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권력
아서 제이 클링호퍼 지음, 이용주 옮김 / 알마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유럽은 지도 상단에 표시되어 있고 아프리카는 지도 하단에 표시되어 있을까? ’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뭔가가 머리를 후려치는 듯했다. 만약 어린 아이들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와 반복적인 교육에 의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지도 작성 방법 속에 그 시대의 이권과 지배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생각은 못했다. 그래서 지구를 이러 저리 굴려보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놀라운 광고문구 때문인지 모르지만 약간은 지도와 권력이라는 제목에서 좀더 격렬하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전개와 예시를 기대했다. 하지만 원제인 투영의 힘(The Power of Projections)에서 알 수 있듯이 지도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과 제작을 위한 탐험 등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하나의 지도가 그 시대를 어떻게 대변하는지와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고 이용되는지 보여준다. 처음 기대한 발상전환의 공격도 사람을 잡아당기는 상황들도 거의 없다.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몇 번 나오는데 그것은 남북한 분단과 독도 문제와 서해 문제가 하나의 좋은 예가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유럽의 관점에서 진행된 이야기들이라 낯선 지명과 생소한 인물들로 속도는 더디게 진행된다. 그런 중에도 날카로운 지적과 지도 제작을 둘러싼 의도와 목적과 역사는 재미를 준다.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역사 속 지도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닐까 한다.

 

저자가 자주 지도 제작자가 위치, 방향, 거리, 크기, 모양 등의 외부세계를 부정확하게 묘사한다고 지적한 것처럼 지도는 보이는 것 이상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지도 제작자의 의도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투영도법에 따라 유럽대륙이 실제보다 크게 부각되고, 날짜 변경선등이 정해지는 힘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지도를 ‘시간에 펼쳐진 공간의 지성화’라고 규정한 한 것은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우린 일상생활에도 지도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 목적지를 찾아가거나 소유지 분쟁 등의 개인적인 부분에서 국경선 등의 영토 분쟁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그 한 예인 독도가 민족감정과 함께 반드시 사수해야할 영토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 해양자원에 대한 경제적 이익이 깔려있음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분쟁이 발생한 것도 저자가 지적하듯이 일본에 의해 식민지가 된 이후 일본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간도 문제까지 엮어 생각하면 지도 제작이 국력과 일치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모험과 도전과 경제적 수탈과 이데올로기는 이 책 속에 잘 나와 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을 둘러싸고 미국이 남북 베트남 군사 경계선을 새로운 국경으로 간주하고 미국 개입을 정당화 하였다는 대목에선 현재 우리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다른 분쟁 지역에서 지도가 어떤 모양으로 구분되어지는가가 그 나라들의 목적과 연결됨을 생각하면 그냥 단순히 볼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면적에 상관없이 보이는 것에 의해 미국이 크니 중국이 크니 소련이 크니 하고 다툼을 벌였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함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숨겨진 의도에선 무서움을 느낀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냉전 이후 인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들이 급증함에 따라 피와 문화가 지도 단위의 이미지를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쿠르드 족이나 티베트가 독립된 국가가 아니지만 마음 속 지도엔 그 영토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분산된 나라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해 독립을 추구하지만 실제는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유럽 연합이나 아프리카 연합처럼 연방제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블록화를 생각하면 동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였던 투영도법에 의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저자의 문장을 인용함으로써 아쉬움을 달래려고 한다. “투영도법은 지도학, 영화(제작)학, 심리학뿐 아니라 국제정치학과도 관련된 개념이다. 국가는 식민지와 기지 그리고 군사적 권리를 탐색하면서 해외로 ‘권력을 투영’하는 일에 관여한다. 따라서 메르카토르 투영도법은 유럽의 팽창과 쌍을 이루며, 지도는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 계획과 연관되었다. 한 지역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은 그곳에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며, 여행 경로에 대한 정보는 군사 작전과 영리 사업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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