 사수해야할 영토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 해양자원에 대한 경제적 이익이 깔려있음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분쟁이 발생한 것도 저자가 지적하듯이 일본에 의해 식민지가 된 이후 일본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간도 문제까지 엮어 생각하면 지도 제작이 국력과 일치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모험과 도전과 경제적 수탈과 이데올로기는 이 책 속에 잘 나와 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을 둘러싸고 미국이 남북 베트남 군사 경계선을 새로운 국경으로 간주하고 미국 개입을 정당화 하였다는 대목에선 현재 우리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다른 분쟁 지역에서 지도가 어떤 모양으로 구분되어지는가가 그 나라들의 목적과 연결됨을 생각하면 그냥 단순히 볼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면적에 상관없이 보이는 것에 의해 미국이 크니 중국이 크니 소련이 크니 하고 다툼을 벌였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함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숨겨진 의도에선 무서움을 느낀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냉전 이후 인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들이 급증함에 따라 피와 문화가 지도 단위의 이미지를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쿠르드 족이나 티베트가 독립된 국가가 아니지만 마음 속 지도엔 그 영토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분산된 나라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해 독립을 추구하지만 실제는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유럽 연합이나 아프리카 연합처럼 연방제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블록화를 생각하면 동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였던 투영도법에 의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저자의 문장을 인용함으로써 아쉬움을 달래려고 한다. “투영도법은 지도학, 영화(제작)학, 심리학뿐 아니라 국제정치학과도 관련된 개념이다. 국가는 식민지와 기지 그리고 군사적 권리를 탐색하면서 해외로 ‘권력을 투영’하는 일에 관여한다. 따라서 메르카토르 투영도법은 유럽의 팽창과 쌍을 이루며, 지도는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 계획과 연관되었다. 한 지역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은 그곳에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며, 여행 경로에 대한 정보는 군사 작전과 영리 사업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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