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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작가가 데뷔한 지 20년이 되었다.
8년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최근에 읽은 책은 단편집이었다.
자기만의 세계를 다양하게 풀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 동안 읽었던 그의 소설들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의 이야기였다.
이번 소설도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아주 재밌었다.
<기병과 마법사>란 제목을 보고 ‘뭔 내용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말을 읽고 ‘기사와 마법사’의 한국적 해석임을 알게 되었다.
재밌는 발상의 전환이자 신선한 구상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반도와 만주 벌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작인과 마목인으로 나누었는데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다른 표현이다.
주인공 윤해는 12년 동안 사라의 성군이었던 왕의 조카딸이다.
왕의 형인 그녀의 아버지는 역사서에 한 줄로 남길 바라는 인물이다.
이 바람은 동생이 성군이었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폭군이 되면서 그의 바람은 흔들린다.
딸의 결혼을 두고 그가 한 선택들은 바로 이런 바람의 실현이었다.
병서를 읽고 딸과 병법 대결을 펼치지만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림을 그려도 물로 그리거나 모래 위에 그린 후 빗질로 지운다.
읽으면서 이 갑갑하고 답답한 삶이 이해되지 않고 안타까웠다.
폭군으로 변한 숙부, 그의 밑에서 뼈를 보면 흥분하는 군인 종마금.
아버지는 이 변태를 윤해의 남편으로 점 찍는다.
왕가와의 결혼으로 많은 것을 얻으려는 종마금.
그는 윤해를 보고 하녀로 생각했다가 그의 신부라는 것을 알고 놀란다.
시댁이 될 집안의 무리한 요구, 윤해에게 닥친 위험.
꿈속에서 그녀가 만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어린 시절의 기억과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난 거대한 곰개.
상황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북방 지역 술름의 관리로 발령난다.
술름의 성주는 마목인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언제 함락될 지 모른다.
마목인 토르가이는 술름을 정복하려고 병사를 모아 성을 공격한다.
공성전을 펼쳐야 하는데 성주는 기병과 함께 나가 전사했다.
마목인들은 단단한 창병과 뛰어난 기병대를 보유하고 있다.
전멸의 위기에서 나은 군인을 구한 것은 좌기대 다르나킨.
술름에 새롭게 부임한 윤해에 대해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다르나킨이 바라는 것은 기병 돌격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윤해가 보여준 기병대 운영은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경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술름 옆에 존재하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 거문담.
일사가 가져온 숫자 1021과 그녀가 꿈에서 만나는 한 여인.
토르가이와의 전쟁에서 그녀가 보여준 놀라운 병법과 마법사 소문.
작가는 이야기를 두 갈래로 진행하면서 하나로 합친다.
하나는 토르가이 등과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1021을 둘러싼 비밀이다.
토르가이와의 전쟁은 전술과 기병에 대한 이해를 풀어놓았다.
적은 병력으로 적을 막아내고 물리치는 병법은 오랜 세월 공부한 결과다.
단순히 오래 공부했다고 이런 성과를 낸다면 누구나 가능했을 것이다.
윤해는 아버지와의 대결과 현장에서 이해한 것을 결합해 자신만의 병법을 만들었다.
이 병법의 이해와 깊이는 마목인 다르나킨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다르나킨은 윤해의 병법을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화려한 전투 장면은 머릿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현된다.
무엇인가를 가둔 듯한 거문담과 숫자 1021.
꿈속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 마로하.
종말에 대한 예언과 이것을 막아야 하는 예언자 마법사.
현실적인 전투와 병법 운영에 마법이 더해지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이미 위기에서 벗어날 때 마법을 부린 적이 있지만 자신이 바라는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천천히 보여주면서 종말의 공포와 위기를 고조시킨다.
이것은 폭군 왕이 한 나라를 공포와 위기 속으로 몰아가는 것과 닮아 있다.
이 종말을 막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많은 대가를 바라는 지 보여준다.
그 사이 사이에 끼어 든 의심과 불안은 또 어떤가.
뛰어난 재미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살짝 남긴 로맨스는 진한 여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