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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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탁환을 처음 만나고 그의 이름을 뇌리 속에 각인한 작품이 바로 백탑파 시리즈의 첫 권인 ‘방각본 살인사건’이다. 우연히 어떤 게시판에서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본 그 소설은 한국 팩션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고 작가를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그 후 읽은 그의 몇 편의 소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역시 백탑파 시리즈다.

 

작가의 소설에 대한 애착을 다룬 것이나 열녀문을 둘러싼 비극을 다룬 소설처럼 이번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이다. 학창시절 박지원하면 언제나 먼저 ‘열하일기’를 연상하고 외웠다. 교과서에서 만난 ‘열하일기’는 다른 글들처럼 시험을 위해 읽어야하는 한 편일 뿐이었다. 주옥같은 글들을 그 당시 시험만을 위해 읽다보니 그 깊이나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님을 생각하면 약간은 아쉽고 안타깝다. 다행히 지금이라도 새롭게 그 의미를 되새기는 다행이기는 하지만.

 

‘열하일기’를 생각하게 되면 정조의 문체반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연암 박지원에 대한 글들을 보면 이 여행기가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는데 그 책을 읽지 않은 나에게 그 의미나 느낌이 제대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글이란 것과 그 책을 다룬 책을 읽다보면 빨리 그 재미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한데 그 분량이나 구입가격을 생각하면 조용해지는 현실에 다른 책들로 그 갈증을 조금씩 해소하고는 한다.

 

시대는 정조 때로 1792년. 정조는 연암의 여행기를 폐관소품으로 치부하고 금서로 정한다. 이미 장안에 베스트셀러이자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그 책에 대한 열광적 마니아가 된 사람들에겐 너무 힘든 어명이다. 이들 열하광들은 숨어서 ‘열하일기’를 읽고 토론하고 주해서를 만들려고 한다. 이때 이들을 둘러싼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단서들과 증인들은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그가 주인공이자 화자인 청전 이명방이다. 방각살인과 열녀살인사건을 해결한 탁월한 금부도사이자 전하의 종친이기도 한 그가 사건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그것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요즘 같이 정조에 대한 드라마나 책들이 유행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시대의 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점에 이미 몇 편이나 그를 다룬 작가의 작품을 즐긴 나에게 백탑파 시리즈라는 것과 ‘열하일기’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 유혹에 빠져 수많은 해석과 부딪히며 청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만나는 ‘열하일기’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게 된다. 새롭게 드러난 청전의 연애이야기와 열하광들로 이어지는 살인사건은 정조시대의 시대 분위기와 더불어 긴장감을 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과 용의자를 쫓는 의금부 도사들과 정조의 어명에 의해 고문체로 만든 자송문을 지어라는 압박에 처한 백탑파 서생들. 이 모든 상황들을 잘 버무려낸 소설이 바로 ‘열하광인’이다.

 

하지만 수많은 해석을 달아야 하는 단어와 책들과 사람들은 속도감에 부담을 주었고, 약간은 느슨한 범인 찾기는 다른 부분에서 만들어낸 긴장감을 누그러트렸다. 지금 부각되는 정조의 모습이나 나의 기억 속 정조의 모습과 조금은 다른 정조의 모습에 왜 문체반정이란 단어가 만들어지고 사건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그림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역사소설이 지닌 재미를 맘껏 살려내었다면 추리소설로는 조금 약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왜 그런 결단을 정조가 내렸는지 작가의 명확한 해설이 없다보니 그가 보여준 글들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혹시나 마지막에 이 시리즈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 고민했는데 작가가 현재진행형이라고 한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자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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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유혹, 스페인 - 그곳에 가면 나는 자유가 된다
김지영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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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자주 가지도 않고, 여행관련 서적을 많이 읽지도 않은 나에게 이런 책들은 언제나 환상을 심어준다. 이국의 풍경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기쁨. 새로운 경험과 넓어지는 시각. 언제나 부럽기만 하다. 가지 못하니 대신 가고 싶은 마음을 북돋아주고 대리체험을 하게 하는 여행서적은 짧은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것은 투우, 축구, 축제, 플라멩코, 가우디 등이다. 한때 엄청난 제국을 건설하기도 한 나라로 중남미의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나라가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과거의 영광도 아니고 한때 영화나 문학 속에서 접했던 투우도 아닌 축구와 축제와 가우디 등이다. 세계적인 명문구단인 바르셀로나와 지구 방위대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 등으로 대표되는 축구팀과 프로리그가 먼저 생각난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에서 이미 중독되다시피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축구가 월드컵이나 스포츠를 통해 나에게 다가왔다면 축제는 방송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이벤트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것들과 다르게 가우디만은 한 장의 사진이나 책 등을 통해 나의 마음속에 심어졌다. 한때 가우디에 대한 책도 읽기도 하고, 스페인 관련 여행서적에서 이 이름을 만나면 즐겁기도 하였지만 역시 나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다. 간접경험이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그 멋진 건축물이나 풍경 등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각한 것보다 멋지지 않을 수도 있고, 예상보다 더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곳에 가서 보아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여행관련 서적을 보다보면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이 칭찬과 여행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다. 이 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이 칭찬과 친구가 화려하게 편집된 사진들과 결합하는 순간 보는 나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이국적인 모습과 친절한 그들과 날마다 변하는 관계들은 일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저자가 돌아다니며 강한 인상을 남겨준 곳들과 사람들만 추려서 편집하였기에 더욱 그렇겠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만은 그런 생각보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행에세이로 많은 분량은 아니다. 사진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섯 파트로 나누어 말하는 스페인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루어지지 않아 여행지 변화에 따른 즐거움보다 감정과 느낌에 집중하게 되었다. 칭찬일색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평가도 이루어져 다른 책과 약간은 달랐다. 하지만 이전에 본 책들처럼 왜 그들은 스페인을 자유와 연상시키는 것일까? 스페인만의 특색인지 아니면 여행이라 것에 의한 감정인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으론 이런 감정의 일부밖에 느끼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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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분만 더
하라다 마하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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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무수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딱 한 번만! 이라는 말이다. 그리움에, 아픔에, 괴로움에, 기쁨에, 즐거움 등등에서 우린 이 말을 하곤 한다. 이 간절한 말이 나오는 순간은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간절한 마음을 소재로 얼마나 많은 소설이나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생각하면 이해가 조금 빠를 것이다.

 

한 직장여성이 있다. 그녀 이름은 가미야 아이, 패션잡지 에디터다. 연하의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고 우연히 팻숍에 데려온 골든 레트리버인 개 리라를 키우고 있다. 이 아이가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와 헤어지고, 리라를 잃게 되는 순간까지를 그려낸다. 일과 사랑, 새롭게 다가온 유혹, 리라를 키우기 위해 시내에서 이사한 집, 점점 힘들어지는 직장생활, 자신도 모르게 점점 쌓여가는 불만과 감정들. 이런 순간들을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리라를 키우면서 느끼는 기쁨이 일상에 치여 변화하는 순간 기쁨의 대상이 증오의 대상으로 변질되고, 자신은 점점 수렁에 빠지게 된다. 현실에서 직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얻은 그녀가 개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조그만 개가 아닌 큰 개라면. 좋을 때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은 항상 나쁜 일이 생기고 나서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인 고스케와 리라를 키우며 리라를 볼 그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던 그녀가 업무라는 일상에 부딪히고, 꽃 미남의 유혹을 받으면서 자신이 잊고 있던 또 다른 삶의 단면을 보게 된다. 그 순간의 틈으로 찾아오는 짜증과 힘겨움과 고통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 즐거움보다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 많은 조명을 비추어준다.

 

일. 그것은 참 중요하다. 가정. 그것도 참 중요하다. 하지만 언제나 둘 모두를 잘 할 수는 없다. 물론 둘 모두를 열심히 하고 누가 봐도 잘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힘들다. 잘하는 사람들조차 그 힘겨움에 짓눌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 대립하는 듯한 둘을 모두 가질려는 순간 우리의 마음엔 간사함과 미움과 짜증이 파고드는 것이다.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이 아이만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생각하면 더 쉽지 않을까? 이 소설에선 고스케와 리라다.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 편안하게 되면 하나의 정물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 자신만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심한 외로움과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저 평온한 풍경에 자신만 빠져있고, 옆에 보이는 화려한 장면에선 이들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리고 벌어지는 틈새. 한 번 벌어진 그 틈사이로 혼자 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혼자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를 잡는다. 이때부터 연속되는 악순환들. 이 순간 마지막으로 다가온 파국은 자신을 완전히 풀어놓게 만든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에겐 좋은 사람들이 있다.

 

소중한 것을 알지만 그것을 가꾸는 것은 어렵다. 힘겨움에 짓눌리지만 자존심으로 포장된 오기는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 자신이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일이 사랑하는 리라의 존재를 거추장스럽게 여겨지게 한다. 자신도 다른 남자의 유혹에 흔들리고, 고스케도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있다. 이런 악순환 속에 더욱 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데 그것은 리라의 암이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짐들이 쏟아지면서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작가는 이 과정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아이의 심리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녀는 외친다. 한 달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한 시간도 아니고 단 일 분만 더 리라와 함께 있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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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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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에 대한 정보라고는 읽기 전에 나온 나오키 상 수상작가라는 것과 이 소설집이 한 번 나오키 상 수상후보에 올랐다는 것이다. 나오키 상 수상작품에 거의 실망을 느끼지 않은 전력을 생각하면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도중에 본 표지에 나온 수많은 찬사들을 다시 보면서 몇 개에 대해서는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 5편이 담겨있다. 도시전설이라고 하지만 세피아라는 이름에 한때 한국도로를 힘차게 달렸던 차 이름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면서 뭔 관계가 있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도시전설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도 가물거리는 지금 소설집의 첫 편인 ‘올빼미 사내’는 소문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었다. 많은 괴담이나 전설의 경우 사실 부분을 제외하면 지극히 단순한 것들만 남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 살이 붙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이야기가 엄청나게 인기를 끈다면 아마 자신의 경험담처럼 말하면서 더욱 무시무시하고 괴상한 설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올빼미 사내’는 이런 과정과 함께 자신의 내면 변화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도 주었다.

 

사실 이 작품집에 대한 평을 보면서 ‘어제의 공원’에 대한 극찬을 보고 초반의 진행에 이 정도로 극찬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약간은 평범한 진행과 특이한 경험을 보면서 다른 소설들에 비슷한 장면이 나왔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정해진 운명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실패가 주는 비참함과 아픔을 느끼게 만들었고, 마지막 장면은 눈시울을 붉히며 가슴에 쿵! 울리는 아픔을 전해주었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이야기와 흐름에 따라가다 갑작스럽게 돌출되어 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정말 이 한 편으로 이 소설집은 가치가 상승하였다.

 

이후에 나온 ‘아이스맨’, ‘사자연’, ‘월석’도 흥미로운 진행과 전개였다. ‘아이스맨’의 경우 기억과 일상이 단숨에 파괴되어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지는 끝 장면이 섬뜩하였고, ‘사자연’은 집착이 만들어낸 괴상한 욕망이 어느 정도 마지막을 예상하게 만들었지만 그 과정이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었다. ‘월석’은 어쩌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마지막 반전에 공포를 심어놓기보다 진행 속에 그리움과 미안함을 잘 녹여내었기 때문이다. 저주와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결합한 작품으로 어딘가에서 본 듯하기는 하지만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다섯 편 모두 죽음을 다루고, 그리움을 드리우고,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들이 생생하게 살아 전해지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은 섬뜩함을, 안타까움을, 반전 등을 주었다. 하나의 작품집에 담긴 소설들이 이렇게 만족을 준 경우가 드문 것을 생각하면 대단하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두 권이 더 번역되어 있으니 차근차근 기대하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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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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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잘못된 점이 있으면 다른 곳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과거에 누군가가 한 말에 사로잡혀 자신이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해 그런 사고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불안과 불안정한 삶에서 어쩌면 그런 행동들은 자신에게 나는 화를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방법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있다. 5년 전 그 여자가 남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 남자는 거짓말에 현혹되어 헤어진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경계에서 5년이란 시간 동안 자주 부딪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시 조금 전에 그녀 아키라에게서 전화가 온다. 자신들이 이별 후 부딪힌 100번째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그녀는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주인공인 마사히라는 그녀와의 과거를 회상하고, 그녀를 잊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헤어짐의 비밀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지는 것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종교문제, 부모와의 문제, 성격차이, 권태, 또 다른 연인, 식어버린 애정, 숨겨진 과거 등등 수없이 많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천차만별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이별의 순간이나 그 과정이 지겹고 짜증나고 진저리를 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경우도 많다. 여기 이 연인들의 과거에서 헤어짐은 단 한 사람 마사히라만 제외하고 주변 관계자들은 모두 그 비밀을 알고 있다. 그 비밀의 단서를 알게 된 상황도 알고 보면 그가 사랑했던 그녀에 대한 애정이 남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소설은 중반까지 그냥 그런 정도였다. 이야기 속에 몰입하지도, 감정이입이 잘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가 하는 사업의 성공이나 텅빈 생활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로 풀려나가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와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녀와의 결합을 반대했던 어머니나 자신의 어린 시절 약시로부터 구해주었던 선생이나 자신을 속이려고 한 아키라 등과의 관계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 한 가운데 그가 서 있는데 그는 그 파경의 아픔을 자신이 아닌 어머니나 선생 등에게 뱉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과의 대화에서 우린 알게 된다. 그 헤어짐의 중심에서 가장 잘못한 사람이 마사히라임을.  

 

자신의 불행이나 아픔이나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타인이나 사회문제로 돌리는 것처럼 그는 헤어져달라고 부탁한 어머니나 선생에게 퍼붓지만 사실 정확한 사정도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그녀의 말 한 마디와 전화 한 통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와 불행은 이 소설이 주는 재미를 극대화시켜준다.

 

사랑이니 애정이니 말을 하지만 그 깊이나 넓이를 측정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헤어지고 난 후 그 깊이나 넓이를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고, 그 소중함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마사히라는 다행히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녀가 5년 동안 그 주변에서 맴돌았고, 또 마사히라는 사업에 성공하였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계속 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그녀에게 다가갈 계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그 계기와 헤어짐의 비밀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군지와 자신이 얼마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한다.  

 

사랑에 대한 감정이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내밀한 심리 묘사가 살아있다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깊이가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약간 어색한 부분으로 느껴지는 것은 선생이라는 특이한 인물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 때문인데 그가 말하는 내용을 보다보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지만 감정의 벽에 의해 막혀있던 그 느낌이 새롭게 다시 타오르는 모습을 보면 첫 번째처럼 강렬함은 보이지 않지만 은은하면서 더 강한 사랑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복잡하여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표지가 주는 어색하고 우중충한 느낌에 비하면 책 속에 담긴 내용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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