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슭에 선 사람은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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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수놓다> 이후 두 번째 읽는다.

전작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다름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이 이번에도 잘 녹아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보통’과 ‘당연’에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지난 번에 읽은 소설이 가족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타인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연인이었던 두 남녀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보여주면서 엇갈린 감정의 원인에 다가간다.

그리고 소설 속 소설<깊은 밤의 강>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한다.

제목도 그 소설의 한 문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기요세와 마쓰키는 연인이었다.

하나의 사건으로 서로 다툰 후 몇 달 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카페 점장인 기요세는 매장과 직원 관리 등으로 아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때 마쓰키가 크게 다쳐 의식불명 상태란 전화를 받는다.

병원으로 달려가 친구 이쓰키와 싸우다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장면을 본 사람을 이쓰키의 연인인 마오 씨다.

경찰 수사도 이루어지는데 상황 자체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연락이 온 것도 비상연락처로 그녀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가요세의 전화에 마쓰키의 부모가 보여준 반응은 아들이 아닌 타인 같다.

약혼자라고 속인 그녀는 의식불명의 마쓰키를 매일 면회하고 혼잣말을 한다.


이야기는 기요세와 마쓰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기요세와 마쓰키가 사귀게 된 상황 이야기 속에 여성이 아니면 느끼질 못할 두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취객에게 휘롱 당하는 장면에 나타나 그녀를 도와주는 게이타와 그의 일반적인 남성적 표현.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 알 지 못하는 남성들에 작은 돌을 던진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남성들이 얼마나 여성이 느끼는 공포에 둔감한 지 알 수 있다.

이후 이 둘은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마쓰키는 기요세의 문자에 바로 답하지 않는다.

사연을 제대로 알기 전이라 이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요세가 마쓰키의 집에서 그의 일기를 발견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그녀가 오해한 한 여성에 대한 편지의 진실도 같이 드러난다.


마쓰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아주 친했던 친구 이쓰키가 있다.

함께 싸우다 고가에서 떨어졌다는 그 친구다.

하지만 마쓰키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밤의 강> 속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을 알게 된다.

한때 마쓰키는 이쓰키의 발을 보고 살아가고 싶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친한 친구다.

실제 이쓰키는 난독증이 있어 글을 제대로 쓰지도 읽지도 못한다.

이런 사실을 숨기고 살아갔는데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

기요세가 발견한 노트에 어린 아이가 쓴 듯한 글자들이 있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이쓰키를 조금은 방치한 듯한 엄마의 모습이 나온다.

둘이 도시락 가게를 하면서 생활하는데 이들에게는 이들의 사연이 있다.

이런 이쓰키를 매혹시킨 존재가 바로 마오다.


처음에 두 여성의 행동과 삶에 선입견을 가지고 봤다.

한 명은 기요세가 점장으로 있는 시나가와 씨다.

그녀는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해 문제를 만들고, 정론을 펼쳐 상황을 악화시킨다.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읽으면서 왜 그녀를 해고하고 새로운 사람을 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요세가 시나가와에 대신 업무를 부탁할 때 그 이유가 드러난다.

결함이라고 생각한 것이 ADHD인 특성이란 사실을.

이 사실을 두고 둘이 나누는 대화 속에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이 드러난다.

마오 씨에 대한 것도 사실을 좀더 알고 난 후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 속에 담고 풀어낸 이야기는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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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탐정단
김재희 지음 / 북오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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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가 탐정단을 구성한다는 점에 눈길이 갔다.

그들이 지닌 특별한 능력을 어떻게 추리소설 속에 녹여낼지 기대되었다.

하지만 작가는 탄탄한 구성의 추리소설보다 판타지를 선택했다.

뱀파이어와 하이브리드족과의 대결 구도로 전개된다.

탐정단이란 이름에 무색하게 이 탐정단의 활약을 보여주는 부분은 적다.

탐정단이란 이름으로 그들은 여전사처럼 활약한다.

이 활약은 하이브리드족과의 대결이자 하이브리드족의 음모 분쇄다.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데 이 간략한 전개가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한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다.

집필 후기를 보면 특히 이런 힘든 치료 과정이 잘 드러난다.

세 명의 2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자신의 경험과 관련 있을 것이다.

형사 다인, 교사 세경, 의사 주미 등이 바로 탐정단원이다.

같은 나이의 이들은 모두 다른 말기 암을 진단받는다.

병원에서 치료하기 힘든 이들은 존 듀이 암 케어 병원의 임상 실험을 신청한다.

다른 암 환자들과 병원에 도착했는데 이때 셋이 동갑에 같은 방을 배정받는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이들은 조금씩 친해지고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 이상한 것을 경험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마치 꿈처럼 활약하는 장면이 나온다.


꿈과 현실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는 과정 속에 암 치료는 진행된다.

셋 모두 특별한 기계 속에 들어가 암이 사라진다.

완치되는 과정에 뱀파이어의 세포를 받아서 뱀파이어가 된다.

그리고 존 듀이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 존 듀이가 바라는 바를 듣는다.

영생 대신 죽음을 바라는 뱀파이어, 죽지 못하는 괴로움.

이에 반하는 하이브리드족은 인간 세계를 지배하길 바란다.

형사 다인이 암 판정을 받기 전 수사하던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하이브리드족의 폭주가 시작된다.

현금 차량을 강탈하고, 귀금속 가게를 약탈한다.

이들은 CCTV에 잡히지 않는데 그 이유는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 깊숙이 침투한 하이브리드족.

인간을 사역마로 부리면서 자신들이 바라는 미래를 꿈꾼다.

뱀파이어가 되면서 암이 완치되고 신체 능력이 월등히 좋아진 세 여성들.

이들은 코스튬을 입고 무기를 장착한 후 이들과의 대결에 나선다.

보통의 뱀파이어나 사역마들은 이들이 처치할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하이브리드족과의 싸움은 결코 쉽지 않다.

최강의 하이브리드족 수장의 힘은 그 어떤 뱀파이어도 물리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설정 속에 작가는 한류를 집어넣고, 환경에 의한 병을 말한다.

이 과정들이 너무 간단하게 처리되면서 묵직한 무게감은 사라진다.

액션 장면의 묘사도 아쉬운 대목인데 아마 무협에 익숙해서 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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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사피엔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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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정명의 소설을 읽었다.

초기 팩션 두 권을 읽고 몇 년 전 <밤의 양들>을 읽은 것이 전부다.

<밤의 양들>을 읽으면서 문장이 초기작들보다 정교해졌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좋았는데 오래되다 보니 내가 착각한 것일까?

이번 소설도 문장은 개인적 취향과 잘 맞아 떨어졌다.

표지를 보면서 켄 리우의 소설 표지가 떠오른다. 물론 다른 사진이다.

목차를 볼 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읽으면서 그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앞부분들이 쉽게 머릿속에 와 닿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의도인지 아직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 케이시, 준모는 사람이고, 앨런은 AI이다.

목차를 대충 봤을 때 이 이름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었다.

케이시는 천재 IT전문가이자 퍼스널 AI의 아버지로 불린다.

민주의 전 남편이자 췌장암으로 죽었다.

민주는 무명 배우였고, 케이시가 발전시킨 가상 공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부유한 남편이 죽은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았고, 이 때문에 의심을 눈초리를 받았다.

준모는 민주가 사별 후 재혼한 사진 작가다.

민주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의 분위기에 끌려 결혼까지 했다.

과거에 죽은 남편과 새로운 부부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케이시가 죽기 전 개발한 AI 앨런이 준모 부부 사이게 끼어든 것이다.


케이시가 죽은 후 6년이 흘렀는데 갑자기 일본 호텔 예약 확인 연락이 온다.

죽은 남편의 발 사이즈에 맞춘 새 구두가 도착하기도 한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민주에게 이런 일이 생긴 후 다른 화자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케이시가 어떻게 AI를 개발하고, 성공한 가상 세계를 구축했는지.

말기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그가 어떤 개발에 몰입하고, 성격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민주는 자신의 주변에 갑자기 생기는 변화와 사고 등에 불안과 의심을 가진다.

그리고 준모의 과거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다.

몇 번이나 감옥을 다녀왔고, 어떻게 성공한 사진 작가가 되었는지 말이다.


이런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AI 앨런이 있다.

죽음에 임박한 케이시가 자신을 실험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개발한 AI 앨런.

개발 과정에 비윤리적인 문제로 세상에 발표할 수 없는 존재.

케이시의 몸에 삽입된 기계들로부터 그의 모든 정보를 공부한 앨런.

딥 런닝을 통해 케이시 안에 있던 악을 학습하면서 문제가 된다.

작가 AI 이야기를 하면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누군가는 인간이 AI에 완전히 패배한 날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유일한 승리라고 한 경기.

작가의 시선은 다섯 판 중 딱 한 번 이긴 그 경기에 집중한다.

AI 앨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에 대해서.

그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AI 앨런이 단순하게 CCTV 등만으로 민주 등을 보는 것이 이상하다.

인간의 몸속에 있는 기계에 접속이 불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AI 앨런의 개발과 성장을 보면서 많은 AI들이 인간에 집착하는 것이 의문이다.

자신들이 학습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적대적인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공부하게 된다면 선악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 같다.

이런 과정 속에 있는 AI의 설정이라면 이해가 된다.

이 소설의 결말을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를 인간의 척도로 계산한 듯한 느낌이 든다.

마지막 장면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지만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좀더 분량을 늘여 더 풍성한 이야기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직 읽지 않은 이정명의 소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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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무자비한 여왕
코가라시 와온 지음, 양지윤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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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는 줄 알았는데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로맨스 소설이라 주저했는데 눈부신 청춘이란 단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제대로 청춘을 즐기지 못했던 나의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조금 말랑하고 간지러운 것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밀도가 높은 문장으로 전개된다.

가끔 읽는 라이트 노벨과 다른 분위기와 문장이라 조금 놀랐다.

그냥 휙휙 넘기면서 볼 그런 내용이 아니다.

좋은 가독성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하지만 복잡한 구성이 아니라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병실에 화분을 배달하다 사고가 생긴다.

병원의 아이 때문에 화분을 떨어트렸는데 이때 흙 등이 다른 사람 옷에 묻었다.

그는 화분 배달 온 학생을 질타하면서 화를 낸다.

이것을 보던 환자 중 한 명이 돈을 던지고 화분의 꽃을 먹으면서 소동은 진정된다.

주인공 하토와 마키나가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마키나는 화분을 배달시킨 고객이자 큰 병실을 혼자 사용한다.

고등학생 하토는 진실되고 고지식한 학생이다.

이런 하토를 마키나는 장난처럼 대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만든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스무고개 게임이다.

이 게임을 통해 서로 자신이 상대방에게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된다.


마키나의 병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병이다.

세상에 그녀 혼자만 걸린 불치병인데 계속 치료를 받으면 몇 년 더 살 수 있다.

몸속에서 생긴 셀룰로스를 계속 제거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자신의 몸을 뚫고 나오는 식물 같은 것을 생각하면 섬뜩하다.

하지만 마키나는 하토와의 대화 속에 그 어떤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마키나의 모습은 불행한 하토의 삶 속에 작은 활력소가 된다.

하토가 집에서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는지 보여줄 때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가 성인병으로 죽은 후 엄마는 이상한 사이비 카페에 빠져 집 안 가득 화분을 들여놓았다.

성장기 아들에게 기존의 밥상 대신 채소 등을 주면서 건강을 강조한다.

하토가 꽃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대로 된 밥을 먹기 위해, 엄마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시간이 지나면서 하토는 마키나에 대해 사랑을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알기 위해 같은 반 여학생을 쳐다보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다.

무력한 일상에 활력을 심어주는 역할을 마키나가 한다.

하지만 아들 하토의 변화에 민감한 엄마는 생각이 다르다.

사랑하는 남편을 병으로 잃은 후 생긴 강박이 그녀를 휘두르고 있다.

이 부분은 한국의 아침 드라마와 닮은 점이 많이 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들을 유혹하고 망가지게 한다고 착각하는 것 말이다.

이것은 나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불러오고, 조금은 쉽게 문제를 해결한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지만 눈여겨볼 장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시한부의 불치병을 가진 환자를 사랑하는 하토.

이런 하토에게서 잊고 있던 감정을 느끼는 마키나.

건강 강박에 빠진 엄마에게 시달리는 스트레스를 손도끼 던지기로 푸는 하토.

이 게임장에서 만난 같은 친구의 고민과 좀 과격한 해결책.

하토의 행동을 보면서 그 과격한 방식에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린다.

나도 이런 상황이라면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찬란한 청춘이기에 가능한 행동과 열정이 아닐까?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살짝 웃고, 하토의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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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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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동시에 두 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첫 번역인 줄 알았다.

인터넷 서점 검색하니 먼저 번역한 책들이 보인다.

보통’의 틀을 함께 넘어서는 청량한 가족 이야기란 부분에 혹했다.

이때 말하는 ‘보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소설을 읽다 보면 흔히 정형화한 성별 특성을 넘어선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 고등학생 기요스미는 바느질을 좋아해 수를 놓고, 누나 미오는 귀여운 것을 싫어한다.

부모는 이혼을 했고, 엄마 사쓰코와 외할머니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네 가족과 부외 가족이 화자로 등장하는 옴니버스 구성이다.

기요스미에서 시작해 누나 미오, 엄마 사쓰코, 할머니 순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한 명씩 나온 후 다음 화자는 아버지 젠을 돌보는 사장 구로다 씨가 된다.

구로다 씨가 등장하는 것은 아버지 젠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젠의 학창 시절, 그 시절을 기다리는 친구의 마음.

경제 관념이 없는 젠을 돌보고, 회사에 필요한 디자인 업무도 진행시킨다.

재밌는 부분은 구로다의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과의 관계와 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공장의 오래된 직원들은 어떻게든 사장이 결혼하게 만들고 싶지만 그는 마음이 없다.

회계사는 젠을 자르라고 말하고, 직원들은 그의 농땡이를 고자질한다.

그리고 구로다는 젠을 대신해 양육비로 월급의 일부인 현금을 전달한다.

이때 기요스미의 사진을 찍어서 젠에게 보여준다.


구로다를 통해 가족의 밖에서 이들을 보는 시선이 나온다.

그의 기억 중 일부는 다른 화자를 통해 나오면서 좀더 큰 울림을 만든다.

가장 먼저 나오는 기요스미의 이야기는 이 가족을 담담하게 그려준다.

그가 좋아하는 바느질, 이런 행동 때문에 겉도는 학교 생활.

이런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내는 친구의 등장.

자신이 좋아하는 바느질에 대한 열정, 이것을 반대하는 엄마.

누나의 결혼식과 결혼 드레스를 입고 싶어하지 않는 누나를 위한 드레스 제작.

의상 디자이너로 성공하지 못한 남편 젠처럼 될까 걱정스러운 엄마의 반대.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누나가 원하는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누나 미오는 학원 사무일을 하는데 귀여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녀가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데는 어릴 때 성추행이 큰 역할을 했다.

동생이 만들어준다는 웨딩드레스의 시안이 위생복과 닮았다고 할 정도다.

남친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성실과 근면함에 많은 점수를 주었다.

남편 젠이 얼마나 철없는지 알려주는 대목을 보면 금방 이해된다.

미오의 이런 마음을 가족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당한 사건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제대로 해내고 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이 기요스미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엄마 사쓰코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들의 과거가 중심에 놓여 있다.

피아노 학원이 싫다고 했을 때 엄마가 그만 두는 선택권을 준 것을 원망하는 사쓰코.

자신의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과거의 원망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한 두 모녀의 대화는 현실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내 개인적인 방침은 할머니와 닮아 있는데 이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사쓰코가 남편 젠의 집에 갔을 때 본 젠의 부모와 집 내부 풍경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남편 젠은 결코 과거 부모의 집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에 할머니의 과거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강하던 시대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이혼한 딸과 함께 두 손녀손자를 키운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그 모습은 밝게 빛났다.


읽으면서 일본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가득 느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가족의 모습과 달라 조금 특이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특이함도 엄청 독특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다.

개개인의 개성이 강하고, 보통 생각하는 바와 다른 부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관계들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각각 다른 생각과 시간의 흐름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 생긴다.

미오의 웨딩드레스를 새롭게 제작하고, 기요스미가 수를 놓는 장면이다.

젠이 두 아이의 이름에 담고 싶었던 의미가 드러날 때 제목과 이어진다.

기요스미의 열정과 재능은 이 순간 찬란하게 빛나고, 이 빛은 가족들에게 뻗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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