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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평점 :
처음 만나는 작가다.
동시에 두 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첫 번역인 줄 알았다.
인터넷 서점 검색하니 먼저 번역한 책들이 보인다.
‘보통’의 틀을 함께 넘어서는 청량한 가족 이야기란 부분에 혹했다.
이때 말하는 ‘보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소설을 읽다 보면 흔히 정형화한 성별 특성을 넘어선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 고등학생 기요스미는 바느질을 좋아해 수를 놓고, 누나 미오는 귀여운 것을 싫어한다.
부모는 이혼을 했고, 엄마 사쓰코와 외할머니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네 가족과 부외 가족이 화자로 등장하는 옴니버스 구성이다.
기요스미에서 시작해 누나 미오, 엄마 사쓰코, 할머니 순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한 명씩 나온 후 다음 화자는 아버지 젠을 돌보는 사장 구로다 씨가 된다.
구로다 씨가 등장하는 것은 아버지 젠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젠의 학창 시절, 그 시절을 기다리는 친구의 마음.
경제 관념이 없는 젠을 돌보고, 회사에 필요한 디자인 업무도 진행시킨다.
재밌는 부분은 구로다의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과의 관계와 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공장의 오래된 직원들은 어떻게든 사장이 결혼하게 만들고 싶지만 그는 마음이 없다.
회계사는 젠을 자르라고 말하고, 직원들은 그의 농땡이를 고자질한다.
그리고 구로다는 젠을 대신해 양육비로 월급의 일부인 현금을 전달한다.
이때 기요스미의 사진을 찍어서 젠에게 보여준다.
구로다를 통해 가족의 밖에서 이들을 보는 시선이 나온다.
그의 기억 중 일부는 다른 화자를 통해 나오면서 좀더 큰 울림을 만든다.
가장 먼저 나오는 기요스미의 이야기는 이 가족을 담담하게 그려준다.
그가 좋아하는 바느질, 이런 행동 때문에 겉도는 학교 생활.
이런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내는 친구의 등장.
자신이 좋아하는 바느질에 대한 열정, 이것을 반대하는 엄마.
누나의 결혼식과 결혼 드레스를 입고 싶어하지 않는 누나를 위한 드레스 제작.
의상 디자이너로 성공하지 못한 남편 젠처럼 될까 걱정스러운 엄마의 반대.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누나가 원하는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누나 미오는 학원 사무일을 하는데 귀여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녀가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데는 어릴 때 성추행이 큰 역할을 했다.
동생이 만들어준다는 웨딩드레스의 시안이 위생복과 닮았다고 할 정도다.
남친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성실과 근면함에 많은 점수를 주었다.
남편 젠이 얼마나 철없는지 알려주는 대목을 보면 금방 이해된다.
미오의 이런 마음을 가족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당한 사건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제대로 해내고 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이 기요스미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엄마 사쓰코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들의 과거가 중심에 놓여 있다.
피아노 학원이 싫다고 했을 때 엄마가 그만 두는 선택권을 준 것을 원망하는 사쓰코.
자신의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과거의 원망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한 두 모녀의 대화는 현실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내 개인적인 방침은 할머니와 닮아 있는데 이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사쓰코가 남편 젠의 집에 갔을 때 본 젠의 부모와 집 내부 풍경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남편 젠은 결코 과거 부모의 집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에 할머니의 과거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강하던 시대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이혼한 딸과 함께 두 손녀손자를 키운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그 모습은 밝게 빛났다.
읽으면서 일본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가득 느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가족의 모습과 달라 조금 특이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특이함도 엄청 독특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다.
개개인의 개성이 강하고, 보통 생각하는 바와 다른 부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관계들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각각 다른 생각과 시간의 흐름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 생긴다.
미오의 웨딩드레스를 새롭게 제작하고, 기요스미가 수를 놓는 장면이다.
젠이 두 아이의 이름에 담고 싶었던 의미가 드러날 때 제목과 이어진다.
기요스미의 열정과 재능은 이 순간 찬란하게 빛나고, 이 빛은 가족들에게 뻗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