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비룡소 걸작선 49
랄프 이자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1권을 읽고 난 후 역자 후기에 이전에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 찾아보았다. ‘이쉬타르의 문’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표지가 비슷했다. 개인적으론 이전 표지가 마음에 든다. 이번 표지에선 왠지 모르게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표지를 찾아 비교하면 닮은 점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 아마 그림자처럼 처리된 인물과 박물관이란 이름이 섞이면서 이런 상상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이런 재미난 상상을 하게 하면서 소설은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줄거리만 따라 간다면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을 생각하면 나와 맞지 않다. 친유대적이고 성경에 너무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친유대적이란 의미는 내가 유대인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기본 바탕이 유대의 경전에서 말하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다른 나라의 전설이나 신화를 여기에 맞추어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악당 크세사노와 그를 물리치려는 쌍둥이 남매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경찰이 아버지가 도둑이라고 하면서 집을 조사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지? 이렇게 그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있었다. 집에 있는 사진들이나 일기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일부 찾지만 전체적인 것들을 완전히 떠올리지는 못한다. 아버지 일기에서 힌트를 얻은 그들은 아버지 찾기에 나서고 그 도중에 남동생 올리버는 크바시나라는 잊어버린 기억의 세계로 넘어가고, 현세에 남은 제시카는 미리엄이라는 학자의 도움으로 잊어버린 아버지와 동생과 세계를 구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쌍둥이라는 인물과 현세와 환상의 세계를 동시에 그리면서 상황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짐작하게 한다. 두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크바시나는 동생 올리버가, 베를린은 누나 제시카가 있으면서 비밀을 풀고 세계와 자신들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전개는 양 세계를 번갈아 가면서 진행된다. 이런 평범한 구성이지만 담겨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특히 크바시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환상소설이 주는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동료들을 만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그 친구들이 특이하다. 페가수스나 유리로 만든 벌새 니피나 나폴레옹의 망토였던 코퍼나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엘레우키데스에 붓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말하는 생명체가 아닌 존재도 이곳에선 살아 움직이고 존재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특이한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일들을 겪은 후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성은 약간 흔하지만 역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새롭게 만들어낸 다른 존재들로 재미를 준다. 대상이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라면 진부하다는 표현을 하긴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올리버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험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환상적이다. 반면에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조사 과정은 아이들에겐 좀 지루하지 않을까 한다. 크세사노의 정확한 이름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역사를 끌어오고, 유대 성전에 나온 기록과 연결시키는 일들이 굉장히 정밀하고 많은 자료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책인가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너무 아이들을 낮추어 본 건가?

 

미하엘 엔데가 ‘모모’에서 시간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기억’을 다룬다. 기억을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놓으면 역사가 될 것이다. 가까이는 르완다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대학살이나 나치의 인종말살 정책 등의 무시무시한 것들이고, 더 멀리 가면 구약에 기록된 것들일 것이다. 특히 “지난 수천 년간 사람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우주관을 만들어 냈지. 특별히 견고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지. 불행히도 인간들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의 과거를 죽여 버렸지.” (2권 60쪽)라는 문장은 앞에서 말한 유대적인 종교 색채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느낌을 준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이나 독일의 수많은 반체제 인사나 장애인들을 학살했다고 하면서 잊지 말라고 하는 부분에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에 의해 학살되는 현실을 말하지 않은 점에선 아쉬움을 느꼈다.

 

또 하나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면서 인류가 전설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하면서 다시 성경을 말한다. 이 부분도 역시 개인적 생각과 너무 갈리는 부분이다. 원리주의자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저자가 유대인이 아닌가 의문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런 종교적 상징과 강조가 남발하면서 개인적인 사상과 충돌하였다면 두 남매가 펼치는 모험은 빠져들게 만든다. 구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역사로 더 재미있을 것이고,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남매가 두 세계에서 벌이는 모험과 조사로 충분한 재미를 누릴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던 만큼 아쉬운 점이 있었기에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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