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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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한 남녀가 체실 비치에 신혼여행을 와 겪게 되는 첫날 밤 이야기다. 사랑과 낭만으로 가득해야할 첫날밤이 그들에겐 이별의 순간이다. 이 순간을 그려내는 작가의 필력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두 남녀의 감정과 심리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면서 그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헤어져야 하고 남은 삶의 긴 시간 동안 그 순간을 돌아보고 의문을 가져야 했을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반응이 다른 것을 보면서 사랑이 얼마나 오묘한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한다.

 

20대 초반의 두 남녀는 교육을 잘 받았고 순결을 유지한 채 결혼했다. 그 시절엔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고 한다. 한 해 동안 그들은 많은 스킨십을 가지고 사랑을 키웠다. 남자는 늘 성적 욕망으로 가득 찼지만 절제를 하였고, 여자는 남자의 스킨십이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첫날밤. 얼마나 설레는 시간인가? 남자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침대로 가고 싶다. 여자는 그의 깊은 키스나 손길에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과 행동은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이라는 것에 그들은 걱정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미숙한 행동과 감정의 폭발은 파국을 불러온다.

 

삶에서 사랑과 선택의 순간은 늘 있다. 그 순간을 되돌아보면 언제나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현실에 아픔이나 어려움이 있을 경우 더 자주 그런 생각이 난다. 작가는 바로 이 순간에 눈길을 돌렸고 멋지게 풀어내었다. 단순히 하룻밤의 이야기라면 더 간결하게 그려낼 수 있었지만 두 남녀가 살아온 삶의 길과 생각들을 그 속에 담아내면서 단순히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그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욕망으로 가득하지만 시대의 분위기에 의해 억압되었던 그 시간들. 에드워드가 플로렌스에게 청혼을 했던 그 순간도 사랑 그 이상의 욕망이 충동적으로 작용했다. 그 충동은 그들의 이별에도 이어지니 젊은 시절 혈기와 열정은 무서울 정도로 대단하다.

 

그들이 왜 헤어졌을까?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이 너무 예의 바르고, 너무 경직되고, 너무 소심하고,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사교적인 배려로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려서 눈을 멀게 했다고. 이것은 그 당시 팽배한 사회 분위기다.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사람의 미래를 한 순간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날려버린다. 물론 그들의 삶이 여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또 다른 기회와 사랑이 다가온다. 그러나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의 한 칸에 자리를 잡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리움과 아쉬움을 가지고.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놀란다. 언제나 사랑을 다루는데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반하고, 삶과 사랑을 풀어서 펼쳐 보여주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감정을 세밀하고 그려내고, 관계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미세한 감정들은 보면서 감탄하게 만든다. 외국 두 남녀의 하룻밤 이야기에서 나 자신의 수많은 미숙한 행동과 그 때문에 생긴 그리움과 아쉬움이 점점이 묻어난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기억에 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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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더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4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4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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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신의 눈앞에 자신이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까?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문을 연다. 의학학회차 파리로 갔다 돌아온 법의관 마우라가 자신의 집 앞에서 마주한 사실이다. 그녀와 너무나도 닮은 시체를 발견한 그녀의 동료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놀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와 닮은 그녀는 누구고, 그녀는 왜 살해당한 것일까? 그리고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렇게 많은 의문을 제공하면서 멋지게 출발한다.

 

책 소개에 그녀의 정체가 나온다. DNA 검사 결과 쌍둥이 자매다. 여기서부터 나의 추리와 상상력은 힘차게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혹시 유전자 복제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아니다. 혹시 그녀의 정체가 증인보호 프로그램 중에 있는 사람은 아닐까? 아니다. 그럼 왜 그녀는 죽었을까? 누가 죽였을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시작한 이야기는 다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발점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이를 수확하는 최악의 악당을 보여주기 위한 사전 작업에 불과하다.

 

의사 시리즈 중 첫 권인 ‘외과의사’만 읽었다.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할리우드 영화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 여주인공 리졸리의 연약한 듯 강인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 소설에선 강인함만 가득하다. 자신의 출생을 둘러싸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마우라 박사가 오히려 연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출생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이 그녀의 용기를 조금씩 잠식한다. 하지만 이 두 여인들 내면은 아직도 강하다. 그 강함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사실을 직시하고 해쳐나가는 용기를 말한다. 이런 여주인공과 달리 매우 심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납치된 임산부 매티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는 말처럼 아주 강하다. 이야기 중간에 갑자기 납치된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굉장히 인상 깊다.

 

마우라 박사의 자매 애너의 죽음에서 시작한 과거의 흔적과 새로운 살인사건은 작가의 놀라운 시선 유도에 빠져들게 한다. 범인에 대해 몇 번이나 추리하고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공정한 독자와의 경쟁이냐 하고 묻는다면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고? 그것은 이 소설이 주는 재미가 범인을 맞추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범죄 유형과 마우라 박사의 과거와 현재가 계속해서 의문을 주고 긴장감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사랑에 대한 갈등은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가 움직인 곳에서 발견된 살인의 흔적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의 사라진 흔적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형사 리졸리가 그 흔적들을 가지고 추리한 내용은 지금까지 본 추리소설 악당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잔혹하고 나쁜 놈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사건을 만들고 풀어내는 능력은 역시 대단하다. 매력적인 두 여주인공을 배치한 후 새로운 멋진 여성을 등장시킨 일이나 하나씩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사실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여주인공들이 나오다보니 남성 사회에서 그녀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게 되고, 사랑이란 이름 속에 담긴 강한 소유욕이 어떤 불행을 불러오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 중 최악 중 하나를 만나면서 느끼는 감정은 착잡하고 가슴 아프다.

 

보통 시리즈의 경우 첫 권부터 보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모르고 중간부터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너무 평이 좋아 그냥 최근작을 보았다. 주인공이 이어서 나오지만 사건 자체가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리졸리와 마우라 박사의 과거를 둘러보고 싶다. 거칠고 배타적인 남성 사회에서 두 여주인공이 어려움을 헤치고 사건을 해결한 장면들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게 되면서 순서대로 봐야지 하는 장벽이 사라짐으로써 사놓은 지 좀 된 ‘파견의사’를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두고 일거양득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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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 Miracle 1
강지영 외 지음, 김봉석 엮음 / 시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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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대 이상이다. 사실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단편 추리소설들에게 많은 실망을 한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엮은이가 지적한 할리우드적 기반은 약간 아쉬움으로 남지만 많지 않은 한국 스릴러 작가와 작품을 생각하면 상당히 고무적이다.

 

8편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인간실격’부터 강한 인상을 준다. 인간을 먹는 괴물과 처절하게 싸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괴물과 싸우며 그 자신도 괴물로 변한 남자의 모습은 처절하고 잔혹한 싸움 장면과 비현실적 존재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다. 물론 장편으로 개작하여도 충분히 재미난 소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왼손’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손 이야기다. 이 소설을 보면서 예전에 본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 정확한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저주 받은 손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이 소설과 다른 이야기지만 이성의 의지를 배반하고 멋대로 움직이는 손의 행동은 그 영화 속 손과 너무 유사하다. 잔혹하고 예상되는 진행은 긴장감을 조금씩 감소시킨다.

 

‘피해의 방정식’은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그 참혹했던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분열된 심리를 다루고 있다. 그때의 광주를 배경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지만 스릴러 장르에서 충분히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다루어진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이 소설도 그렇다. 비극의 현장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호러나 스릴러로 그 시절 광주의 비극을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질주’는 좋은 소재를 다루었다. 인간의 욕망을 돈과 삶이란 두 축으로 진행한다. 왜? 라는 이유는 없다. 도박으로 상황이 만들어지고 주인공은 쫓기고 도망 다닌다. 쫓는 자는 잡아서 돈을 얻고자 하고, 도망자와 그를 보호하여 돈을 벌려는 두 축의 이야기가 긴장감을 불러와야 하는데 조금 힘이 딸린다.

 

‘주말여행’은 결말이 보인다. 구성과 진행이 너무 낯익다. 죽이고자 하는 사람과 죽는 이가 뒤바뀐 상황에서 벌어지는 마지막이 긴장감을 불러와야 하는데 조금 약하다. ‘액귀’는 귀신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소설들에서 너무 많이 접한 내용이다. 묘사와 진행이 긴장감을 주기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더 많이 주어 약간 산만하게 다가온다.

 

가장 매력적인 두 캐릭터가 나오는 ‘사냥꾼은 밤에 눈뜬다’와 ‘세상에 쉬운 돈벌이는 없다’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실격’의 주인공이 장편으로 한 번에 끝날 이야기라면 이 소설에 나오는 두 주인공은 연작으로 나와도 충분히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냥꾼’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살육의 현장에서 싸우는 장면을 다루고 있고, ‘세상에’는 해결사와 스토커의 대결이 재빠르면서 속도감 있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선에서 유일하게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사냥꾼’의 살육현장은 처참하다. 부유층이 한 번의 오락을 위해 사람을 잡아놓고 사냥하는 현장에서 무통증 주인공이 보여주는 활약은 반영웅의 등장처럼 느껴진다. 그의 이 특별한 능력 또는 저주와 잃어버린 기억들과 약점을 더 다룬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세상에’의 해결사 주인공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그 규모를 조금씩 키워나가도 충분히 통할 것 같다. 전직 형사 출신인 경비원 아저씨와 연결시켜 새로운 임무를 만들어내고 밝은 분위기를 좀더 부각시키면 멋진 연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아쉬운 점을 많이 쓴 듯하다. 기대 이상의 재미가 있었지만 해외 걸작에 비하면 아직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성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시선을 끈다. 한때의 바람이 아니라 꾸준히 이런 작품들이 나온다면 우리도 분명히 해외 걸작에 버금가는 멋진 작품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하게 만든다. 최근에 읽은 한국 장르문학 단편선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몇 권 있지도 않고, 몇 권 읽지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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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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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31살의 패션잡지 피처 팀 고참 사원의 이야기가 이렇게 쏙 눈에 들어올지는 몰랐다. 첫 느낌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연상시켰다. 작가는 첫 부분에서 이 소설의 이야기는 간단하게 무시하고 지나간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와 상황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점은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고가품에 환장을 한다. 차이라면 미국에선 공짜로 협찬 받는 반면 한국에선 자신들의 월급으로 사야한다는 정도. 그래서 밥을 굶어도 자신이 사고 싶은 고가의 신발과 백에 대한 욕망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주변에 패션 디자이너가 있어 그들이 얼마나 옷과 신발과 백에 신경을 쓰는지 안다. 나 같이 패션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 한심해 보이지만 그들에겐 삶이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엔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사실 몰랐다. 166센티에 56킬로그램이면 정상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속한 동네에선 뚱녀다.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치고 나가면 직업의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뒤에서 욕을 한다. 다이어트는 생활의 필수고, 고가품은 당연한 일상품이다. 비록 그들의 은행 계정이 마이너스를 달고 있다고 하여도.

 

작가 이력을 보면서 이 책 내용에 담긴 이야기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단박에 알게 된다. 실제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간결하고 경쾌한 문장으로 멋지게 만들어낸 것이다. 주인공 이서정은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욕하는 사람들을 서서히 닮아가고 있다. 나쁜 성격보다 일하는 시간이나 방식을 말한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가? 새벽 2시 반에 전화를 하고, 3시에 문자를 보내자마자 5초 만에 답장이 온다고. 만약 어쩌다 특별한 일이라면 이해를 한다. 이런 일이 그녀의 삶에선 일상적이다. 일과 다이어트에 대한 욕망은 어쩌면 그 바쁜 일상에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아마도 보조제라고 해야 할까?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다보니 속도감이 상당하다. 일인칭이기 때문보다 작가의 역량 때문이지만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은 그녀의 직업과 연관되면서 색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충족시켜준다. 스타 한 명을 인터뷰하기 위해 1년 동안 공을 들이고, 쌓여가는 무료 쿠폰이 있지만 이용할 시간이 없는 삶은 분명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한 명만 있다면 생각보다 이해하기 쉽다. 내 주변에도 비싼 무료 티켓을 그냥 시간이 없어서, 혹은 잊고 지나가 버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또 힘을 가진 매체가 유명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매체가 인터뷰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도 알고 있다. 물론 힘 있는 매체도 인터뷰하기 힘든 인물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서정 중심의 이야기다. 그녀의 직업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직업이 낯선 직업에 대한 정보를 주고, 환상을 깨트리고, 잘못된 정보가 얼마나 넘쳐나는지 알려준다면 사랑은 순정만화의 통속성을 따라간다. 일 중독자의 일상에서 속내를 솔직하게 토해내면서 일과 인간관계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사랑 이야기는 약간 진부한 면이 있다. 여기서 조금 힘이 떨어진다. 재미는 변함없지만 삼순이의 그림자가 얼핏 보인다.

 

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대부분 여자들의 욕망을 잘 표현한 한 문장은 바로 55에서 44 사이즈로 변하는 마법이 있다면 파우스트 박사에게 영혼조차 팔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점점 말라가는 체형과 길에 범람하는 날씬한 여자들의 모습은 보기엔 좋지만 그들의 삶 이면에 숨겨진 아픔을 이서정은 유쾌하고 경쾌하게 보여준다. 또 음식 평론을 하는 닥터 레스토랑의 비평은 맛보다 멋, 맛보다 이름에 치중하는 우리를 대변한다. 이것을 조금 더 확대해석하면 고가품 구두나 옷이나 백에도 적용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현실과 비평은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과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욕망은 언제나 이성의 벽을 넘어 우리를 이기는 무시무시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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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단숨에 읽는 시리즈
한잉신.뤼팡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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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적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는 인정사정없고 잔혹하고 난폭한 악당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멋지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낭만주의자다. 이 두 모습은 모두 영화나 다른 매체에 의해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우리가 해적하면 당연하게 생각하는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를 생각하듯이 이런 두 모습은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를 사용한 해적이 많지 않다는 사실과 대부분의 해적들이 잔혹하고 피해자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바람직한 존재는 아니다.

 

이 책은 몇 백 년 전 해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 시절이 해적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인데 그것엔 이유가 있다. 바로 사략선이 그 이유다. 정부의 허가를 받은 공식 해적인데 이 무리가 약탈과 파괴 행위를 한다. 그들의 뒤에는 정부가 있다. 정부는 사략선이 약탈한 보물의 일정액을 상납 받았다. 현재처럼 체계화되고 정비된 해군이 없던 시절 이들이 일정 부분 해군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해적이다. 아무리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하여도 규율이나 기타 다른 것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해적이 순순히 정부의 명령에만 따르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가 없어진 해적은 소탕의 대상이 된다. 물론 사략선이 아닌 해적의 경우는 더 많은 적에게 둘러싸이지만 부의 획득은 더욱 거대하다. 그러나 쉽게 획득한 부는 쉽게 흥청망청 사용하면서 사라진다. 긴 해적의 역사를 통틀어 부유하고 편안하게 말년을 보낸 해적이 거의 없음을 보면 알 수 있다.

 

16세기 이후 19세기 초까지 해적을 다루고 있다. 이 당시 해적이 가장 융성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신대륙이다. 스페인이 신대륙에서 획득한 부를 스페인으로 운반하는 과정은 해적들의 표적으로 변했다. 무적함대를 이끌던 스페인이지만 카리브에서 자주 출몰하는 해적들을 모두 상대하기는 무리다. 여기에 영국, 프랑스 정부가 사략선을 허용하니 더욱 힘들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보기엔 이 노략질이 일확천금의 기회로 보인 것은 당연하다. 덕분에 캐리비안 해적들이 득세를 하고, 우리는 영화나 다른 매체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즐긴다. 잔혹하고 난폭한 해적들 속에 가끔 나타나는 낭만적인 해적에 열광하면서.

 

대부분이 캐리비안 지역에서 활동한 해적 이야기라면 다른 쪽은 인도나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동방무역항로에서 활약한 해적이다. 이들은 마다가스카르에 둥지를 틀고 캐리비안 해적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조직과 생활 방식들이 상당히 특이하다. 해적들의 유토피아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해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그들이 세운 유토피아가 아주 멋지다고 하여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은 ‘낭만적인 무법자 해적’의 옛 기억을 다시 살렸다. 두 책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책의 편집이 다른 방향이다 보니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이 책이 해적의 역사에 집중하다보니 너무 간략하게 지나간다. 단숨에 읽는다고 하였지만 왠지 교과서 같은 느낌도 있어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많지 않은 분량과 많은 그림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이것엔 나의 집중도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너무 그림을 비롯한 자료에 집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책을 모두 보고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역자에 대한 소개는 있다. 하지만 저자들에 대한 소개는 없다. 그들은 누굴까? 궁금하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에서 서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 상선을 납치한 해적들의 다루면서 우리나라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단순히 의역인지 아니면 그 장 자체가 편집에 의해 삽입된 것인지도 궁금하다. 혹시 숨겨진 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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