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르네상스인 中人 - 누추한 골목에서 시대의 큰길을 연 사람들의 곡진한 이야기
허경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시대는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귀천을 바꾸는 모양이다. 조선시대 천대 받던 중인들의 직업이 요즘 시대 최고의 직업이다. 누구나 합격하기를 원하고 입학하기를 원하는 직업들이 조선시대 중인들의 삶이자 직업이었다.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동시통역사 등등. 아마 지금 그들이 현재의 우리를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환희를 느끼는 동시에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자신들을 한탄할 것이다. 불과 백 수 십 년 전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의 중인은 현재 최고 직업이자 전문가 집단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 시대에는 많은 아픔을 가진 계급이다. 성리학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양반층이 점점 굳건해지면서 그들의 지위는 점점 한계가 지워진다. 하지만 시대의 큰 흐름 속에서 그들은 변화하고 적응하고 앞서 나가면서 주류 역사의 배후에서 든든한 받침이 되고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중인들에 대한 헌사이자 기록이며 전기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은 쉽게 휙휙 넘어가지 않는다. 네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학동인, 예술인, 전문지식인, 역관 등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첫 장인 문학동인에서는 중인보다 왠지 모르게 인왕산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각각의 구성과 전개가 중인을 중심으로 그 역할과 영향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너무 간략하게 기술되면서 그들이 실제 우리 삶에 끼친 영향력을 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기술은 뒤로 가면서도 크게 변화는 없다. 에피소드 중심에 사료를 활용한 깊이 있는 분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시대 전문가들의 삶을 우리에게 강하게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 신문 연재 때문인지 하나의 인물과 이어지는 다른 중인의 이야기가 다른 인물의 마지막에 다루어지면서 중복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우리 국민의 문맹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이유를 중인의 종교 활동 덕분이라고 단정한 것은 저자의 개인감정이 너무 깊이 노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선 중후반으로 오면서 중인들이 역관 등으로 자주 외국에 나가면서 부를 축적한다. 외국문물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성리학 세계에 경종을 울리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그 부의 축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그들이 권력에 가지면서 관직을 독과점하는 등의 사실에 대해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전체적인 현실성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업적이란 것이 과연 중인들의 대표자로서 역사의 한 쪽을 차지할 만한 인물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사람들도 다루면서 뒷심이 빠지고 있다.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인물이나 사실들이 자료를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 속에 좌절하고, 앞서 가고, 부를 축적하고, 시대를 뛰어넘은 듯한 인물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아닌 몇 명의 사람들에게 좀더 파고들어가 그 업적과 영향력을 심도 있게 표현하였다면 중인들을 역사의 앞줄로 내세우기 더 좋았을 것이다. 기대가 큰 덕분인지 아쉬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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